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하고 있던 여자가 독서실을 그만뒀는데 중요한건 ‘번호’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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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난 신림동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1월의 어느날

정확히는 12일이었다.

내가 다니던 독서실에서는 먼저 다니던 지인의 소개로

신규등록을 할 경우 양 쪽 모두에게 할인을 해주었다.

그 날 내가 다니던 독서실에 새로 등록하려던 그녀는

‘저 사람’과 지인할인을 받겠다며,

마침 카운터 옆을 지나던 내 쪽을 가리켰다.

당돌하다면 당돌한 행동이지만 난 그러시라고 했다.

잠시 당황하던 독서실 사장은

커피 한잔 사면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공부하는 처지였던 나는

사실 늘 땅만 보고 다녔다.

그 날도 땅만 보면서 하염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선 것이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다 봤다.

깨끗한 단화에 하얗고 가는 발목,

검은 슬랙스. 어제의 그 사람이었다.

“제가 커피 한 잔 살게요! 나중에 다시 마주치면 사러 가요.”

하마터면 괜찮다며 거절할 뻔 했다.

낯가림이 심한 탓이다.

그러나 이를 억누르고 그러자고 대답했다.

그 독서실은 정해진 쉬는시간이 있어

이때에만 외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우연히 같은 층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름도 번호도 몰랐기 때문에

다시 마주치기는 쉽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한두 번 본 사람을 실루엣과 눈매만으로

구별하는 것도 어렵다. (마스크를 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시 그녀와 커피를 사러 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받아들기 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서로 무슨 시험을 준비하고 본가는 어디고 등등.

회사생활을 몇 년 하다가 그만두고

전문직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또 알고보니

그녀의 남동생과 내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었다.

회사생활을 삼 년 했다면

나보다는 나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물여섯의 휴학생이었으니까.

4년제를 나와서 회사생활을 하고

또 몇 년 공부를 했다면

나보다 나이가 적어도 두세 살은 많을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물어도 나이를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 것을 보니

서른일 수도 있겠다,

왠지 서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몇 마디라도 나눈 시간은 무척 즐거웠다.

이때까지도 만날 때마다

계속 아는 척을 해야 하는지 내심 고민했다.

커피도 한잔 샀고,

갚을 것 다 갚았으니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주칠 때마다 그녀가 살갑게 인사해 주는 통에

나도 그냥 반갑게 인사했다.

사실 나는 크게 쭈뼛거리거나 재미없는 성격은 아니지만

단지 낯을 많이 가린다.

남녀 가리지 않고 처음 친해지기가 어려운 편인데,

그녀가 먼저 다가와 준 덕에

처음의 어색함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번은 마실거리를 사러 다니며

서로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녀와 처음 점심을 먹은 것은 2월의 어느 일요일이다.

식도염에 걸려 복도에서 쿨럭거리며

약을 삼키고 있던 내게 그녀가 다가온 것이다.

걱정어린 눈으로 따뜻한 것을 먹어야 한다면서

저와 점심을 먹자고 했다.

다들 기침에 예민하던 시기,

1차시험을 몇 주 앞두고 몸이 좋지 않아 고생중이던 내겐

이 작은 걱정도 크게 감동적이었다.

그 눈빛, 평소답지 않은 빠른 말로

무언가 서두르는 데가 있었던 그 태도를 아직 기억한다.

그때 내가 본 게 맞다면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며,

심지어는 거절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에 놀라는 한편

그녀가 보여주는 관심에 짜릿해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떨고 말았다.

“..알겠어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의도와는 다른

이 멋대가리없는 대답으로,

우리는 처음 밖에서 식사하게 됐다.

다음날 갈비탕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나도 특이한 데가 있었던 것 같다.

앉자마자 대뜸 군대 어디 나왔냐고 물었던 것하며,

시험을 시작한 계기나

소소한 가족 얘기들이 모두 특이했다.

그날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을 때는 차갑고 섬세한 인상이었는데,

마스크 속 숨겨진 입매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가지런한 이가 드러나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이 때쯤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가끔 마주칠 때면 독서실 주변을 함께 걷기도 하고

서로의 1차시험이 끝날 때마다,

나중에는 주말에 내킬 때면 저녁도 먹었다.

