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악몽인데, 꿈에서 못 깨어날 뻔한 썰”
당시 다니던 학교 휴식시간이었어.
가을햇볕이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익숙한 복도를 따라서 항상 같이 다니던 여자애들이랑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고 있었지.
온통 주위가 밝고 따뜻했어.
친구들이 과제했냐 이 교수 지루하다 등등 시시껄렁한 얘기하는걸 들으면서 내가 제일 앞에서 걷고 있는데 문뜩 뒤를 돌아보니
늘 같이 다니는 무리 여자애들 말고 처음보는 여자애가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이인냥 친구들 사이에 섞여있더라고.
긴 흑발 생머리에 피부도 유난히 하얗고 속눈썹도 길고 진짜 너무 예쁜애였어.
친구들 옆에서 같이 걸으면서 애들 하는 얘기 듣고 간간히 싱긋 하고 웃는데 그 웃음이 너무 화사해서 나도 모르게 걔 외모에 빠져들었어.
넋놓고 걔를 보면서 ‘아… 진짜 예쁘다…’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걔랑 눈이 마주쳐버린거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날 보고 방긋 웃는데 같은 여자인데도 너무 예뻐서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더라.
그냥 멍하게 걔 얼굴만 봤어. 진짜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같이 너무 예뻤거든.
근데 얘가 갑자기 얼굴이 막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라.
‘어? 좀 이상ㅎ..ㅏ..’라고 느낄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살짝 미소짓고있던 입꼬리가 일그러지면서 귀까지 찢어지는거야.
그 예쁘던 얼굴이 한껏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져서
경련하듯이 바들바들 떠는데 핏발이 잔뜩 서 충혈된 눈으로 계속 내 눈을 똑바로 보고있었어.
그때부터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온 몸에 힘이 탁 하고 빠지는데 이대로 주저앉으면 걔가 나한테 곧장 달려들 것 같더라.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나랑 그 여자애 둘 밖에 안 남은 복도는 시공간이 멈춘듯했어.
아까까지만 해도 밝고 따스했던 복도였는데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자꾸만 내 몸을 찍어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고
귓가에는 내 심장소리랑 억지로 억지로 공기를 들이키는 내 숨소리밖에 안 들리더라.
도망가야겠다.
생각이 정리 된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쳤던 것 같아.
자꾸 내 몸에 엉겨붙어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를 발로 차내듯 죽기 살기로 뛰다 발이 엉켜 비틀거리는 찰나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애 A가 자판기 앞에 서있는게 보이더라고.
살았다 싶어서 걔를 목이 터져라 불렀어.
내 목소리를 들은 A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내 뒤에서 쫓아오는 여자애를 보고 얼굴이 굳더라.
그리고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나를 A가 낚아채서 그대로 미친듯이 뛰었어.
근데도 역부족인거야.
A는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언뜻 본 그 여자애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일그러뜨린 미소를 지으면서 우릴 (정확히 말하면 나를)
똑바로 보고 쫓아오고있더라고.
결국 A는 넘어지면서 나를 화장실쪽으로 밀었어.
A가 넘어지면서 나한테 “숨어!!!!”하고 소리쳤고
나는 땅에 떨어지자마자 두 팔로, 다리로 억지로 바닥을 기어서 화장실로 숨었어.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그 여자애가 닫기는 문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날 잡으려고 휘적휘적 대는데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남은 힘을 짜내서 문을 닫았던 것 같아.
쾅쾅쾅쾅쾅!!
밖에서 걔가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는데
온 몸이 떨리니까 문을 잠그기도 쉽지 않더라고.
죽을 힘을 다해 문을 막으면서 덜덜거리는 손으로 겨우 문을 잠그고 화장실 칸안에 기어들어가 숨었어.
변기 위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줄어들고 곧 조용해지더라.
근데 뭔가 이상한거야. 뒷목이 쭈뼛하고 서는 기분.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위를 봤는데.
걔가 화장실 천장 환풍구에서 머리만 내놓고 나를 보고있었어.
그때 든 생각은
‘아… 나 이제 끝났구나…’
그리고 눈을 한번 깜빡였는데 화장실 바닥에 내가 누워있고 나를 7~8명이서 둘러 싸고있었어.
