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애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였음
5학년 때 왕따 당하고 있길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다가
정도가 심해지길래 하지 말라고 한번 말했음
내가 또래 애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컸는데
그 당시에는 초딩 때 일진놀이가 유명해서
3짱이니 2짱이니 하는 놀이에
좀 유치했지만 내가 2짱이였음..
암튼 괴롭히던 애들은 그 후로 그 여자애 괴롭히는 걸 그만뒀고
그 여자애는 그날 이후로 나만 보면 부끄러워서 숨기 시작하는데
난 그게 꼴보기 싫었음
그래서 다가가서 왜 나만 오면 숨냐고 하니까
얼굴 빨개지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도망감
그 이후로 안 보였고 대화도 나눈 적 없음.
그렇게 중학교 올라가고
지역이 같다 보니까 같은 중학교가 됨
딱히 같은 지역이래도
딱히 친하거나 한건 아니니 아무런 왕래가 없었는데
중2 때 같은 반이 됨.
그런데 지금이나 옛날이나 왕따 당하는 건 똑같았음
남자애들은 안 놀렸는데
여자애들은 얘는 뭐가 어떻다 쟤는 뭐가 별로다 흉보기 시작하고
뒷담화에 화장품도 빼앗고 그랬는데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음
그래서 여자애들한테 물음
도대체 왜 괴롭히냐고 진짜 궁금해서 그런다고
그냥 물어보는 거라고 하니까
괴롭히던 여자애가 말을 더듬더니
“아니 그냥 우리 노는건데?“ 라고 했음
거기서 나는 왠지 모르게 빡쳐서
놀고 있는 건데 얘는 왜 책상에 엎드려있고
니네는 화장품 부시고 있냐? 그러니까
왕따 애 째려보고 지들끼리 화장실로 감
ㅋㅋㅋ 아마 또 뒷담 까러 간 거라고 생각 든다..
그 후로 그 여자애가 나한테 편지를 줬는데,
무려 10장이였음
책상에 손 넣다가 발견했는데 10장 빼곡한 글씨..
뭐야 하고 읽기 시작하는데
초등학생 때 내가 도와줬던 얘기와
중학교 때 이야기
그리고 내가 생각도 못한 그런 이야기들이 빼곡히 써져있었음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나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뭐 이런식
읽자마자 와 진짜 자존감 낮구나 생각하고
편지 고맙다고 말해줌
그리고 아무 일 없이 1년이 지났는데
중3때 쯤인가
왕따 여자애가 내 뒤에 계속 붙어다니기 시작함
진짜 강아지 마냥 졸졸 따라다님
왜 따라오냐고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그냥 계속 따라다님
점심 먹으러 갈 때도 늘 따라왔음
친구들은 쟤 뭐냐면서 나를 놀리고 그랬음
한번은 자꾸 따라오길래 똑바로 쳐다보면서
왜 자꾸 따라오냐고 물어봄
그랬더니 그 여자애가 부끄러워하면서
너무 좋아서.. 이럼
그 말 듣고 진짜 오글거리고 너무 좀 그랬는데
걔가 안경을 써서 그렇지 그렇게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음
보통 애들 같으면 설레하고 그럴 텐데
그 당시엔 남들 시선 중요해 하던 멍청한 나는
왕따랑 사귀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지만 그때는 그랬음
그래도 난 미안하다며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정중히 거절함
그때부터 졸졸 따라다니는 건 사라졌고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하기 시작했음
잘됐네 하고 나도 공부하면서 학교생활 함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됐고
내가 남고로 가면서 걔랑은 완전히 떨어짐
그 이후로 잊고 지내다가도 정말 가끔 그 얼굴이 생각나서
아 그때 그냥 사귈걸 그랬나
지금도 왕따 당하려나 이런 생각이 가끔 들었음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난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가
21살 때 페북에서 누군가에게 메세지가 왔음
프로필 들어가서 보니까 어떤 여자애였는데
진짜 미치도록 예쁜 거임
스팸인 줄 알았는데 메세지 내용 보니까
“너 oo이지? 나 oo이야 알지?