번호를 물어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

집에 휴대폰을 두고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모월 모일 몇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이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반 세기 전 남녀가 약속을 정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녀가 내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해 주는 것이 좋았다.

가령 음악을 고르는 나의 취향과 좋아하는 음료..

그리고 지나가는 그녀의 말들을 기억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회사의 오렌지 주스가 맛있는지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그녀는 때로 내 팔을 잡고 웃거나

장난스레 내 팔뚝이며 어깨를 치곤 했다.

그래서 틈틈이 운동도 열심히 했다.

아무리 고시생이라지만

너무 후줄근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옷도 신발도 많이 샀다.

파마도 하고 난생처음 비비크림도 발라 보았다.

물론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녀도 나름대로 어려운 시험들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1차시험을 나란히 통과했다.

그녀가 나를 어린 동생으로만 보지 않도록,

별볼일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세 달이 지나고 네 달이 지나면서

우린 점점 더 친해졌다.

밤늦게 걸으며 시덥잖은 소리를 할 때도 있었지만

때로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과거나 미래를 넘나들었다.

그런 걸 보면 대화도 꽤 잘 통했던 듯싶다.

난 궁금한 게 많았고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았다.

6월이 되자 그녀는 조금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학교라는 소속이 있는 나와 달리

실패하면 자신은 돌아갈 곳이 없다며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그녀가 자신의 나이를 말해준 것이 이때쯤이었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그 나이의 사람들은 보다

진지한 만남을 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나야 일이년의 방황이 허용되는 나이지만

그녀에겐 아닐 것이다.

내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내 시험은 두 달정도,

그녀의 시험은 세 달 정도 남은 때였다.

그래서 그냥 묵묵히 그녀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었다.

그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내 시험이 끝나고 그녀의 시험도 끝나면

이 지긋지긋한 신림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근사한 약속을 하자, 그런 데서 멋지게..

그게 내 생각이었다.

며칠간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불안과 초조로 시작된 슬럼프가 오래 갔던 걸까?

그러다 한 손에 암기장을 들고,

점심때 밥을 먹으러 나서는 계단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대뜸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어디로 가냐는 나의 물음에는

당분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대답은 평소답지 않게 추상적이고 모호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 힘든 것은

더 묻지 않는다는 게 내 방식이었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아쉽다고 했더니,

영혼 없는 말을 한다며 그녀가 막 웃었다.

나도 그냥 따라 웃었지만

마스크 속 얼굴은 사실 공허했다.

문앞까지 몇 걸음 걸으며 그녀가 나를 응원해 주었다.

나는 계획적이고 성실한 사람이니

잘 할 수 있을거라는 그저 그런 틀에 박힌..

나도 좋은 일, 기쁜 일만 있길 바란다고 말해 주었다.

그때까지 나와 나란히 걷던 그녀는

거기서 그 말을 듣자 마자 멈춰섰다.

그리고는 내게 손인사를 건넸다.

나도 멍하니 그냥 손을 펴들었다.

늘 그랬듯 돌아서는 그녀의 작별조차 간결하고 우아했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먼저 돌아섬으로써 어색한 침묵을 끝냈다.

잠시 뒤 나도 돌아섰다.

햇볕에 미간이 한없이 구겨져 움츠러들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설마 이게 진짜 마지막인가?

영영 못 보는 것일까?

같은 동네에 살면 주말에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그녀의 ‘마지막’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더이상 친구로도 지내지 않을 만큼

나와의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인지,

나는 그저 몇 번 만나 밥먹고

커피한잔 한 지인일 뿐인 것인지.

혹은 나를 피하고자 떠나는 것인지.

피하고 싶을만큼 부담스럽게 무얼 하지도 않았는데

하는 생각들이 짧은 시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편으로는 밥 먹고 돌아오면

한 번 정도 짐을 치우는 그녀를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번호도 물어보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얘기해줘야지 생각했다.

순대국은 잘 넘겨지질 않았다.

무엇엔가 쫓기는 느낌이 들어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애먼 뚝배기를 휘적거리다 서둘러 돌아왔다.

그런데.. 자리가 벌써 완전히 비어 있었다.

하필 매번 눈에 띄게도 열람실 문 바로 옆에 있던,

항상 정갈했던 그 자리의 하얀 책상은

텅 빈 채 조명 아래

어떠한 오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며칠 뒤 나도 자리를 정리했다.