내 팔, 다리는 그사람들이 붙잡고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지.
이건 꿈이다. 나 이 꿈에서 못깨면 진짜 죽는다.
나 이러다가 죽는다. 깨야된다. 꿈에서 깨야된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꿈에서 깨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여자애가 비웃듯이 말하더라.
“야, 얘 깨려고 하네. 빨리 끝내자.”
“너 꿈에서 못깨. 그냥 죽어.”
진짜 이 꿈에서 못깨면 그대로 죽을것 같아서 억지로 눈을 떴어.
방 안이 새카맣더라.
원래는 창문 밖에서 가로등불이 비치는데 그때는 방안에 한줄기 빛도 없이 캄캄했어.
근데 웃긴게.
나는 분명 꿈에서 깨서 내 방 침대야. 근데 침대랑 벽 사이에 희끗하게 공간이 하나 보이는데..
내가 잡혀있던 학교 화장실이 보이는거야.
그리고 내 귓가로 그 여자애 목소리가 들리더라.
“너 꿈에서 못깨. 헛수고 하지마. 지금 잠오지? 잠 올걸?”
분명 꿈에서 깼는데도 진짜 그 여자애 말처럼 잠이 쏟아졌어.
약에 취한듯이 자꾸만 잠은 오고 몸은 뻣뻣하게 굳어가는데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더듬거렸지.
이대로 잠들면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
휴대폰이 잡힐 듯 말 듯
자꾸 손을 벗어나는데 미치겠는거야.
잠은 계속 쏟아지는데 겨우 정신을 다잡고 손을 휘적거리다 폰을 움켜쥐고 홈버튼을 눌렀어.
시간은 5시 반.
카톡을 들어가서 아무한테나 카톡을 보내려고했어.
지금 내 상황을 알려야될 것 같아서.
우리집 와이파이 쓰거든?
근데 그때는 통화권 이탈에 데이터가 안잡혀서 카톡이 안보내지는거야.
나 이대로 죽는구나 싶어서 다시 홈화면으로 돌아와서 문자로 들어갔어.
평소 친하던 학교 선배한테 문자 보냈지.
‘선배 늦은 시간에 죄송한데 전화 좀 해주세요.’라고.
전송 실패가 떴지만 미친듯이 전송 버튼을 눌러댔어.
보내지던지 말던지 일단 보내고보자.
그게 내 마지막 발악이었던것같아.
계속 그 여자애 목소리가 들렸어.
“죽어.”
“죽어.”
“죽어.”
잠은 자꾸 쏟아지는데 나 진짜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그 순간 학교 선배한테 전화가 오더라.
전화 받자마자 안심이 되서 선배가 무슨일이냐고 묻는데도 미친듯이 덜덜 떨면서 울었어.
한참 울고나니까 나 그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려주던 선배가 괜찮냐고 무슨 일인지 말해줄수 있냐고 차분하게 물어보는데
그제서야 몸이 진정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더라.
그래서 사정을 다 얘기했어.
이런 꿈을 꿨는데 자꾸 잠은 오고 폰은 먹통이어서 무서웠다.
게다가 원래 이시간에 가로등 불빛 때문에 방이 환한데 지금은 바다속에 들어온것처럼 너무 어두워서 무섭다고.
그러니까 선배가 웃으면서 마침 작업 할게있어서 밤 새고있었는데 내 문자 보고 놀라서 전화했다고.
가위 눌린거니까 진정하고 방 불 켜보라 하는데 그때서야 좀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런거야.
그래서 아 너무 부끄럽다고 방 불 켜고 다시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어.
전화 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진정됐다고 말하면서 눈물 닦고 고개를 딱 드는 순간
시커먼 사람 형체의 무언가가 빠르게 내 방 밖으로 나갔어.
내 꿈 얘기는 이까지야.
아직도 나는 내 방 밖으로 나간 그 형태가 뭔지 모르겠어. 그냥 가위 눌렸던거라 생각하려고..
사실 그 뒤에 너무 무서워서 친구B를 집에 데려와서 같이 잤었는데 B가 내 꿈을 이어서 꿨어.
그것도 적으려니 너무 스압 될 것 같아서 이까지만 쓴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