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도 제짝이 있다는 말 들어보셨죠?
저희 아버지는 어느 아버지보다 더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술만드시면 180도 변하셨고, 저는 그렇게 5살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길들여졌습니다.
그게 길들여지다보니 매일 맞는 날은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냥 지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방학 때 일기를 며칠 밀려서 안 쓴 걸 아버지에게 들켜서 꾸지람을 듣고
아버지가 화에 못 이기셔서 크리스탈 유리로 만든 재떨이로 저의 귀 위쪽 머리를 내리쳐
피가 분수처럼 나오는 거 수건으로 막고 병원으로 달려간 일도 있고
아무튼 그런 가정에서 14살까지 지내다가 도저히 못 견뎌 가출을 했습니다
그때가 1987년도입니다
돈 한 푼도 없이 집을 나오니 갈대도 없고 충무동 국도극장 앞에서 그냥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구경하고 하다가
배가 너무 고파 등대에 가서 낚시하는 아저씨들에게 회를 얻어먹고 지내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아저씨를 만나 밥을 사주면서 재워주고 먹여준다고 하기에 무작정 따라갔습니다
거기가 바로 신문팔이 시키는 곳이란 걸 가서야 알았죠
군기 잡는다고 처음 들어가자마자 거기 있는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신문을 팔면서 감시를 당하고
그러기를 약 4개월 동안 하면서 지내었지요
어느 날 신문을 팔다가 똥이 마려워서 감시하는 형에게 화장실 간다고 말하니 문앞에서 기다리는 겁니다
마침 화장실 안에 들어가니 뒤쪽에 나갈 수 있는 창문이 있기에 거기로 도망쳐 무작정 택시를 타고 갔지요
신문 팔은 돈 약 3만 원 정도가 있어서 그거로 무작정 서울로 도망왔지요
길도 모르기에 그냥 아무 데나 막 걸어가면서 최대한 배고픈 걸 참아가면서
배가 너무 고프면 그냥 환타에 식빵 하나 사 먹으면서 3일을 지내다가 어느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문에 배달원을 구한다는 전단을 보게 되어 무작정 들어가서 밥 먹여주고 재워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말을 하니
주인이 몇 살이냐고 물어보길래, 한 살 더 불러서 15살이라고 말하니 어려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여기까지 흘러온 이유를 말씀을 드리니
그럼 배달은 미성년자라서 들키면 자기도 벌금을 물으니 주방으로 들어가서 설거지를 하라고 하더군요
네~~중국집입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열심히 일했어요
일을 잘못하면 주방장님께 국자로 머리를 맞기 일쑤고, 기술 배우려고 가까이만 가면 욕 먹기 일쑤고
마침 라면[면 뽑는 사람] 형님이 사람이 좋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시며
면 뽑는 기술만 있어도 어디 가서 밥 먹고 살고 주방장 기술은 주방에만 전문적으로 일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일 마치고 나서 유통기한 지난 밀가루 가지고 반죽을 해서 죽어라 배웠습니다
기게면이 아니라서 배우기 힘들더군요
3년을 그리 배우고 나니 이제 내가 뽑은 면도 손님에게 나갈 정도의 기술을 터득을 해서
라면 형님이 나오지 않는 날은 내가면을 뽑아서 손님에게 드리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주방장님이 그만두고<주방장은 항상 몇 번이나 바뀌었음>
라면형님이 주방장으로 올라가고 제가 라면으로 승급을 해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총 7년 동안 일을 하며 돈도 제법 모았고
기술도 이제 어디 조그마한 중국집에 가서 주방장 소리들을 정도로 기술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주방장 형님이 자기 고향 근처에 가게를 낸다면서 그만두고 제가 주방장으로 승급이 되어 주방을 책임을 지게 되었어요
그 집에 총 9년 동안 일을 하며 주방장까지 올라갔지요
어느 날 일을 하다가 홀 서빙하는 아줌마가 참한 아가씨가 있는데 소개해준다고 하더군요
보통 중국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 얼마 못 가 그만두고 하는 사람 엄청 많다고 하시면서
꾸준히 근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먹고 소개해준다고 하길래
그동안 먹고살기 바쁘고 기술 배운다는 그 일념 하나로 살아오다 보니 아가씨 만날 여력이 없었더군요
휴일에 저 혼자 가기엔 부끄러워서 아줌마랑 같이 가서 어느 정도 분위기 좀 띄워 달라 해서 같이 갔습니다
커피숍에 들어가 그녀가 오기만 기다리면서 손에는 무슨 땀이 그리 나는지, 심장은 왜 이리 뛰는지..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더군요
그런 긴 시간이 흘러 문으로 어떤 아가씨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넋이 나갔습니다
이승기가 나오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 신민아가 입었던 하얀 원피스 있죠?
