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 굶어죽게 생겼는데 마침 산에서 ‘도깨비’ 만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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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하다못해 비라도 한껏 오면 좋으련만…”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던 청년은

투박한 손으로 흐르는 땀을 대강 훑어내며 말했다

지속된 가뭄으로 온 나라가 힘들어 하고 있지만

청년이 살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은 특히나 그 피해가 극심했다.

농작물은 다 말라 죽었고,

짐승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대로 가다간 겨울을 나기는커녕

이번 여름을 넘기기도 힘들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길고긴 산길을 넘어

아랫 마을로 내려가서

나무와 나물 따위 라도 내다 팔지 않으면 안되었다.

청년은 등에 지고있는 볼품없는 나무토막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팔아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답답함이 몰려왔다.

청년은 어두운 얼굴로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나무를 좋은 값에 팔아 안심했건만

가뭄 탓에 식료품 가격이 껑충 뛰었다.

청년이 가게 주인에게 빌다시피 하여 살 수 있었던 건

고작 곡식 한주머니였다.

이걸로 죽을 끓여도 마을 사람들이 한술씩이나 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둑해진 산길을 오르며 청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야 했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산 아래로 마을이 보일 즈음,

청년은 다리쉼을 할 생각으로 바위 위에 앉았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가벼운 등짐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청년의 깊은 한숨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산짐승인가 싶어 급히 고개를 돌린 청년의 눈에

기묘한 것이 들어왔다.

얼핏 봐서는 사람 같았지만

마치 짐승처럼 몸이 하얀 털로 덮여있었고

더러운 넝마를 옷인 듯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익살스럽게 웃고있는 표정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누.. 누구요?”

그 기묘한 모습에 청년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 요상한 짐승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 대며 대답했다.

“나? 도깨비지. 산도깨비야.”

그리곤 청년의 등짐을 슬쩍 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나 알아. 너 도움이 필요하지?

마을 사람들을 먹일 음식이 필요한 거잖아.”

청년은 도깨비라는 말보다 음식이라는 말이 더 귀에 들어왔다.

지팡이를 내리고 관심을 보이는 청년을 보며

도깨비는 과장되게 어깨를 떨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마을 사람들을 먹일 음식을 줄 수 있어.

물론 조건이 있지.”

청년은 대답 없이 가만히 도깨비를 응시 했다.

“그 조건은 뭐… 간단해.

사람이야 사람.

누구던 사람 한명을 죽여서 여기에 가져다 놔.

다음날 다시 와보면 마을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음식이 있을 거야.

이유 같은 건 묻지 말고. 그냥 여러 가지 사정이 있거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에 청년은 망설였다.

도깨비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사람을 죽인다는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청년의 망설임을 알아챈 것인지 도깨비가 입을 열었다.

“고작 한명이야, 한명.

저거 가지고는 얼마안가 마을사람들이 다 굶어 죽게 될 걸?

뭐가 더 나은 것인지는 분명하잖아?”

등짐에 매달려있는 초라한 곡물주머니를 보며 청년이 입을 열었다.

“약속은 확실 한 거겠지?”

“당연하지. 도깨비는 거짓말 안한다는 말 못들어봤어?”

청년은 등짐에 매달려있던 도끼를 꺼내어 들고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리곤 급히 마을을 향해 뛰어 갔다.

청년이 사는 마을 어귀에 거지의 움막이 하나 있었다.

어디서 온 건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신이 반쯤 나간 듯 한 그 거지는

마을 사정이 괜찮을 때만 하더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가 확실했다.

조심스레 움막 안을 들여다보니

좁은 공간에 넝마를 뒤집어쓰고 잠들어있는 거지의 모습이 보였다.

초라한 그 모습에 도끼를 든 청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작 한명이다.

쓸모없는 인간 한명만 희생하면 마을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

청년은 도끼를 높게 들어올리고

누워있는 거지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려쳤다.

“빨리도 가져왔네. 잘 생각했어.

그럼 내일 밤에 다시 이 자리로 와.

원하는건 이 바위 위에 있을거니까.”

도깨비는 거지의 시체를 보따리에 싸서 짊어지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청년은 손안에 남은 감각을 지우려는 듯

연신 손을 주물럭거리며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구입한 식료품은 사람들이

내일저녁 근처까지 가져다준다는 식으로 얼버무려야 할 것 같다.

