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야기임.
스마트폰도 카카오톡도 없던 때.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 쯤
16화음 64화음
그런 폴더폰들이 유행하기 시작했었음.
나는 운이 나쁘게도 지망하지 않았던
고등학교에 홀로 진학하게 되었고,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음.
한창 사춘기가 와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하나같이 귀찮게 느껴졌지.
고1, 4월이었다. 4월 11일.
여느날처럼 버스에 올라타 잠에 골아떨어졌고
1시간이나 가야되니까 버스에선 늘 잠만 잤다.
어차피 학교 앞 정류장에 다다르면
만원버스에서 애들이 모두 내리니까
깊이 잠들어 있어도 소란스러움에 깨곤 했거든.
근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중간지점이 지나서 눈을 떴다.
‘아.. 아직 OO시장이네..’
하며 다시 눈을 감으려는 찰나.
여학생 한 명이 버스에 올라타더라고.
깔끔히 다려입은 새하얀 교복
그리고 조금 펑퍼짐한 네이비색 치마
한눈에 모범생이라는 것을 직감..
은 구라고 그냥 존나 예뻤다.
자는 척하다 한번 올려다보고,
창 밖을 보는 척하다 한번 더 보고,
시계를 보는 척 한번 더 보았다.
학교 앞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고
나는 맨 마지막에 내렸다.
가는 길이 같아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따라걸었다.
걔가 3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2층 교실로 들어갔다.
그 날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들리는 이야기에
그 애는 가정형편이 어렵다했다.
아버지께서 일을 하다 다쳐 누워 계시고,
어머니가 새벽 일찍 일하러 나간다했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우리학교 옆에 붙어있는 중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매일 같은 버스를 타기 위해 애썼다.
고맙게도 그 애는
거의 늘 같은 시각에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버스 배차간격이 크지 않은 탓에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녀공학에 진학한 것은
순전히 내 뜻이 아니었으며,
낯가림이 심한 탓에
여자애들과 대화할 일도 없었다.
허우대가 멀쩡한 덕분에
그래도 남자애들과는 잘 어울렸고
감사하게도 그 아이 역시
친구들 사이의 인기로 인해
학생회장단 모임에서 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다.
2학년 반배정이 되고
가장 궁금한 건 역시
그 아이는 몇 반이 되었을까 하는 것 이었다.
나는 중앙계단이 보이는
복도중앙의 2학년 3반 이었고,
그 아이는 한 층 위의 2학년 8반 이었다.
내가 그 때 생긴 버릇이 바로
교실에서 복도창문을 바라보는 것 이었다.
계속 창문만 보고있으니
친구들이 이새끼 귀신본다고 놀렸고
남자애들이 3층 여자반으로 올라갈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늘 그 아이가 계단을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주로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은 후
매점을 가려고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계단을 내려오곤 했다.
운동장 시멘트 계단에 앉아 있으면
걔가 산책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가을에는 축제가 있었다.
동아리 별로 각 교실에다가
여러가지 컨텐츠들을 전시하고,
학생들에게 동아리를 홍보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동아리에 가입하는 건 자유였고,
나는 소속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친구들과 축구나 농구하는 재미로 지냈었다.
그래도 친구들을 보러
동아리들을 둘러보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야!” 하고 누가 뒤에서 불렀다.
여자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아이였다.
나는 소심하게
“어..응?” 하고 대답했다.
“너 나 알지? 나 8반!”
“아..어.. 응.”
“이거 내가 만든거야. 우리 동아리에도 놀러와.”
“어..응..!”
그리고 내 손에 쥐어준 건 코팅된 종이 하나.
색도화지에 어린왕자와 여우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라고 쓰여져 있었다.
갑자기 그 때 생각하니까 눈물이 날 것 같다.
태어나 그렇게 심장박동이
크게 들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손도 부들부들 떨리고,
호흡도 컥겈커컥 했을 정도였다.
