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옛날에 동네 문방구 가면
오락기 몇대씩 놓여있던거 기억남?
지금 초딩들은 뭐 폰이나 컴퓨터로 게임하지만
그땐 아무것도 없던 코찔찔이들 시절이라
게임하고 싶으면
문방구 가는 방법 말곤 없었음ㅇㅇ
그러던 어느날 우리 동네 문방구에서
인파 20명이 몰리게 되는 일이 일어남.
초딩 시절에 주머니에 동전이 좀 생겼다 싶으면
킹오파 같은거에 들러붙는 애들도 있었고
메탈슬러그에 들러붙는 애들도 있고
그런데 사실 그런 게임들은
엔딩까지 보는 애들이 꽤 자주 있단 말임.
엔딩까지 가는게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거든.
근데 딱 하나
난이도가 ㅈㄴ 빡셌던 게임이 있었는데
‘던전앤드래곤’이라는 게임이었음.
이 던전앤드래곤 엔딩을 본 애들이
아예 없었을 정도ㅇㅇ
실제로 중학생 형들도 자주 들르는 문방구였어서
형들이 이 게임을 하는걸
뒤에서 구경하곤 했는데
다들 어느 시점에서 게임 오버가 나고
아쉽게 끄게 되더라고
기억에 남는 그날 나는
동전으로 스노우 브라더스 하다가
한 3스테이지 쯤에 게임 오버가 뜨고,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런데 던전앤드래곤 오락기 앞에
중학생 형 2명이 딱 서더니
각자 2천원씩을 문방구에서
100원 동전으로 전부 바꿔서 나옴 ㄷㄷ
2004년 당시에 2천원이면
학생들 기준으론 진짜 거금이었음
과자 4봉지로 과자파티 삽가능
아이스크림 4개로 배아플 때까지
아이스크림 쳐먹기 삽가능했음.
그런 돈을 각자 들고
게임기 앞에 동전 무더기를 쌓아놓더니
게임을 시작함
초딩들도 동전 소리에 어그로 잔뜩 끌려서
하나 둘씩 게임기 뒤쪽에 다들 서서
조용히 구경을 시작함.
그렇게 점점 우리가 알던
보스들을 하나 둘 깨버리기 시작하니까
뒤에서 서서히 환호성이 나오기 시작함.
특히 2스테이지.
초딩들의 돈을 ㅈㄴ 빨아먹거나
포기하게 만들었던 보스인
다크워리어 라는 보스가 있었는데
이놈을 두 형들이 300원씩 쓰면서
간신히 잡아내는 순간
진심으로 문방구 앞에서 다들 환호성을 지르더라
“와 잡았다!!! 멋지다!!! 짱!!!!” 이러면서.
그렇게 다음 루트로 진행하면서
하피, 텔아린 보스를 잡아내고
불의 검을 먹어야 한다면서 비홀더?
그 눈알 잔뜩 달린 애를 잡으러 가는데
초딩들은 대부분 다크워리어에서 컷 당하거나
좀 잘한다 싶은 애들도 텔아린에서 컷 당하기에
다들 아무도 본적 없는 전설의 보스였음.
이게 바로 비홀더.
생긴것 때문에 초딩들이
‘우와 저게 뭐야 못생겼어..’ ‘징그러..’
하면서 코멘트 존나 섞었었음 ㅋㅋㅋㅋㅋ
역시 여기서부턴 그 형들도 상당히 고생했는지,
여러대 맞거나 죽기 직전까지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럴 때마다 뒤에서 구경하던 나랑 초딩들은
‘힘내!!!’ 하면서
ㄹㅇ 문방구 앞이 시끄러울 정도로 응원하기 시작함.
결국 격파후에 계속 진행하다가,
전설의 검이라는걸 두 형들이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단계가 옴.
인파는 한참 몰려들어서 거의 20명쯤 된듯 했고,
옆에서 나이 좀 있는 고딩처럼 보이는 형이 오더니
‘전설의 검 먹으려면 체력 계속 빠진다.
버튼 졸라 눌러야 먹을랑 말랑임.’
‘저거 진짜 전설의 검임.’ 하면서
장기 두는 할아버지 마냥 훈수를 두기 시작.
초딩들은 “야..전설의 검이래..” 하면서 술렁거리고
중학생 두 형들은 고민하더니 결국 먹는걸 선택함.
그런데 검을 들자마자 체력이 쭉쭉 까이더니
‘끄아아!’ 하면서 캐릭터가 죽음.
연타로 계속 풀려고 하는데도 안되고
전설의 검 하나 때문에 300원이 날라간거임.
다들 전설의 검 저주가 풀리기만을 바라면서
‘화이팅!!!’ 이러고 있었고
결국 저주를 풀어내버리고 맘.
다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찍었을 때보다 더 크게 환호한듯 ㅋㅋㅋㅋㅋㅋ
문구점 아저씨가 나와서 무슨일이야? 하고
같이 관전하고 있을 정도ㅇㅇ
진짜 전설의 검을 먹고 쭉쭉 게임이 진행되었고
결국 말로만 듣던 최종보스까지 왔음.
최종 보스. 씬.
붉은 색 드래곤이 최종보스였던거임.
초딩들은 게임 방해될까봐 다들 말 없이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구경하고
늘어난 관중 중에서는 고딩들도 좀 있었음.
문방구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다들 이것저것 사먹으면서 구경하기 시작.
문방구 아저씨가 그때 ㅈㄴ 흐뭇하게 있으셨는데
아마 매출 잘 나오셔서 그러신듯ㅇㅇ
그런데 최종보스까지 도달한 사람이
지금까지 한명도 없었던 모양인지,
고딩 형들도 더이상 훈수를 못두기 시작.
플레이 하던 두 중학생 형들도
처음 본 보스였는지,
패턴을 몰라서 상당히 해맴
얘는 특이하게 체력이 ‘?????’로 표기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냥 체력이 졸라 많아서 안보이는 거였고,
두 사람이 무한 동전러쉬 갈기면서 진행한 결과
체력이 이제 딱 2줄 남게 됨.
그런데 침묵속에 게임에 집중하던 형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말을 꺼냄..
‘아.. 용돈 다 썼다..’
결국 마지막 2줄에서 두명 전부 죽고
“to be continue?” 나오면서
10초 카운트를 시작함.
구경하던 사람들도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여기까진가.. 하던 때에
고딩 형이 문방구 안으로 가더니
100원 짜리 10개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나옴ㅋㅋ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니들 이거 꼭 깨!!!!!”
다들 환호하고
두 중학생 형들은 그대로 1초 남기고 컨티뉴.
최종보스를 클리어 해냄.
초딩들은 다들 신나서 환호하고,
두 중학생 형들은 진짜로 울면서 좋아하고
고딩들은 와.. 하면서 놀라기 바쁘고..
그야말로 장관이었음.
토요일 4교시 이후에 보기 시작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까 5시가 넘어가고 있더라.
다들 한참이 지나도 열기가 안 식어서 좋아하고,
진짜로 서로 안아주면서 기뻐하고.
마지막에 클리어 이름으로 GOD, ZZZ 박으면서
그 엄청났던 사건은 막을 내림
나중에 문방구 아저씨가
사진기 들고 나오셔서 그 두 형 기념 사진 찍고
게임기 위에다가 붙여두셨음
“첫 클리어 한 사람들” 이렇게ㅇㅇ
이후에 그 문방구는 입소문이 타서
애들이 끊임없이 켠왕을 도전하러 오는
성지 비슷한 곳이 됨.
그 당시엔 오락기 하나 가지고도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재밌게 살았는지 모르겠음.
추억 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