그걸 입고 긴 생머리를 뒤로 넘겨서 분홍 리본으로 묶어서 문을 열고 들어오기에
설마 저리 예쁜 여자가 나를 만나러 오겠나! 저리 예쁜데 남자친구가 없겠나! 생각하는데
내 옆에 앉은 아줌마보고 고모 하면서 손을 흔들며 오더군요
조카를 나에게 소개해주는 거구나 생각 중에 일단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앉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땅만 보고 손가락만 이리 꺾었다 저리 꺾었다 반복만 했지요
마침 아줌마가 말문을 열어 싸늘한 분위기를 잡아주어 서로 이야기를 하며 있는 중에 아줌마가 우리끼리 놀라고 하시며 가시는 겁니다
아~~그 순간만큼은 지옥이었습니다
여자는 무조건 재미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설거지하는 후배 놈에게 들었기 때문에
평소에 내가 어디 여자랑 그런 감정을 느껴보지도 못했지만, 이 난관을 어찌 뚫고 나가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홀 서빙 아줌마가 고모냐고 물어본 그때부터 말이 술술 풀리더군요
비록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재미있게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 마음이 매우 고마워서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억지로 재미나게 해주려는 모습보다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데이트하다가 집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왔지요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제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4살에 가출을 했으니 그게 학력이 마음에 걸려 고민이 되더군요
그걸 숨기고 1년여를 그녀랑 만나면서 어느 쉬는 날 사장님 차를 빌려
그녀랑 데이트하다가 밤에 한강 둔치에서 소주 한 병이랑 자갈치 과자 하나를 사서
그녀랑 마시면서 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가출을 한 계기 등등 하나도 안 빠지고 다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더니 살며시 안아주며 학위는 검정고시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어도 된다고 하면서 시간 나는대로 공부를 하라고 하더군요
소주를 두 병쯤 마셨나 만난 지 딱 1년여 만에 그녀랑 첫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 뒤로 일 마치면 다락방에 올라가 죽으라 공부를 하였습니다
모르는 건 그녀에게 물어보고 참고서를 보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결국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까지 다 패스를 하였습니다
제일 기뻐해 주는 사람들은 역시 가게 사람이랑 그녀였지요
그날 밤 가게에서 잔치를 벌였어요
그리고 그녀를 소개해준 고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반지랑 목걸이를 선물했지요
고모님은 너희 결혼 언제 하냐고만 물어보고 저는 아직 집 살 돈을 다 모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니
10연 년 동안 그 정도 안 모았느냐고 물어보시길래 아파트 같은데 말고
2층짜리 단독주택을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녀에게 저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며 엄마가 도망가고 아버지 혼자서 파란 갑판 같은 천막집에서 산다고 하니까
그녀가 2층짜리 주택을 사서 xx씨 아버님도 모시고와야지 그래도 부모님인데 자식이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좀 더 모아서 2층짜리 주택을 사고 그녀랑 결혼하려고 했지요
그러기를 세월이 흘러 그녀가 전화를 해서 이번 휴일에 나오라길래 알았다고 하고 휴일에 그녀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나가니 고모님이랑, 그녀의 어머님이 와 계시길래 깜짝 놀라 그녀의 어머님에게 큰절하니
커피숍에서 그러니까 당황하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시더군요
옆에 있던 어떤 아저씨는 “아따 그 양반 화끈하구먼, 하시면 껄껄껄 웃으시고
저는 얼굴이 빠개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자리에 앉았지요
그녀의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이 고모에게 많은 말을 들었다.
