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야!”
대략 오미터 남짓 떨어진 수면 위쪽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솟아있던 것이다.
족히 수십명은 되어보이는 남녀가 빼곡히 모여서 삼촌을 등지고 물 위쪽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있었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이 기이한관경에 삼촌은 두 눈을 비비며 그것들을 다시 한번 똑바로 쳐다봤다
그것들은 출렁이는 파도속에서 꿈쩍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중 바짝깎은 머리에 커다란 귓불을 가진 남자의 뒤통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임마야 니 거기서 뭐하노?
행님왔다 당장 나온나! 임마 퍼뜩 집에가자!”
그건 바로 삼촌이 애타게 찾고있던 고씨였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파도를 뚫고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아까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소름끼치는 그 소리에 삼촌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랜턴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은 누군가 갯바위 뒤쪽에서 고개만 내밀고 삼촌을 노려보고 있었다.
상반신 만으로도 일반 성인의 키를 훌쩍 넘기는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채 퉁퉁 불어있었다
이마 곳곳에는 붉은 점들이 찍혀져있었고 비정상적으로 넓은 미간에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은 움푹 패여져 광대뼈 바로 위쪽에 붙어있었다
끝이보이지않게 늘어진 덥수룩하고 퍼석한 머리칼은 흡사 들짐승의 갈기처럼 보여서 더욱더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살기가 가득한 시뻘건 두눈을 부릅뜨고 삼촌을 노려보고있었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 곳에는 온통 피로 얼룩긴 오방색 저고리가 보였다.
역시 그건 삼촌이 아까 물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삼촌의 손끝에 느껴졌던 기다란 손가락 끝에는 새까만 손톱들이 제멋대로솟아나있었다.
공포에 질려 그대로 얼어붙은 삼촌은 그저 그것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것이 바로 삼촌을 덮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것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삼촌을 노려보고있었다
그리고 요란한 파도소리와 빗소리가 잠깐 멈춘거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장은 터질듯 요동을 쳐댔고 피를가득 머금은 슈트에서는 아련한 온기와 함께 비릿한 피비린내가 스멀스멀 오라오고있었다
‘그래…이렇게 된 거 이제 죽기살기다’
삼촌은 마음속으로 셋을 센 뒤에 곧장 물로 뛰어들어 전력을 다해 육찌까지 헤엄쳐가기로 했다
여기서 백미터 정도만 헤엄치면 발이 땅에 닿는 수심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조류를 잘못 만나면 순식간에 먼바다로 밀려나 그대로 죽을 지도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모든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둘….’
방금전까지 삼촌의 눈앞에있던 그것이 순간 자취를 감춰버렸다.
삼촌이 육지까지의 거리를 재느라 순간적으로 그것에게서 시선을 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 불쾌한 숨소리와 함께 얼음같이 차가운냉기가 삼촌의 볼을 스치며 말로표현할수없는 엄청난 악취가 풍겨져왔다.
온몸에 털이 쭈뼛선채 그대로 굳어버린 삼촌은 눈만 겨우 움직여 곁눈질로 그걸 살짝 쳐다보았다
차마 랜턴으로 그걸 비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삼촌은 물속으로 몸을 날렸다
짠 바닷물이 상처에 닿아 칼에 찔리는거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따윈 없었다.
삼촌은 죽을힘을 다해 육지로 헤엄쳐갔다.
몸이 조금 앞으로 나아간다싶다가도 금새 힘이 빠지며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눈에는 핏물이 들어차서 이내 시야가 흐려졌다.
삼촌은 오랜경험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처음출발했던 방향을 애써 기억해내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팔다리의 감각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엉뚱한 곳으로 밀려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바로 그 때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던 그 때 삼촌의 손가락에 무언가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억세고 기분나쁜 촉감은 그것의 머리카락 같았다.
놈이 여기까지 날 쫓아왔구나 하고 생각한 삼촌은 결국 모든 걸 체념해버렸고
아무감각이 없는 몸으로 바닷물만 꾸역꾸역 삼키며 의식을 잃어갔다.
아득한 시간이 지나고 삼촌은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끌려가고있다는 걸 느꼈다.
이대로 놈에게 잡혀가는 건가 싶어 마구 저항을 하자 누군가 주먹으로 삼촌의 얼굴을 내리쳤고 삼촌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헉…..여기가 어딥니까?”
곧이어 삼촌은 자신의 두발이 땅에 닿아있다는 걸 알았다.
몇번이고 눈을 비벼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주민 세명이서 삼촌을 부축하며 해변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야이 미친놈의 자슥아 니 뒤질라고 환장했나!! 퍼뜩 다리에 힘줘라 여서 정신 단디 안차리면 다 죽는다고”
귀에 익은 걸쭉한 부산 사투리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업반장 윤씨 아저씨였다.
늦은 시간까지 해변을 수색하던 몇몇의 주민들의 저 멀리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삼촌을 기적처럼 발견했고
모두 그가 사라진 고씨인줄알고 바다에 뛰어든 것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을 살아난 삼촌은 곧바로 병원으로이송되었고 급히 수혈과 봉합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삼촌의 열손가락은 거의 대부분 골절되어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작은 어머니께서 당장 이혼하자며 펄펄 뛰셨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촌은 퇴원한 그날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꿈을 꾸면 쾌청한 하늘아래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있고 바다의 한가운데에는 고씨가 둥둥 더 있다.
삼촌이 그에게 점점 다가갈수록 고씨의 표 정은 일그러지고 그와 동시에 주변엔 짙은 어둠이 깔린다
고씨는 몹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삼촌을 응시하다가 입을 뗀다
“아….아….”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그것은 살기가득한 시뻘건 눈을 뜨고 커다란 입을 쫙 벌리며 삼촌의 코앞까지 다가와 활짝 웃는다
그리고 그 입속에는 푸석한 머리카락들과 검붉은 피가 가득하다
삼촌은 물속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어두운 심해로 끝없이 끌려들어가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 일로 삼촌은 한평생을 같이 했던 바다를 등지고 잠수사 일을 그만두었다.
파도소리만 들려와도 그날의 그 기억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바닷가 근처만 가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리던 삼촌은 아주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자신이 고씨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채감과 함께 그것의 끔찍한 잔상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삼촌은 가족들과 함께 제주를 떠나 고향인 대구로 이주했고
작은 어머니와 함께 종교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그 트라우마에서 해방될 수가 있었다.
환갑이 훌쩍 넘으신 삼촌은 두 아들이 결혼하여 독립하자 작은 어머니와 함께 제주의 그 마을로 돌아갔다.
어릴 때 삼촌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했던 나는 무척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웠던 그 마을의 해안 절경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몇년 전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삼촌을 뵙기 위해 그 마을을 찾아갔는데 그곳은 관광개발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갯바위 쪽은 예전의 그모습 그대로였는데 마을 선착장이 부두로 확장이 되면서 방파제에 완전히 가로막혀 버렸다.
마을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그 일 역시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렸지만 가끔은 궁금할 때가 있다.
30여년 전 삼촌이 마주했던 그 존재는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또다른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