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20년간 짜장을 볶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완전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아저씨야.
가끔 중국집에 대해 이것 저것 묻는 애들이 많아서 끄적여본다.
1.또라이 짬짜면
이 아저씨는 동네에서 또라이로 유명했어.
헛짓거리 하는 또라이가 아니라 진퉁 또라이.
그 아저씨가 일주일에 딱 한번.
점심에 우리 가게 밥 먹으러 와서 하는 전통적인 의식이 있는데,
짜장면을 시키고 짬뽕을 시켜서
짜장을 충분히 비비고 두 음식의 면을 서로 바꿔 담는거야.
정말 신중하게.. 짜장이 짬뽕에 과하게 섞이지 않게..
내가 진짜 궁금해서
“아저씨 그렇게 먹으면 맛있어요?” 라고 물어봤더니
아저씨가 정색 빨고 “이게 맛있겠냐?”
그러고 승질을 버럭 내더라고.
그래서 그럼 왜 먹는거냐고 물어봤는데,,
그렇게 10년간 간간히 물어봤는데도
단 한번도 답을 안해주더라..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어.
1.아침밥 먹으러 오는 옆집 사장님
사실 이 분은 참 딱한 사람이었어.
2003년 우리 가게 옆집에 돈까스집을 오픈한 아저씨야.
그때 당시 아버지가 가게 주방을 책임지고 계셨었는데,
이 아저씨는 항상 늦은 점심을 우리 가게에서 시켜 먹었어.
매일 돈까스 튀기는데, 밥으로까지 먹기 싫다고.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다가
반년즈음 지나서 갑자기 문을 10여일 가까이 안여는 거야.
그래서 친분이 쌓일대로 쌓인 아버지가
그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왜 가게 장사 안하냐고 물어봤더니..
며칠 전에 사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
그 날 아버지가 억지로 계속 불러내서 가게에서 소주한잔 하시더라.
나는 주방에서 요리 만들어서 내 놓고.
그때 아버지한테 와이프가 아침마다 차려주던 아침밥이
너무너무 그립다고.. 말하면서 펑펑 우시더라고.
그때 아버지 曰 “자네 와이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자네 아침은 챙겨줄테니까 와서 먹어!
그리고 먹고 내려가서 가게 일 시작하고!”
결국 항상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던 우리 가게는
그 다음날 부터 그 아저씨 한 분만 보고 8시에 문을 열었지.
내가 가게 문을 닫는 날 아침에도 와서 드시고 가셨어.
그날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이
“네 아버지 아니였으면 나도 와이프따라 죽었을거다.
네 아버지가 내 생명의 은인이다” 였어..
그냥.. 가슴이 먹먹하더라..
3.방송 맛집 거르는 이유
내가 장사하면서 가장 증오했던 인간들이야.
아마 너네도 이름만 들어도
단박에 알아듣는 방송의 작가 두 년인데,
한 중년 남성과 와서 가게에서 음식 시켜먹고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사장을 찾더라.
그때 당시 내가 아버지에게 가게 인수한지
딱 1주일 정도 되었을 시기인데,
내가 나가서 인사했더니 명함을 주면서
자기들이 누구누구인데,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하시라고 했어. 처음에 속으론
“와 방송 타는건가..? 나도 방송국 물을 먹는건가?” 했지..
그런데 이게 웬걸.. ㅅㅂ
이것들이 500만원 1000만원 1500만원 코스를 들이밀더라고.
같이 온 중년 남성은 맛집 전문 브로커인데,
이런 식으로 가게에 가서 돈 받아서
자기가 마치 주방장인 것 처럼 행세하면서
말같지도 않은 행동을 하고 방송에 내보내 주는 거더라.
500만원은 몇분, 1000만원은 좀 더 길게,
1500만원은 연예인 대동.. 이런식으로.
처음에는 사기꾼들인줄 알고
그냥 가시라고 정중히 내보냈는데,,
며칠뒤에 우리 가게 근처 다른 가게가 지역 맛집으로 나오더라
그런데 그 가게가 진짜 동네에서 맛 없기로 소문난 집이거든.
결국 처음에는 방송빨로 한 반년 반짝 하더니
얼마 안가서 폐업했어.
내가 그 일 뒤로 맛집 프로를 안봐.
4.짜장 팔아 키운 아이들
이 남매는 좀 짠한 아이들이었어..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조부 밑에서 크는 아이들인데,
할아버지가 나라에서 나오는 보조금하고
아파트 경비일로 애들 키우고 계셨어.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 둘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몇 번 아이들과 오셔서
짜장면 두 개를 시켜서 드시고 가시더니
하루는 자기 아이들이 저녁을 여기서 먹고
일주일 뒤에 당신이 오셔서
계산하시고 하면 안되겠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그냥 계산 안하셔도 되니까
아이들 보내시면 집밥으로 먹이겠다고 하셨거든.
