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초딩 시절에는 밥먹고 해질때 까지
놀이터에서 노는게 인생의 낙이었음.
당시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놀이터가
애들이 노는거 치곤 규모가 꽤 컸었는데
모래바닥에 무슨 철근 구조물로
5층 미끄럼틀도 있었고
(실제 아파트 2층정도)
쇠사슬 그물망 걸려있고 정글짐 존나 얽혀있고
그네도 있고 구름다리도 있고
걍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음
심지어 구조물에 안전장치 하나 없어서
잘못 떨어지면 머리통 걍 부서지는 형태였다
하여튼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딩들은
학교 끝나고 매일 여기서 놀았는데
평소에 못보던 얼굴이 있으면
애들끼리 우르르 몰려가서 신원파악해서
새로 이사온 신입이면 환영해주고
다른 아파트단지에서 온 애면
바로 와사바리 털어서 모래바닥에 처박고
영역을 침범한 죄를 물었음.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여느때 처럼 점심먹고 놀이터 존나 뛰어갔는데
애들이 정자에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더라
그때 나랑 친구랑 둘다 태권도 품띠고
제일 나이 많아서 (초3)
놀이터 1짱 2짱 나눠 먹고 있었는데
애들끼리 무슨일 생기면
일단 나랑 친구가 정해주는대로 해결했던 터라
애들끼리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거임
무슨일인지 물어보니까
놀이터에 못보던 애가 있어서
신원조사를 했더니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애라고 하더라
근데 문제는 얘보고 몇학년이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는 한국에서 학교를 안다녀서
몇학년이 무슨뜻인지 모르겠다는거야
애들이 자기 또래 중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처음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회의중이었던거임
내가 그거듣고 가서 몇살이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11살인데
한국 나이로는 10살이라고 하더라
순간 움찔해서 이새끼를 형이라고 해야하는지
친구라고 해야하는지 머리로 계산하고 있다가
그러면 너는 어느나라에서 왔는데? 물어보니까
일본에서 왔다고함.
일본인을 처음봐서 오 일본인이래! 하고 놀라서
여기는 왜왔냐, 아파트 몇동사냐, 일본어 할줄 아냐
꼬치꼬치 캐물은 결과
할머니가 여기 아파트 사시는데
학교 여름방학 맞이해서 아빠랑 같이
할머니댁에서 한 달 동안 있는다고 알려줌
그때 현지인의 일본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한국어 영어 외에 다른말 쓰니까 존나 신기해서
일본에서 제일 심한 욕은 뭐야?
이런거 물어보다가
(그냥 멍청한놈, 바보같은놈이 다랬음)
얘가 착한애고 한국어도 잘해서
일단 하루 같이 놀아보기로 결정했었는데
다음날에도 얘가 놀러나오더니
닌텐도, 다마고치, 일본어로 된 유희왕카드
이런 비싼거 가져오니까 존나 신기해서
평소처럼 지옥탈출 안하고
게임 하는거 구경하면서 놀았음
그렇게 일주일정도 놀다가
당시 같이 놀이터 1짱 2짱을 하던
내 친구 승식이가
부산여행에서 돌아오고부터 문제가 터짐.
지금은 이름을 까먹었지만,
그 일본인 애랑 애들이 존나 친해져서
같이 미끄럼틀에서 고래잡이 하고 있었는데
승식이가 놀러와서 꼽사리 끼려다가
일본인을 발견거임.
못보던 애니까 얘는 누구냐고 물어보길래
일본인에서 온 앤데 11살이지만
한국 나이로는 10살이라
우리랑 동갑이야 승식아 했더니
승식이 이새끼가 누구 허락받고
외지인을 들여보내냐고 극대노를 하는거;
승식이 ㅅ발롬이 지가 여행가느라
자리에 없었으면서 화내길래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친해져보니까
얘가 닌텐도로 마리오도 시켜주고
유희왕도 잘하고 애가 진짜 착하다.
이새끼 지옥탈출 술래 존나 잘한다고
좀있다 같이 하자니까
승식이가 존나 씩씩대더니
일본은 나쁜 새끼들이야!!!! 라면서 소리를 빼액 지름
승식이가 찬물 부어서 놀던거 멈추고
정자가서 다시 회의를 열었음.
승식이 주장은 일본인은 한국을 멋대로 장악하고
전쟁일으킨 나쁜놈들이라며
우리가 과거를 잊어선 안된다면서 설파를 하는거임
처음엔 듣다가 이 친구는 착하다고,
나쁜애 아니라고 변호해줬는데
승식이 새끼가 존나 째려보더니
학교에서 일제강점기 안 배웠냐고
이새끼들이 앞잡이 행동해서
한국인들 팔아먹은 나쁜놈들이라고
선생님한테 안 배웠냐며 일장연설을 계속 하는거야
듣다보니 맞는말이기도 하고
원래는 신입 들어오면 승식이 의견도 중요하니까
그래서 어쩔거냐고 물어봤음
승식이새끼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일본인 친구한테 태권도 아냐고 물어봄
그 친구는 태권도는 들어봤는데
배운적은 없다니까
그럼 일본 태권도는 뭐냐고 물어보니
가라데라고 하더라
승식이가 그럼 너는 가라데하고
나는 태권도 할테니까 맞짱을 뜨자는거야
맞짱떠서 이기면 노는거 허락해주겠대.
