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서 기차 출발 시간이 2시였는데
출발하기 전에 짐 정리하다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딱 30분 전에 택시를 탔음.
평소 같아도 가는데 30분이 걸리는 거린데
점심시간이라 차는 ㅈㄴ 막힐 것 같고 기차는 놓칠 것 같고
그래서 택시 타자마자 기사님한테
부산역 가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지.
‘뭐 한 25분 걸리지 않겠슴니꺼’ 하시길래
기차 출발 시간이 두신데 탈 수 있을까요??
라고 다시 여쭤보니까
‘뭐.. 가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시1발 차는 아니나 다를까 꽉 막혀가지고
이 시간에 서면 근처로는 쥐새끼 한마리 못지나간다 싶을 정도로 줄서있고
기사아저씨는 시트를 살짝 뒤로 재낀채
그저 창밖만 보시는 모습이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이고
그저 내 속은 타들어만 가고
이러면 안되는데 싶으면서도
‘아.. 이거 차가 너무 막히는데 두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라고 기사아저씨를 재촉하니까
뭐 그럼요 라고 했는지 하모요라고 했는지 암튼
두세글자로 뭐라하는데
사투리가 너무 쎄서 못알아듣겠고
진짜 답답해 죽겠는거야..
그래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기차표 환불하고
다시 끊어야겠다 싶은 생각에 핸드폰을 보려는데
그 순간에 내 눈에 스치듯 보인
기사아재의 그 핸들을 돌리는 손놀림과
귀신들린 칼치기 타이밍이
어..? 이 아저씨 느긋해 보였지만
그건 관록에서 나오는 명장의 바이브일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이 운행에 진심이다..
나는 그 진심을 느껴버려서
안되겠다 환불이고 뭐고 포기하고 아재를 믿어보자
타는곳 승강장 번호만 달달 외우면서
아재의 운행에 몰입했지.
그리고 차내에 작은 크락션 소리와
브레이크 갈리는 소리 몇번을 제외하면 침묵만이 감돌며
이 아저씨는 20분간 역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신들린 끼워넣기와 과속, 크락션으로
주변 차량 마비시키기 스킬을 선사하면서
가는데도 ㄹㅇ 간당간당 했음.
그래도 그 20분이란 시간은
이 부산의 교통은 슈마허가 와도 안된다.
이 아저씨만이 유일한 나의 구세주다.
라는 신념을 나에게 심어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고
어느새 나도 땀을 흘리며 숨죽이고
마음속 깊이 아저씨를 응원하고 있었음.
아재도 이번엔 쉽지 않다고 느끼셨는지
부산역에 다와갈수록 손과 눈이 점점 바삐 움직이시더라.
하지만 아무리 부산 교통이 갓잡은 꼼장어 마냥
어지럽기로 유명하다마는
이 아재에게 부산의 도로는 바다요
보통 사람들은 헤엄도 못치지만 그는 한마리 백상아리였음.
시계는 어느덧 1시 54분..
열차 출발시각 6분을 남기고
부산역 택시승강장이 눈앞에 보였음.
그런데 어떤 씨1발 까만색 쏘나타가
등짝에 도로주행 종이를 붙이고 줫같이 끼어드는거
순간 아저씨 이마의 핏대가 약동하면서
지난 20분간의 정적을 깨고
‘에헤이 씨팔 머고 진짜~’
하며 재수 옴붙었다는 듯 핸들을 좌우로 털어대며
정체불명의 쏘나타를 제끼자마자
이걸로 손님을 그냥 보내면 부산 정이 섭섭하제 라는듯
갑자기 웬 아지매가 머리에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도로 한가운데에 떡 나타났음
아지매를 보기 무섭게 아재는 창문을 딱 3센치만 내리더니
‘야이 씨1발 여편네야 안 비키나 미친년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스파르탄 병사들의
함성소리를 연상케하는 괴성을 지르며
크락션을 배구선수 공치듯 파다다닥 때려대니까
어느새 시야는 밝아지고
나는 기차시간 1분을 남기고 가까스레 탈 수 있었음.
아저씨는 내가 황급히 짐을 챙겨 내리려는 동안
다시 인자한 얼굴로 내게 결제한 카드를 건네주면서
‘기차 탈 수 있겠네예’
라고 나지막히 말했던 그의 모습을 난 잊을 수 없음..
100% 과장 없는 실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