처음에는 미안해서 안된다고 완강하게 거절하시다가
아이들 생각해서 그렇게 하자는 아버지와
어머니 말씀에 설득되셔서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우리 가게로 와서
작은 방에서 놀다가 밥먹고 항상 집에 갔어.
갈때는 내가 데려다 주고..
그렇게 한 1년정도 지났는데,,
우리 아버지가 한 2~3일 말 없이 무언가 고민을 하시더라고.
그래서 무슨일 있으신가 했는데,
며칠 뒤에 어머니랑 나한테 한달에 가게 매출에서 일부 빼서
아이들 학원을 보내자고 하시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이 이렇게 계속 놀면 안될 것 같다고.
그래서 할아버지하고 상의해서
아이들을 동네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어,
어느덧 그 아이들이 한 녀석은 올해 대학교 3학년이고
한 녀석은 이번에 입학한다.
근데 진짜 장하게도 얘들이 둘 다 SKY로 진학했어,
진짜 그냥 기본적인 학원만 보내고
고등학교때 과외 한 번 못시켜 줬는데,, 진짜 장하더라.
그래서 기쁜 마음에 첫 째 대학갈때
할아버지랑 남매랑 우리 가족이랑 일본 여행 다녀왔고,
이번에도 일본으로 여행 다녀왔어.
나나 우리 아버지나 바라는 건 딱 하나야.
얘들이 자기 앞 가림 잘하고
각자 사람구실 잘 하면서 할아버지 잘 모시고 사는거.
5.밥값으로 아버지 살려준 의사 선생님
우리 집 가게가 두 곳이었거든.
(하나는 목동이고 하나는 지명을 말해 줄 수 없어
그 이유는 지금 말할 사람 때문에..)
두 곳중 한곳이 대학병원 근처에 있었어
그래서 병원 의느님들이 자주 회식을 오곤 했었지,,
배달도 많이 시켜먹고,
사실 그 매장은 다른 곳 보다는 병원이 주 고객이었어,
의사쌤들이 많이들 시켜먹었거든
그 중에 어떤 과의 과장님이 자주 오셔서
요리랑 술을 드시고 계산을 항상 안하고 가시는거야.
그래서 내가 아버지에게 왜 저 사람은 계산을 안하냐고 물어봤는데,
아버지가 저 사람 덕분에 우리 가게에 의사 선생님들
식사 주문이 미어터지는 거라고 하시면서
안받아도 된다고 하시더라고,
그래도 난 이해가 되지 않았어,
ㅅㅂ 솔직히 말해서 ‘음식을 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배울만큼 배운사람이’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뭐, 아니꼽지만 아버지 방침이라니,,
그냥 따를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한 3~4년즈음 지나서 아버지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셔서
내가 억지로 병원 건강검진을 받게 했거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 아버지가 위암 진단을 받으신거야, 2기..
하늘이 무너지더라 이걸 어찌해야 하나..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는건가.. 이러면서..
우리 아버지 병원에 입원하시고 수술 날짜 잡는데,,
진짜 손이 부들부들 거리고.. 눈물만 계속 나고..
그런데 병원 로비에서 그 과장님을 만났어..
나보고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드라..
내가 울고 있으니까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바로 우리 아버지 병실로 가서 아버지랑 얘기 하시더라고,
그러면서 요즘 위암은 말기만 아니면
괜찮다고 하면서 위로 해 주고,,
수술 날짜도 앞당겨 주고 병실도 옮겨주고
(1인실 가고 싶었는데 병실이 없다고 해서
못가고 있는데, 과장님이 해결해 주시더라고.)
당신이 담당하는 과도 아닌데 하루에 한번씩 오셔서
아버지한테 빨랑 퇴원하셔서
유산슬에 쏘주한잔 하자고 매일같이 농담 던지고 가시고..
처음에는 진짜 속으로 개ㅅㄲ 소ㅅㄲ 욕했었는데
나중에는 진짜 너무 고맙더라.
그 뒤로도 가끔 아버지랑은 얼굴 보시는 것 같더라고.
6.다시는 오지 마세요.
식당해본 사람들은 알거야.
진짜 거지 근성으로 뭉친 손놈들이 많다는걸..
