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1층의 편의점이 폐업했다.
편의점인데 12시면 문을 닫으니 나같은 올빼미의 편의에는 썩 맞지 않는 편의점이었다.
다른 편의점은 길 건너에나 있으니 이제부터 담배는 줄고, 충치가 덜 생기고, 더 건강해질 것이다.
처음 여기로 이사왔을때 자기 딸이 좋아한다며 싸인을 부탁하던 편의점 아줌마는
그 후로 내가 다녀가는 내내 끼니를 챙겨 묻고, 일은 잘되는지 묻고,
더 필요한건 없는지 물으며 서비스를 챙겨주었다.
밥은 먹었다고 했고, 일은 잘되고 있다고 했고,
더 필요한것은 없다고 했지만 기어코 옆구리로 찔러주시는 음료수를 받아들고 머쓱하게 감사인사를 하곤했다.
어떤 날은 그 친절이 너무 불편해서 담배를 참고 차에 올라타 매니저의 것을 뺐어 문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식사는 하셨냐는 그 흔한 인사 한 번 먼저 건낸적도 없을 만큼 나는 무심한 단골이었고,
그래서 마지막까지도 아줌마는 내 이름 뒤에 ‘씨’자를 못 떼냈던 것 같다.
아인씨. 아인씨. 지독히도 불편한 그 이름.
아마도 대구의 부모님 집에 살며 학교를 다니거나 이렇게 밤마다 술을 푸겠다고 놀러를 다니거나 했다면 우리 엄마가 그러지 않았을까.
(물론 엄마는 나를 홍식이라고 하지만,)
난 또 그 마음이 그렇게 싫고 귀찮아 다정하게 대답 한 번 제대로 해주지 않는 무뚝뚝한 아들 노릇을 했겠지.
경상도 남자라 무심하다는 어쭙잖은 핑계로 10년쯤 후에는 매일 저녁 전화해 엄마의 안부를 묻겠다고 다짐한다.
어리석게도.
엊그제 마지막으로 편의점엘 갔을때.
그때도 이미 가득 찬 봉투 사이로 공짜 햇반을 꾹꾹 찔러 넣으며 아줌마는 내게 소녀처럼 수줍게 작별인사를 건냈다.
“일 잘되고, 담배 좀 줄이고 아, 나 교회가면 아인씨 기도 해요. 나 기도빨 진짜 잘먹거든.
그니까 아인씨 진짜 잘될꺼야.”
그런 말엔 무방비였다.
습관처럼 감사하단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진짜요? 기대할께요!’ 하며 장난스럽게 받아칠 그만큼의 세련된 구석도 내겐 없었다.
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엄마에게 내가 느끼는것 처럼 죽도록 어색하고 간지러운 마음만 있을뿐.
서울에 사는 내내 1년 마다 집을 옮겨 다니며 만나왔던 기억도 나지 않는 우리집 1층의 편의점 아줌마,
아저씨, 알바생들.
내 엄마 보다 더 자주 나를 맞이하던 그 사람들.
어쩌면 처음으로 그들중 한 사람의 인사를 진짜라고 믿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흐릿하게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나는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그날따라 문에 달린 방울이 더 요란하게 흔들렸다.
내겐 기억할 필요 없는 소리. 딸랑딸랑.
딸에게 조금 더 가까운 엄마로 돌아가는 편의점 아줌마에게 그 방울소리가 얼마나 아련하고 고된 추억일지에 대해 감히 추측해 본다.
어젯밤.
담배를 사러 나가며 같은 시간이면 원래도 불이 꺼져있을 그 편의점이 그렇게도 아쉬웠던 것은
굳이 횡단보도를 건너야하는 불편 때문이 아니라 이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 12시면 문을 닫는 편치 않은 우리 아파트 편의점 아줌마의 지독히도 불편했던 친절 때문이었으리라.
뒷통수가 간지러운 과한 친절들을 뻔뻔하게 누리던 삶을 잠시 접고 밤이면 감지도 않은 머리에 모자하나 얹고
어슬렁어슬렁 담배나 사러 나가는 보통의 삶 속에서
내가 다시 그런 불편한 친절을 느낄 수 있을까 되뇐다.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가슴 뜨거운 행운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