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을 다녀온 남자

이년전 이야기다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 받고

이미 다른 장기까지 암세포가 퍼져있는 상황이라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그런 아버지를 창피하게 생각했던 때가 많았다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의 신세를 못마땅이 여겨서

어린 나까지 버리고 다른 남자랑 재혼하셨다

그래서 엄마 사진은 있는데

엄마랑 대화를 해본 기억은 전혀 없다

어릴땐 막연하게

엄마를 그리워했던 적이 수없이도 많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 코가 석자라

엄마 보고싶다는 생각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릴때부터 나에게 아버지는

덩치도 매우 크고 키도 컸었는데

위암 판정을 받고 난 뒤부터는

아버지가 한없이 작아져만 갔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나에게

그냥 지갑 같은 존재였다

정서적 교감보단 돈 필요할때 달라고 하면

군말없이 주는 아버지였기에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뒤로 머리가 커지고

아버지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내 용돈은 내가 알바해서 벌어다 썼다

그렇게 지내던 중

아버지가 위암판정을 받으신거다

진짜 뜸근없이 찾아왔다 이게.

처음엔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슬픔보단 당혹스러운게 컸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아버지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그런 나를 아버지도 이해하시는지

갑자기 여행이나 가자고 하시더라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아버지랑 여행을 간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랑 나는 제주도로 갔다

아버지는 비행기를 처음 타보신다고 했다

비행기가 이륙할때 아버지는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찬 표정이었는데

그런 표정을 처음봐서

진작에 비행기 태워드릴걸 후회가 미친듯이 밀려왔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길따라 가다보니

노을이 지고 있고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로만 듣던 제주도를 오니까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랑 제주 앞바다에 앉아있는데

아버지가 생전 처음으로

나한테 술 한잔 하자고 하시더라

그래서 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저만 마실게요 했더니

괘안타 아들이 따라주는 술 한잔 받아보자

그 말 듣고 계속 참은 눈물이 나왔다

술도 많이 안 먹었는데

그냥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때 내게 해주신 아버지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니 왜우노?

사내자슥이

괘안타 울지마라

앞으로 독해져야 한다 그래야 된데

어렸을때부터 엄마없이 자라게 만든거

아버지가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해준거 없으가 아버지가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삐딱선 안타고 착하게 자라줘서

아버지는 니가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 아들은 앞으로도 잘 살아갈끼다.

이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버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오늘 우리 아버지 기일이다

그냥 아버지 생각이 너무나서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