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모 지잡대 4학년, 복학후
게임, 당구,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정신차리고 학점 3.0을 비롯한 기본스펙을 맞추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도서관에서 돌대가리 굴리다 밤공기 쐬러
1층 테라스에서 혼자 커피에 담배한대 빨고 있었다.
조용한 밤,
지잡답게 공부하는 학생 몇명없는 커다란 학교 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학업에 매진하는 내 모습에 왠지 모르게 도취돼서
혼자 똥폼잡고 있을때 모르는 번호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학교냐?”
“네 맞는데.. 누구시죠?”
“나다 민철이, 뭐하냐?ㅋㅋ”
“민철이?? 누구지..”
“야 나 학교 그만뒀다고 벌써 친구 이름도 잊어먹냐?ㅋㅋ”
“??”
그 당시로부터 5년전,
아직 학과가 정해지지 않은 학부 신입생시절
많은 학부학생들 안에서 신입생들끼리 친해지라고
선배들이 a,b,c,d…반으로 열댓명씩 반을 만들어 줬었는데
그때 유독 서로 친해지지 못하고 단둘이 있으면 어색했던 동기 하나가 떠올랐다.
그때 너무 낮가림이 심하고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친군데
어느 순간부터 안보였고
내가 군휴학을 할 때쯤엔 거의 동기들 사이에서 잊혀졌던 친구였는데
걔 이름이 민철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민철이~ 진짜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냐?”
“난 그냥 일하고있지ㅋㅋ 넌 뭐하고 지내냐?”
“나야 뭐 취직할라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있지ㅋ 죽겠다”
“이야~ 공부도하고 사람됐네?ㅋㅋ”
-뭔ㅋㅋ 넌 무슨일 하는데? 벌써 취직도 하고 잘나가네 부럽다 야ㅋㅋ
“난 조선소ㅋㅋ 일한지 꽤됐다. 못해먹겠다ㅋㅋ 나도 이제 그만두고 다음학기에 복학하려고ㅋㅋ”
“아 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민철이는 집안 경제 사정이 안좋아져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조선소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최근에야 집안사정이 조금 괜찮아져
다시 학교를 다니려고 마음먹었고
학교다닐때 친했던 내가 생각이나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몇년간 생각 한번 못했던 친군데
당시 날 친하게 생각했고
이렇게 먼저 전화걸어 살갑게 대하는 민철이에게 왠지 미안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어색함이 많이 사라지고
반갑게 괜히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민철이는 그동안 조선소를 다니며 있었던 이야기,
일하는 동네에서 만나 여자친구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도 요즘 사는 이야기를 하며
수십분간 즐겁게 이야기를 했었다.
“ㅋㅋㅋ공부하는데 내가 너무 시간뺐은거 아니냐?ㅋㅋ”
“괜찮다 공부도 안되는데 바람도 쐬고 좋지ㅋㅋ”
“그래?ㅋㅋ 이제 졸업반이면 나 복학하면 넌 없겠네?”
“어 아쉽네ㅋㅋ 언제 얼굴보고 술이나 한잔해야지?ㅋㅋ”
“그래 한번 봐야지 안그래도 학교 뭐 낼거도 있고 이번주에 보고 밥이나 먹을래?ㅋㅋ”
“그래 언제올래? 밥한번 먹자ㅋㅋ”
그렇게 우리는 며칠후 학교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약속 잡았고
그 며칠동안 나는 반가움 반, 아직 약간은 남은 어색함 반에 괜히 들떠 공부도 잘 안됐다.
그리고 약속 날이 됐고
점심쯤 민철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야 나 학교왔다 어디로 가면 되냐?”
-어 왔냐 도서관 1층으로와
“어 그래 기다려”
전화를 끊고 1층으로 내려가 막상 만나자니
왠지모를 어색함에 쭈뼛거리며 민철이를 기다리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도서관 1층인데 어디냐?”
“현관앞, 넌 어딘데?”
“현관앞?? 어디? 너없는데?”
“너무 오랜만이라서 못 알아보는거 아냐?ㅋㅋ”
“그런가?ㅋㅋ 여기 1층 편의점 앞이야 이쪽으로와ㅋㅋ”
“?? 편의점?? 도서관에 편의점이 있다고??”
“어 편의점 앞인데?”
“뭔소리야 도서관에 편의점이 어딨어?”
“편의점 앞 맞는데???”
“뭔소리야 너 어디 도서관 간거냐?”
“xx대 도서관 1층 편의점”
“?? xx대를 왜가 거기가 어딘데? oo대를 와야지”
“oo대? 뭔소리야 너 학교맞냐?”
“어 학교다 oo대학교 도서관”
“너 정학규 정말 맞냐?”
“정학규?”
알고보니 처음 전화할때
학교냐고 물은게 자신의 친구 정학규가 맞는지 물은거였고
난 학교로 잘못 알아쳐먹고 맞다고 했고
5년전 동기였던 그 친구가 민철이라고 오해를 해서 이렇게 꼬였던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했네요”
“아닙니다 제 발음이 안 좋아서..”
“네 죄송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고
이 이야기는 내 술자리 레파토리로 10년간 써먹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