나에겐 자주 만나는 동네 친구들이 세 명 있다.
초등학교때 처음 만나
알고지낸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처럼 되어 있을 정도로 자주 만나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우리에게도 이런일이 생기다니
세기말이 오긴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주말이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모일 때 빠지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뿐이였으면 괜찮았다.
꼭 여자친구를 만나기전에 우리들에게 들려서
염장을 지르고 가는것이었다.
“여자친구 없는놈들 낯짝은 이렇게들 생겼구만 ㅋㅋㅋ”
“난 간다. 즐거운 시간들 보내라. 보낼수 있으면ㅂㅂ”
우리는 이 치욕을 되갚아줄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미 여자친구의 존재만으로
녀석은 승리자였고 우리들은 패배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그날도 친구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100일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는 친구가 있다는 술집으로 향했다.
침울한 얼굴의 녀석이 보였다.
왠지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다른 친구였다면
“친구야 기운내. 인연이 아니었겠지..
곧 좋은사람 생길거야!” 라며 격려해 주었겠지만
이미 우리는 그동안 참아왔던 빡침이
아주 많이 쌓여있었던 상태였다.
녀석을 발견하자마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외쳤다.
“우와 솔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인 놈 낯짝은 저렇게 생겼나요!?”
“왜 닭똥같은 눈물이라도 질질 흘려봐 찌질아~”
그렇게 우리는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똑같이 갚아주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긴 조롱타임이 끝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자세한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잘 지내다 갑자기 이별을 통보해왔다며
아무래도 바람이 난거 같다는 친구의 말에
갑자기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술을 마시며
왜 우리에겐 여자가 없는가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다들 사지멀쩡하고
평소에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주로 영화나 음악이야기 일 정도로
문화나 예술분야에 관심도 많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와의 인연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운이 없는거다.’
‘주변 환경이 여자를 만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분분했고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답답해졌다.
내가 봤을때 답은 간단했다.
우리 넷 전부
현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외모가 아니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우리가 고운 얼굴은 아니었다.
아무리 우리가 모여서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고상한 대화를 나눈다 해도
남들의 시선으로 봤을땐 한낱 마적떼들의 모임이나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게 분명했다.
다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얼굴의 소유자들이었다.
수렵생활을 하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쩌면 먹어주는 얼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남추였다.
‘사인조 남성 추남단’
나의 이런 의견을 제시하자
느닷없이 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니가 제일 못생겨서 그렇다.”
“인륜을 벗어난 얼굴이다.”
“아 엄마가 못생김 옮는다고 너랑 놀지 말랬는데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얼굴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화가나는 얼굴이다.”
“달라이라마도 귓방맹이를 날리고 싶게 생긴 얼굴이네.”
온갖 비난과 인신공격이 나를 향했고
그렇게 난데없이 디스전쟁이 시작됐다.
그동안 알아온 세월이 있는지라
비밀이란게 존재하지 않을정도로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있었고
서로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너는 이새끼야. 키가 난쟁이 똥자룬데 어쩔거야.
어떻게 초등학교때 보다 더 작아진거 같냐?”
“미친. 니 머리길이 빼고 어깨까지 재면 얼마 차이도 안나는데?
대가리가 아주 아메리칸 사이즈야. 맞는 모자가 없어”
“머리빼고 재도 너보다 큼ㅋ 움파룸파족 새끼야.
빨리 초콜릿 공장으로 꺼지세요”
“너 요새 탈모약 바른다며?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그러냐.
대머리는 답도 없다더라.”
온갖 원색적인 비난들이 오갈 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앉아있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너희 지금 도가 너무 지나친거 아니냐?”
친구의 일침에 타올랐던 열기가 잠시 사그라 들었고
다들 아차 싶어 말을 전부 멈추었다.
“못생긴게 너무 도가 지나친거 아니냐고.”
다시 불이 붙었다.
“넌 빠져 이 코쟁이 새끼야. 아주 코가탄탄 즐라탄이네.”
“너 내가 아침에 나올때
코에 붓기 빼고 나오라 그랬지. 잭키찬 새끼야.”
“코가 크면 건실하다는데 넌 왜이렇게 부실하냐.
“
약점을 난타당한 친구마저 디스전에 끼어들었다.
원래 좃밥싸움이 재밌다고
주변의 시선이 조금씩 모아지는게 느껴졌다.
우리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이거였다.
‘그래도 그나마 이중엔 내가 제일 낫다.’
이대로는 도저히 대화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객관적인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술집 사장님에게
누가 제일 잘생겼나를 여쭤보기로 하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난데없는 우리의 질문에
사장님의 얼굴엔 고민이 가득했다.
사장님은 밀려드는 주문도 잊은 채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냐는 우리의 말에
사장님은 창업을 결심했던 그 때 이후로
이렇게 고민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다.
한참을 고민하던 사장님은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사장님은 너희 모두 우열을 가릴수 없으니
술이라도 먹고 잊으라며 술값을 할인해 주셨다.
우리는 그 가게에서
추남할인을 받은 최초의 손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