하루는 우리 가게 홀에서 커플이 짜장면 짬뽕을 시켜서 먹었어,
평상시처럼 음식해서 내 놓고 다른거 하고 있는데,
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라고,,
요지는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거야..
겁나 놀랬지.. 그래서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죄송합니다.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요리 하나와 짜장 짬뽕을 다시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는데,,
남자애가 다짜고짜 쌍욕을 날리면서
드러운 음식 먹기 싫고,
이거 비위생적인걸 내가 먹었으니 돈은 당연히 못내고
오히려 돈을 받아야 겠다고 하더라고,,
뭔가 느낌이 오기 시작했어
식당해본 애들은 알지만 그 촉이란게 있거든?
그래서 그 손놈에게 머리카락 어디있냐고 물어봤더니
둘둘 말은 휴지 뭉치를 내게 던지더라.
그래서 펴봤지.. 근데ㅋㅋ
나는 곱슬머리고 우리 아버지는 빤짝빤짝 대머리인데,,
직모 한 가닥이 요기 있네..?
참고로 우리집엔 직모가 없어..
조곤조곤 설명했더니
지금 자길 의심하는 거냐고,
이거 인터넷에 다 올리겠다고 ㅈㄹㅈㄹ 하기 시작하더라고,
그러면서 경찰 부르겠다고..
(사실 이런 상황은 경찰을 불러봐야 소용이 없어..
경찰 관할이 아니니까..)
남자가 ㅈㄹ하기 시작하면서 테이블을 발로 찼는데
그릇과 컵들이 떨어지면서 깨졌고,
유리컵이 깨지면서 튄 파편이 뒷자석에 앉아있던
8~9살 정도 되는 남자 아이 발목에 튀어서
남자 아이가 다친거지..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어
지켜만 보고 있던 아이 부모가 직접 경찰을 불렀고
홀에 설치 되어 있던 cctv에
남자가 자기 머리카락을 짬뽕에 담그는 영상부터
아이가 다치는 영상까지 다 찍혀서 결국 그 남자는 경찰서행.
가게에서 진상 부린거랑 공갈 협박한 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고,
대신에 다신 가게에 오지 않기로 했지.
물론 아이가 다친건 우리 가게에서 치료비와
소정의 위로금을 전달했고,, (아버지 뜻이었어..)
7.너무 일찍 떠난 삼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집은 짜장면 집이었어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집에서 일하던 삼촌이 있었지
우리 아버지보다 딱 5살 어린 삼촌.
그 삼촌이 진짜 재미있었어
사람이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거든
만날 나 어렸을 때 배달가면서 나 태우고 가고,
오면서 쭈쭈바 하나 사주곤 했었어
이 삼촌은 실제 아버지 형제는 아니였지만,
아버지가 서울 올라와서 처음 가게를 하면서부터
같이 일한 사람이라 진짜 가족같은 사람이었거든,
이 삼촌이 내가 17살이 되던 해 설날에
가게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네 가다가
음주차량이 부딪쳐서 사고가 났어,
다행히 다친곳은 없었고 오토바이만 망가졌던터라
우리는 속으로 그래도 다행이다.. 이러고 있었어
설 연휴가 지나고 며칠 뒤 이제 괜찮다고
집에서 놀면 뭐하냐며 배달다녀 오겠다고 나가더라고,
그리고 30~40분즈음 되도 안 오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이거 이거 이노무 시키
또 다방갔나보다고 욕을 막 하고 계시는데,,
가게로 전화가 왔어.
그리고 어머니가 주저 앉으시더라고..
무슨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는데
삼촌이 배달하다가 사고가 나서 병원 응급실로 후송중이라고.
그 순간 바로 가게 문 닫고 아버지랑 어머니랑 같이 병원에 갔는데
피칠갑을 하고 삼촌이 누워있더라고
어머니 바로 쓰러지시고
아버지랑 내가 삼촌 수술장에 올려 보냈는데
수술장 들어가고 한시간 있다가 그대로 돌아가셨어.
삼촌이 고아라 가족도 없어서 우리가 장례 치뤘는데..
물론 아버지 어머니가 가장 속상하셨겠지만..
나도 나이차이 많이 나는 큰 형을 떠나 보내느라 너무 힘들었어.
당시에 퀵 업체가 지금처럼 있었을 때도 아니라서
배달 직원을 써야 했었는데 결국 그 뒤로 우리는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거리는 배달을 하지 않았고
자전거나 도보로 배달 할 수 있는 거리만 배달을 했어.
혹시라도 또 사람을 잃을까봐.
내가 일하는 중에 와이프 몰래 쓰는거라.. 여기까지만 쓸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