청년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청년은 아침에 촌장이 부를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 갔던 일이 잘 되었으니 다행이구만. 당분간은 걱정 없겠지?”

“예. 촌장 아저씨. 다 잘 되었습니다.”

촌장은 50대 정도로 보이는 굳건한 인상의 비교적 젊은 사람이었다.

젊을 적엔 근처에서

제법 유명한 사냥꾼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아직은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더 강인해 보였다.

“알겠네. 너무 늦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야.

마을사람들이 굶고 있어.

자네가 책임지고 잘 운반해 오도록 하게.”

촌장은 음식이 늦게 오는것에 대해 뭐라 더 캐묻지 않았다.

내심 걱정하고 있던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해가 지기를 기다려 산으로 올라갔다.

도깨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약속장소에는 마을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만한 식료품이 놓여있었다.

청년 혼자서는 짊어지고 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식료품들.

아무래도 내려가서 몇 명 더 불러와야 할 것 같았다.

커다란 가마니를 이고 내려오는 청년에겐

더 이상 죄책감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지울 수 없는 미소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창고에 있던 풍족한 식량이 다 떨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청년은 이제 자진해서 촌장에게 찾아가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도깨비를 만났던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도깨비가 청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올 줄 알았지.

또 내 도움이 필요한거지?

조건은 지난번과 같아. 잘해보라고.”

도깨비의 확인을 받은 청년은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 마을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술주정뱅이,

노름꾼,

게으름뱅이.

사라지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사람들.

몰래 마을로 되돌아가는 청년의 눈에는 무언가 섬뜩한 귀기마저 서린 듯 보였다.

날이 갈수록 마을의 형편은 나아졌다.

한명씩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필요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청년이 마을을 떠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식량은 많아졌고

청년의 입지와 평은 좋아졌다.

처음엔 살기위해 살인을 했던 청년마저

이제는 마을 사람들의 추켜세움에 조금씩 도취되어갔다.

이제는 누가 봐도

촌장보다 청년을 더 의지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촌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슬슬 없어져야 할 사람들은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던 차에

청년의 눈에 그런 촌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

청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 마을을 일으켜 세운 자신에 비해 촌장은 한 일이 없었다.

차라리 자신이 촌장 자리를 맡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마을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은 다음 제물이 될 사람을 촌장으로 정했다.

지금 촌장이 사라진다면

마을 사람들이 다음 촌장으로 누구를 선택할지는 뻔 한 일이었다.

청년은 한손에 도끼를 들고

능숙하게 담을 넘어 촌장 집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촌장의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는 촌장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존경하고 대단해 보였던 촌장이었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일 뿐이었다.

깊은 한숨을 쉰 청년은 망설임 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준비한 보따리에 시신을 담고 피를 닦아내었다.

자주 하던 일이었기에 능숙하고 빠르게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뒤처리를 다 마치고 나가려던 청년의 눈에

방 한켠에 자리 잡은 궤짝 하나가 보였다.

혹시 무언가 숨겨놓은 돈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청년은

기대감을 가지고 궤짝을 열어보았다.

짐승의 하얀 털가죽으로 된 옷과

나무로 만들어진 가면.

그리고 여러 장의 종이뭉치들.

종이뭉치는 계약서와 영수증들인 것 같았다.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와 영수증들을 살펴보았다.

한참을 그것들을 바라보던 청년은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촌장은 마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했을 뿐.

청년은 암시장에서 사람고기가 고가로 거래된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촌장은 그걸 이용해서 사람고기를 제공하는 대신

식료품을 받기로 계약했던 것 같다.

그리곤 사람고기를 얻기 위해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도깨비 연기를 했던 것이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보따리에 쌓인 촌장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지금 가봐야 도깨비는 만날 수 없음은 분명했다.

허무함과 분노와 자책이 함께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던 청년의 눈에 궤짝 속에 들어있는 가면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있는 암시장과의 계약서.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청년은 천천히 가면을 꺼내어 얼굴에 썼다.

그리곤 계약서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촌장의 시신을 짊어 졌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리고 어차피 마을에는 도깨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만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청년이 도깨비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