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월
어느 한 여성이 자신의 원룸 집안에서 X살을 하였다.
겨울인 관계로 모두들 창문을 닫고 생활해서일까
그녀가 사망 후 부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웃 주민들은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결국 그녀는 6개월 동안 시신이 방치되었으며
다음 해 5월 미라 상태로 발견이 되었다.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가족, 친구, 지인, 이웃 주민도 아닌
바로 건물주였다.
그녀가 사망 후 시신이 방치되는 6개월동안
원룸의 월세 미납금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결국 보증금을 모두 소진한 상황까지 다다르자
건물주는 월세를 받기 위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건물주는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수십 번 연락을 해보고
문을 두들겨보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지만
그녀의 집 안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순간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 느낌이 든 건물주는
경찰관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설명한 후
현장에 출동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경찰관은 현장에 도착하였고
건물주는 경찰관의 입회하에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건물주가 발견한 것은 이미 늑골이 드러나고
살이 메말라 거죽이 붙어버린 채
바닥에 누워있는 그녀였다.
198X년에 태어난 이 여성은
어릴 때부터 불우한 시절을 보내왔다.
그녀가 아기일 때 이미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여
출가 후 인연을 끊은 상태였다.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는
어머니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은 채 방치하였다.
어머니의 무관심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일까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발육과
학습능력이 남들에 비해 떨어졌다.
이 때문에 그녀는 어릴 적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성장해 나갔다.
그녀가 철이 들 무렵 그녀는
왜 어머니가 자기한테 무관심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원치 않는 임신을 하였다.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유산시키기 위하여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뱃속의 아기가 너무 커져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후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를 유산시키기 위하여
약을 먹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결국 하는 수 없이 아기를 낳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이때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성인이 되는 해
그녀는 집에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의지할 사람 없이 세상을 혼자 살아나가야만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직을 하였지만
일처리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얼마 못가 직장을 그만두기 십상이었다.
결국 그녀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여러 회사를 이직하며 근근이 생계를 버텨나갔다.
그녀는 이런 생활이 계속되어
재정적인 문제가 지속되자
대출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당장의 급한 문제는 해결하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출금은 쌓여만 갔다.
재정적인 문제와 잦은 취업 및
이직 문제는 그녀를 점점 더 어둡게 만들었다.
게다가 우울증, 무기력감이 겹쳐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가 의지할 수 있거나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다다르자
X살을 선택하였다.
건물주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고인의 유일한 유가족인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입수하였다.
건물주는 어머니에게 연락하여
이런 사건이 발생하여 집안의 대공사를 진행할 것이니
그전에 한번 와서 딸의 유품을 챙겨가라고 말하였다.
며칠 뒤 어머니는 딸의 X살 현장에 방문하였다.
어머니를 만난 건물주는
어머니를 위하여 현관문을 열어주었고
어머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서있는 채로 몇 분 동안 방안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무런 유품도 챙기지 않은 채 빈손으로 집 밖을 나오면서
건물주에게 딱 두 마디를 하였다고 한다.
“이제 됐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사실 건물주는 어머니를 만나는 날
유품정리 및 특수청소 비용, 인테리어 비용 등
자신이 피해를 본 금액을
모두 청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를 보는 순간
보상금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그날 이후 어머니가 다시 현장에 찾아온다던가
연락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건물주는 씁쓸함을 뒤로한 채
우리에게 유품정리를 의뢰하였다.
(고인이 학생 시절 작성한 다이어리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