나 기억나? 까먹었으면 어떡하지 ㅠㅠ”
이런 내용이었음
그걸보고 걔의 모든게 생각남
사진들 보고 엄청나게 예뻐져서 깜짝 놀랐지만
오랜만에 온 연락에 이런저런 얘기를 함
그러다가 오랜만에 보자는 오고갔고 실제로 만남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왠지 모르게 설레기도 하고 소개팅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보자마자 깜짝 놀라게 됨
카페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걔가 나중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보자마자 다 쳐다보는 것 같고
남자애들 한번씩 쳐다보는 소리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음
그래서 어 “야 여기“ 하니까
카페 사람들이 남자가 돈이 많나?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착각 알 수 없는 꿀림에 굴복하고
뭐 마실래 하고 커피를 샀음
그리곤 약간 어색하게 진짜 오랜만이네
너 예뻐졌다 라고 하면서 이야기 하는데
의외로 그 외모를 가지고
나한테 하는 말을 잘못하는 거임 수줍어하면서.
얘가 왜이러지 하면서 이야기 하다가
밥을 먹으러 카페에서 나왔음
근데 길거리를 걷는데 죄다 쳐다보는 착각도 들고..
아니 그냥 전부 내 착각일 수도 있는데
너무 예뻤음
뭔가 부담스러웠는데 밥 먹으면서 얘기하다가
어쩌다가 연락하게 됐냐고 하니까
계속 생각났다고 고등학교 때 외국으로 나가서 지내다 왔는데
오자마자 바로 연락한 거라고 함
그래서 내가 왜? 라고 하니까
아직도 좋아하니까! 라고 함
그말에 난 두근거렸고 너무 당황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함
자기한테는 니가 최고였다고
초등학교 때 도와준 것도,
중학교 때 여자애들 앞에서 얘기하던 니가 아직도 생각난다고
왕따 당하고 싶어서 그런건 아닌데
왕따 당할 때 진짜 죽고싶고 살기 싫었는데
그때마다 네가 도와줬다고
너무 무심해보였지만 그래도 나를 도와준거 자체가
나한테 희망으로 보였다고..
그래서 외국나가서 공부 열심히하고
자존감도 너무 낮아서 고치려고 했고
오만가지 일은 다 해봤다 라고 하니까
내가 뭐길래.. 이 생각 들더라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공부도 중간이고 돈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었음
잘난 것 하나 없는데 나를 보고
이렇게나 열심히 했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됐음
그러고 나서 나한테 얘가 고백했는데
솔직히 나는 용기가 안 났음
이 친구는 그렇게 노력해서 스펙 좋고 얼굴 예쁘고 다 갖췄는데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사귀다보면 걔가 추억속의 나를 상상하다가
지금 나를 보면 실망하게 만들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웠음
차라리 이렇게 그냥 희망으로 남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해본다고 말했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얼굴만 보고 사귄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몇 번 더 만나게 됐는데
이 친구 날 좋아하는 게 엄청나게 느껴짐
그리고 주위에 만나는 남자도 없고 (다 칼같이 짤라버림)
그렇게 만나다가 나랑 봉사활동 가자길래
봉사 좋지 하면서 따라나서서 갔는데
비행청소년 아이들 약간 보호소 같은 곳이었는데
그 아이들한테 해주는 모습 보고 걔한테 빠지게 됨
한 아이를 만나서 이야기 해주는데
자기가 겪은 일들을 다 나열하면서 얘기함
그걸 듣는 아이는 처음에 시덥지 않게 듣다가
점점 빠져드는게 눈에 보였음
하여튼 그렇게 봉사하고 나오는데
자기는 이런 일 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날 바로 사귀자고 고백했음
기승전 커플이라 미안하다
성격 안 맞을 때 많이 싸우기도 하는데
그래도 잘 만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