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년 내내 찐따로 살다가
드디어 기다리던 졸업식날이 됐었음..
오늘 이후론 그 어디에서도
급식 취급은 받을 수 없다는 허전한 느낌을 받으며
아침 8시쯤 학교 교실로 들어감
교실 들어가니
나를 3년간 괴롭혔지만
‘학종’으로 외대 중국어 붙은 영석이가
뒷문으로 들어오는 날 보곤
힘내라는듯 어깨를 툭툭 치더니
“야 우리 보는 날 오늘이 마지막이겠네?
그동안 미안했다~”
라고 말하곤 자리로 돌아가더라
반 여기저기에선 인싸들이 졸업복 대충 걸치고
너도 나도 사진 찍기 바쁜데
나만 구석탱이에 있는 내 자리에 박혀서
페북 피드 새로고침만 계속 해보고
꾸역꾸역 카톡 하나 오지않는 폰 부여잡다보니
마침내 진짜 졸업식이 시작이 됐음
3년 내내 찐따로 살면서 잘한게 딱 하나 있다면
학교 빠진 적이 없다는 거였는데
‘개근상’을 받으며 담임한테
재수 열심히 하라는 덕담 아닌 덕담도 듣고,
각종 수상에 교장의 짧은 훈화까지
생각보다 졸업식이 금방 끝남
체감상으론 3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암튼 졸업식 끝나니까
엄마, 아빠, 동생이 꽃다발 주면서
졸업 축하한다고 머리 쓰다듬어주는데,
그런 가족들을 보고 있으니까
찐따인걸 3년을 숨기고 살았는데
졸업식날에 들키고 싶진 않아서
급식실이나 도서관에서
일진들 몰래 우정을 다지곤 했던
상훈이 비롯 3명의 친구들을 찾아나섰음..
사람은 끼리끼리 사귀는 거라고,
저만치에서 상훈이가 먼저 날 발견하더니
반갑다는듯 헐레벌떡 뛰어와서 사진 찍자고 하더라
그렇게 무사히
상훈이와 경조, 유한이랑 사진을 찍었는데
문제는..
이제 진짜 사진 찍을 사람이 없었음..
내 주변에 지나가는 애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스쳐지나가는데
그 누구도 사진 찍자고 하질 않음..
아 진짜 좃됐다 싶어서
가족들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도 우리 아들 친구들이
이게 끝인가 싶어서 당황한 눈치였음..
그동안 아들내미가 승훈이니 장혁이니
대충 이름 지어내서 만든 친구들 썰 풀던거 듣다가
막상 현실을 마주했는데
얼마나 많이 당황스러우셨겠냐
암튼 그 상태로 좃됐다 싶어서 굳어있는데
그 순간,
“야 민혁아 사진이나 하나 찍자ㅋㅋ”
하면서 3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영석이가 어깨동무를 걸어옴..
슈크림 말고 다른 빵 사왔다고
그대로 얼굴에 던져버리고,
급식 셔틀, 체육복 빌리기 셔틀,
마비킥 놀이, 기절놀이, 포켓몬 놀이라며
나를 3년 내내 못잡아 먹어서 안달났던
그 악랄하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그냥 웬 천사 한명만 남아있더라
엄마 아빠도 흐뭇한 표정으로
나랑 영석이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같이 사진 몇장 찍어주셨음..
솔직히 여기서 끝난 줄 알고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가냐면서
영석이가 갑자기 자기 친구들을 하나 둘씩 부르더니
친구들끼리 다 같이 사진 찍자고 오라고 하더라
그렇게 찍은 사진만 20장이 넘었다
다들 담배 심부름 정도는
한 번씩 갔다온 적이 있던 구면들이라,
얘네들도 나 보고는
“야 민혁아 졸업 축하한다ㅋㅋ”
라면서 사진 뿐만 아니라
축하 인사도 건네주는데
이런 축하인사는
상훈이 같은 애들한테도 못 들어본 거라
진심으로 이때부터
눈물이 한방울씩 나오기 시작하더라
뭔가 마지막이라 미안했던건지
아니면 찐따였던 나를
부모님에게는 들키게 하지 않게 해주려고 한건지..
암튼 무슨 마음이었던건진 잘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인생 최악의 날로 남을 뻔한 졸업식.
영석이가 담당 일진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 해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3년 내내 쌓였던 힘들었던 감정들은 생각도 안나고
그냥 이젠 진짜 ‘친구’만 남아있더라
이런 멋진 녀석이었단 걸 알았다면
3년동안 더욱더 충성을 맹세했을텐데..
암튼 지금 현재 진행형인 찐따들 전부
꼭 이런 책임감 있는 담당일진 만나서
나처럼 웃으며 졸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냥 날씨도 꿀꿀하고 그래서 생각나서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