사람이 성실하면 된다. 불우했던 과거는 잊어버리고 우리 애를 잘 보살펴 달라고 하시며
제가 주택을 살 동안 결혼을 미룬다는 걸 들으셨는지 혼수 해갈 돈을 그냥 제가 번 돈이랑 합해서 사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끝나기를 무섭게 그녀가 박수를 치며 “엄마 진짜야? 진짜 그래도 돼?, 하며 막 좋아 하는 겁니다
저는 그저 어른들 말씀만 따른다고 말하고 다 같이 나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집을 구하러 다녀서 좋은 집을 구하고 거기 안에 들어갈 살림은 사장님 부부께서 어느 정도 해주셨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려면 아버지에게 가야 하는데 솔직히 갈 마음이 없더군요
그냥 앞뒤 생각 없이 아버지께 갔습니다
집이 엉망진창이더군요
혼자 사시니 뭐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맨날 술만 드셨는지 소주병만 너부러져 있고
주무시고 계시기에 들어가서 깨우니 한동안 멍하니 그녀랑 저를 보시기에 저라고 말씀드리고 앉아서 이야기했지요
며느릿감이니 저희 결혼하는데 아버지께서 꼭 오셔야 한다고
그러니 술 좀 드시지 말고 건강 좀 챙기시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때 펑펑 우시더군요
해준 게 아무것도 없고 너 어릴 때 맨날 두들겨 패기만 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너희 결혼식에 무슨 자격으로 참석을 하느냐 하시며 막 우시는 거 보니
참 부모가 뭔지, 자식이 뭔지, 내 가슴 한쪽에서 뭔가 찡한 게 느껴지며 슬퍼지려는 걸 꾹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어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부모이기에 불쌍하게 느껴지고 애처롭게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한 달 후에 아버지 집으로 와서
무조건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말씀드리니 다 늙어서 너희랑 살면 괜히 주책만 부리고 며느리가 힘들어진다.
그냥 나는 여기서 살다가 하늘에서 오라고 할 때까지 있으련다 하시며 안 오신다고 하더군요
동네 사람들과 통장님, 반장님 전부 다 와서 아들이 와서 모시고 갈 때 빨리 따라가라고 하시며
한씨는 아들이 성공해서 모신다고 하는데 왜 안 간다고 막무가내냐 라고 막 혼내시더군요
서울 집에 아버지가 쓸 물건 및 옷이랑 다 준비 돼 있으니
필요 없는 건 다 버리고 필요한 물건만 들고 가면 된다고 하며 다 정리해서 모시고왔지요
아버지는 1층을 쓰시고 우리는 2층을 쓰며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를 보아서 그런지 서울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일절 술도 마시지 않고
심심풀이로 마당에 텃밭을 가꾸면서 동네에 나누어주시며 사시는 게 재미가 있으신 가봅니다
쭉~~사시다가 2002년도 우리나라 월드컵 4강에 든 걸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던 게 꼭 어제 같은데 2003년에 돌아가셨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2층은 세를 주고 우리는 1층에서 살며 아이들을 키우고 지내면서
대출 조금 받고 모은 돈이랑 합해서 내 가게를 차리려고 하니
사장님께서 그동안 가게를 위해서 많이 애썼다고 하시며 3천만 원을 주시며
형편이 안되어서 이것뿐이 못 주는 걸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런 돈을 받을 줄 꿈에도 몰랐어요
가게 사람들이 퇴직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으라고 하길래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돈을 전부 다 모아서 저의 가게를 차렸습니다
비록 큰 가게는 아니지만, 밥 먹을 정도의 경제적으로는 불편함이 없고
애들 잘 크고 있고 예쁜 아내도 그 착한 마음씨만큼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내랑 밤에 맥주를 마시면서 과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명문여대생이었던 여자가 하필 나 같은 남자를 만났느냐고 물어보니
그 당시에 고모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시길래 어떤 사람인지 일단 보려고 나왔다더군요
성실하고 진실한 모습이 좋았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불우했던 저의 어린 시절이 한몫을 했나 봅니다
자기가 꼭 지켜주고 싶었다나 뭐라나……………………
사람은 성실하게만 살면 누가 알아줘도 알아주는가 봅니다
저의 딸과 아들도 나중에 결혼시킬 땐 졍제적 보다는 인간성이랑 성실성을 보고 결혼을 시켜야겠습니다
지금은 아내나 나나 중년이라서 그때의 풋풋한 사랑은 없겠지만 전 아직도 나의 아내를 사랑합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저의 장모님을 모시고 와서 살려고 계획 중입니다
혼자 사시는데 이제 우리가 모셔야죠
아내도 시아버지 모신다고 고생했는데 장모님도 모셔와서 같이 살아야지요
결혼 안 하신 분들도 꼭 좋은 인연 찾으시고, 결혼 하신 분들은 나이 먹으면 그저 자식보다는 배우자가 제일입니다
그럼 긴~~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