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 좋은 사람이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 병원에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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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이 생활을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돼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실내 자전거를 구입하여 시도 때도 없이 타기 시작했다.

산악자전거 선수가 된 듯한 기분에 취해 무자비하게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를 타면 엉덩이와 돈군영 사이의 한 부분이 짜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돈군영 근처를 살살 만져보았다.

나의 은밀한 그곳에는 자그마한 종기가 생겨 있었다.

내버려 두면 낫겠지 싶어서 무시하고 실내 자전거를 계속 탔다.

그러나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 덩을 싸고 비데의 물줄기를 맞는 순간에도 쓰라리기 시작했다.

그때 진작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어리석은 난 약 2주 동안 후시딘이나 처바르고 있었다.

그렇게 2주를 버텼다.

「찌릿」

어느 날, 개운하게 씻고 푹신한 침대에 앉았을 때 짜릿한 느낌이 엉덩이를 타고 두뇌까지 흘러 들어왔다.

그때라도 병원에 갔어야 했지만, 어리석은 난 남들 앞에서 엉덩이를 깔 수 없다는 이유로 통풍이나 잘 하자며 드라이기로 돈군영을 살살 말렸다.

난 뽀송한 돈군영 근처에서 아우성치는 녀석의 비명을 듣지 못 하고 잠에 빠져 들었다.

아침이 되었다. 

모닝 응가를 싸기 위해 변기에 앉아 빤쓰를 내렸는데, 빤쓰에는 거무죽죽한 피가 묻어 있었다.

「그날」은 아니었다. 난 그날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생리대를 장전하고 다니는 철저한 인간이었다.

순간, 벌어진 돈군영 사이를 누가 포크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돈군영 근처를 살살 만져본 결과 종기에서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난 좃됐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남들 앞에서 엉덩이를 깔 자신이 없어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인 채 출근하였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돈군영은 비명을 질렀으나 난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짜릿함이 강렬해져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심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보니 밴드는 피고름으로 너덜너덜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음날 병원을 찾아갔다.

노출을 싫어하여 한 여름에도 긴팔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나에게는 꽤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났는데 피가 흘러요···.”

우리 조부모님뻘의 의사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내게 바지와 빤쓰를 벗고 엎드려 누워보라고 하셨다.

하반신이 전라가 된 채로 누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녀석은 생각보다 더 은밀한 부위에 있었기 때문에 일자로 누운 자세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셨는지 내게 엉덩이를 조금만 들어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30도 각도로 올렸으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는 선생님으로 인하여 내 엉덩이는 곧 하늘을 뚫고 승천할 기세로 솟아 있었다.

난 천장을 향해 엉덩이를 존나게 높이 올린 채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왜 병원을 이제 왔냐고 하셨다.

나는 차마 “님 앞에서 엉덩이를 까기는 싫었어요.”라는 말은 하지 못 하고, 바빠서 오지 못하였다고 둘러대며 여유로운 척 웃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돈군영을 살살 소독하시는 순간 엄청난 짜릿함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때의 쓰라림이란,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대고 긁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독약에 함락당한 내 돈군영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무자비하게 내 종기를 후벼파기 시작하셨다.

난 절대 비명을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손길이 닿자마자 동물원 원숭이마냥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내 흐느낌은 크레센도마냥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건 내 영혼이 육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무마취로 생살을 찢어서 못질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뿌리가 아닌 내 영혼을 뽑아내려고 하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상처가 깊다며 5분 가까이 종기를 짜낸 결과 드디어 뿌리를 뽑을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마무리로 거즈를 붙여주셨고, 나는 조심스럽게 바지를 올렸다.

상처를 후빈 직후여서 그런지 어제보다 걷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당신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꽃무늬 빤쓰를 올리며 어기적어기적 카운터로 향하는 성인 여성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여성은 아마 나일 것이다.

일주일 뒤 다시 방문하라는 말과 함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카운터에 계신 선생님께서는 일주일 뒤 지옥으로 다시 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다.

“엉덩이 통풍 잘 해주시고요.”

“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고 뒤를 돌았을 때, 대기실에 7명의 사람들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알아차렸을 것이다···.

내 엉덩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저 사람 엉덩이를 호되게 당했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자지러질 뻔했다.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로 쐐기를 박은 선생님으로 인해 K.O.를 당해버렸다.

그리고 난 지금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가정통신문을 가져오지 못해 복도에서 손을 들고 서있을 때도 이렇게 오래 서있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앞에서 내 돈군영을 노출하였다는 수치심과 고통으로 인하여 오랜만에 얻은 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뷰티방에서 집중앰플 핫딜이 떴을 때도 (바이럴 아님) 흐린 눈으로 넘기고, 그저 ‘치질 방석’을 검색해 볼 뿐이었다.

오늘 난 븉방가 약 1.7의 집중앰플을 놓쳤고, 다만 곪아터진 돈군영을 얻었다.

지난 인생을 후회한다.

이따위 종기는 별 거 아니라며 연고를 바르던 날들을.

종기가 무자비하게 후벼파질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평소와 같이 화려한 꽃무늬 빤쓰를 입었던 오늘을.

어떻게 실내 자전거를 타다가 그 지경이 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주작이 아니다.

단지 엉덩이에 종기가 나면 곧장 병원으로 가라는 조언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혹시 인생 최고의 고통과 수치심을 경험하고 싶은 새디스트가 있다면 종기는 2주 정도 숙성시키고 병원에 방문해라.

그리고 돈군영에 뭐 났을 때 절대로 후시딘은 바르지 마라.

돈군영이 미끌거려서 기분이 좃같다.

덬들의 엉덩이는 건강하길 바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오늘 겪은 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