그녀와의 기억 가득한 그 독서실을

더이상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저 그녀와 걸었던 골목을 계속 걸어다녔다.

모퉁이를 돌면 다시 그녀를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는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가득했다.

모든 대화 모든 표정이 생생했다.

그제야 내가 그녀를 많이 좋아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나를 무엇으로 생각했을지.

그저 친구든 지인이든

내가 없는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을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다시 만나거나 소식을 전할 필요도 없는

가벼운 관계로 여겨진 것 같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언제고 번호를 물었어야 했는지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걸었다.

혹여 마주칠까 하여 걸으면서도

정작 그녀가 나올만한

학원 근처나 집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막상 마주치면 어색하게 우연인 척 해야 할 터다.

뭐라고 할 말도 없었다.

이렇게 스토커가 되고 마는 것인가 하여

쓴웃음이 났다.

그저 그녀와 다녔던 장소들이나

그녀가 맛있다고 했던 밥집들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키도 크고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사람인데도

결코 다시는 마주칠 수 없었다.

꼬박 열흘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게 보냈다.

그 사이 시험은 점점 다가왔다.

중요한 시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낸 것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취방을 정리해서 본가로 들어왔다.

2차시험장으로 가는 길은 외로웠다.

그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서로의 1차시험에 앞서

그녀와 주고받았던 간식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5일간 진행된 시험의 마지막 날,

내 손으로부터 답안지를 빼앗는

장엄한 벨을 듣자 마자 가방을 쌌다.

이상하리만치 단호한 발걸음으로 고사장을 걸어 나오며

나는 그만둘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이젠 끝났구나.

더이상 이 짓거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구나.

과연 시험 첫 해와 두번째 해의 성적은

썩 괜찮았지만 마지막 해에는 오히려 떨어졌다.

살면서 이정도 후회 하나 품지 않은 사내가 어디 있으랴.

시간을 돌려 모든 것을 바꿔놓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때 그녀가 사 주겠다던 민트초코를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자정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그녀와

야식을 시켜 먹었더라면.

연거푸 아메리카노를 마셔서 손이 떨린다며

보여주는 그녀의 손을 잡았더라면.

좋아하는 여자 있냐는 그녀의 말에

부끄러워하며 말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를 둘러싼 그 모든 상황들은

다시한 번 나를 망설이게끔 할 것이다.

결국 이게 나의 태도고 앞으로도 수정하지 못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입술을 앙다물고 크게 앞으로

발을 내딛어야 했던 모든 순간,

나는 항상 망설였다.

대신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성숙되기를,

그래서 제 발로 모든 조건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렸다.

한동안은 종종 신림동에 갔다.

시험을 접고 복학을 하고도

그녀와 가곤 했던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대인가 하고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멀리서는 그 사람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면 늘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신림동을 찾는 나의 발길은

점차 뜸해졌다가, 아예 멈춰섰다.

이제 그 동네는 달라졌다.

너무 어색하게도, 어둡고 탁했던 거리마다

알록달록한 타일이 깔려 있고,

기억 속 그 갈비탕집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웬 맥주집이

너무도 현대적인 위용을 과시라도 하듯 우뚝이 서 있다.

이제는 일년에 한두 번 그 갈비탕 생각이 나더라도

그때 그 곳에 갈 순 없게 됐다.

시간도 꽤 지났다.

나의 모습은 달라졌고,

그녀도 또한 같다면 서로를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내가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없다.

그렇게 그녀는 간단히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때로 그녀의 기척을 느꼈다.

낙방과 짝사랑, 이 모든 무력한 실패의 파편은

여전히 내 인생에 남아 나의 생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돌아보건대

그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기억이 있다.

이를테면 식사하면서

그녀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다.

내 꿈은 뭐였을까.

분명 단지 시험에 붙는 것만은 아니었을 거다.

나로서는 짧은 인생을 반추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힙겹게나마 과거 꾸었던 몇 개의 꿈을 답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의 평은 뜻밖이었는데,

분명 ‘좋아하는 걸 꼭 찾길 바란다’고 했었다.

내가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는 터라,

그 대화는 당시로서는 꽤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이 이상한 질문과 대답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