재밌게 놀던 친구랑 싸우는거 아니라고
애들이 전부 승식이새끼 말렸는데
일본인 친구도 열 받았는지
승식이한테 맞짱 뜨자고 도발을 시작함
결국 일본인 친구랑 승식이랑 맞짱을 떴는데
결과는 승식이가 이겼음
미친새끼 태권도 품띠라는 새끼가
질거같으니까 머리채잡고
넘어뜨려서 손톱으로 할퀴더라
일본인 친구는 얼굴 시뻘개진채로
눈물 뚝뚝 흘리면서 일어나서 씩씩대면서
결국 화해하는 쪽으로 흘러가나 싶더니
일본인 친구가 승식이 얼굴에 모래를 뿌렸고
빡친 승식이는 지옥까지 따라갈 기세로
모래를 손에 쥐고 일본인 친구를 쫓아갔음
초딩새끼들이 다 그러하듯
애들은 순식간에 승식이 편이 되었고
모두가 그 일본인 친구를 쫓아가버림
걍 광기의 현장이었음
그 뒤로 일본인 친구는 놀이터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솔직히
방금까지 같이 고래 잡으면서 놀았는데
친구를 그렇게까지 때린다는거에 화가나서
바들바들 떨다가 애들이 승식이를 필두로
오늘은 그만 놀고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자며 마트로 떠나서
혼자 놀이터에 남았음..
그 일본인 친구와 놀던 장소에
한두방울 흘려진 핏방울을 보고
ㅅ발 못된 새끼들.. 친구를 왜 괴롭혀..
하면서 부르르 떨다가 집으로 돌아갔음
그리고 그날 싸움 안한게 걸려서
나도 무리에서 도태되고
놀이터 출입 금지당했음..
그러고 몇년 지나서 초6 여름방학에
집가다 엘레베이터에서 우연히 그친구를 다시 봤는데
반가워서 안녕? 인사하니 존나 무섭게 째려보더라..
무섭지만 아파트 같은동 살아서 마주칠때마다
그땐 미안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하면서 연신 사과하니까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같이 게임하자고
집에 초대해줘서 집을 가게 됐음
이새끼 집에 들어가면
뭔가 나한테 복수할까봐 무서웠는데
4층만 뛰어 올라가면 우리집이니까
그때 도망가자는 생각에 놀러갔음
잔뜩 쫄았는데 알고보니 그집 할머니가
학교 갈때마다 마주쳐서 인사드리던 할머니셔서
아는 얼굴 보니 뭔가 안심이 돼서
내어주시는 과자랑 음료수 먹으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걸 처음으로 하면서 놀았음
플스하고 닌텐도 하고
일본에서 찍은 사진 보고 놀다보니
저녁먹을 시간돼서
할머니께서 저녁 같이먹고 가자고 하시길래
친구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게 처음이라
어리둥절해서 집에서 허락받을게요
인터폰으로 집에 전화해서
친구집에서 저녁 먹 고가는걸 허락받음
그렇게 그친구 아버지 오시고 같이 밥먹었는데
일본식 밥상인지 된장국 맛도 특이하고
(미소된장국) 밥그릇이나 젓가락도 특이하고
밥그릇 들고 먹는것도 신기하고
특이한 식사여서 아직도 기억남
밥 다먹고 친구랑 걔네 아버지랑
일본어로 뭐라뭐라 이야기 하더니
무슨 얘긴진 모르겠지만
나를 손가락질 하길래 바짝 쫄아있었더니
걔네 아버지 오셔서 예전에 우리 아들 괴롭힌 애니?
왜 괴롭혔니, 왜 사과를 하지 않았니
이것저것 말하는데
존나 무서워서 식은땀 흘리면서
저는 괴롭히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말렸지만
애들이 제 말을 안듣고 때리기 시작해서..
저도 그 이후로 왕따 됐어여..
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니까
아저씨가 그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쫓아가서 혼내주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말리셔서 참았다.
다시는 괴롭히지 말아라.
누군가를 상처주는건 잘못된 행위라면서 훈계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바들바들 떨고 있었음
가기전에 그 친구에게 또 사과했는데
일본에서는 사과할때
도게자를 해야한다면서 시범을 보여주는거임
그래서 도게자 따라하며
예전에 괴롭힌거 미안해! 애들 대신 내가 사과할게!
진실한 사과를 박았음,
중딩때 이사하면서 그 이후로
그친구를 다신 보진 못했는데
가끔 예전에 살던 아파트단지 지나치면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