걔는 독서동아리였는데,
그런식으로 책에 있는 글귀로
책갈피? 뭐 그런걸 만들어서 홍보를 했던거 같다.
그게 걔를 짝사랑한지 18개월? 만의 첫 대화였다.
후에 대학생이 되고 시간이 흘러서야
여자들과의 대화에도 익숙해졌지만,
아무래도 17세, 18세 무렵
나는 여자와 대화를 한다는게 쉽지 않았다.
남자들의 눈은 애 어른 할거없이 같다고
누가 그랬었는데,
이미 남자들 사이에서
걔는 하루에도 몇 번씩은 거론되는 아이였고,
나는 그저 못 들은척
“야 걔 괜찮지 않냐?”는 친구의 물음에도
그냥 한번 씨익 웃을 뿐이었다. 조커처럼.
모두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나 역시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이
별 것 아닌 일이 될 것만 같아
그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저 아침에 한번.
점심시간에 한번.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한번.
그렇게 하루 세 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늦은 밤 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켜고
CD플레이어에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아이 생각을 했다.
형편없는 시를 휘갈기기도 했다.
진짜 순수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한 여름 귀뚜라미 소리가 밤공기를 가를 때도
늘 그 아이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고나서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참을 수 없이 마음이 급해져서
당장이고 고백한다던가
만지고 싶은 욕망이 솟아났지만
그 때 만큼은
영혼마저 순수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감수성에 젖어서
노래를 듣다가도 흐엉엉헝 울기도 했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졸업이 눈 앞에 와 있었다.
졸업은 기쁨과 설렘이지만
마침표라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동반한다.
나 역시
이제는 그 아이를 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졸업은 너무 슬픈 현실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결과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지만,
같은 학교로 진학할 수는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
말 한마디 먼저 걸어보지 못한 후회가
그제서야 밀려왔다.
수능이 끝나고서야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친구는 “병1신새끼야.. 으이구..” 하고 말더라.
냉정한 놈이었기에,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나도 용기도 확신도 없었기에..
졸업식 아침.
우리 학교는 졸업식에도 교복을 입는 분위기였다.
강당에 모두 모여 식순이 진행되었고,
그 아이는 대표로 상을 받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졸업 안하면 안되나요..ㅅ1발..’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자
눈치없는 친구가
“에이~ 지훈이 운대요~ 운대요~” 놀렸다.
“이상으로 OO 고등학교
제 O회 졸업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졸업식이 끝이 났다.
아.. 진짜 끝인가..
운동장에서는 가족들과
사진 찍는 졸업생들로 북적였다.
나도 부모님과 한창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때.
저기 멀리 그 아이가
교문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야!!!! OOO!!!”
3년동안 한번도 말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질러버린 것이었다.
불러놓고도 오히려 내가 얼굴이 빨갛게 변하면서
혹시나 그냥 가버릴까 걱정하며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고 있는데,
“어? 야 지훈~~ 졸업축하해”
하며 웃어주더라.
덕분에 용기내서 말했다.
“야.. 벌써 가? 사진 좀 찍지.”
“응, 알바가야돼서~”
“사진 같이 찍을래?”
“그래!”
사진 한 장.
겨우 사진 한 장..
그렇게 3년의 짝사랑이라는 결실은
사진 한 장으로 끝이 났다.
입학하고 첫눈에 반해서,
그렇게 내 학창시절 3년의 짝사랑은
사진 한장으로 끝이 났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그 사진도,
처음 내게 말걸어주며 주었던 어린왕자 책갈피도.
군대갔다와서 급히 이사하는 도중에
지금은 다 사라져버렸다.
혹시나해서 짐을 전부 뒤져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되고 졸업앨범 뒤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해볼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없어서
그저 회상에 머무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때의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 건
아마도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기 때문 아닐까
내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에 있어줘서 고맙다.
어디서 무얼하든 언제나 행복하길.
추억은, 내일을 살아가는 양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