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대학동기가 소개팅 해볼 생각 없냐 연락옴
회사 동기라는데 받아본 사진 느낌 괜찮아서 수락하고
어제 저녁에 혜화에서 만나기로함
내 회사는 디지털단지역에 있고
소개팅남은 종로였음
출퇴근 자가로 하는 나는 내 차타고 갔는데
차 댈 대가 없어서 좀 멀리 구석진 곳에 주차하고 걸어감
소개팅남 나보다 가까운데서 오면서
15분이나 늦게 온 것부터 맘에 안 들었지만
날도 덥고 퇴근시간인거 감안해서
걍 참고 밥 먹으러 감
훠궈 먹으러 가자기에
나 향 강한 음식 못 먹는다고 했더니
맛조절 가능하다고 자기 믿으라기에 감
역시 난 몇 입 못 먹고 숟가락 놓음
소개팅남 고기추가 사리추가 등등 해서
아주 싹싹 긁어먹음
식사중에 연애 몇번 해봤냐
이런 날씨에 화장 그렇게 많이 하면 안 덥냐
차종이 뭐냐 등등
별 괴상한 질문들 하길래
아 이번엔 꽝이구나 싶어서 걍 대충 네네 하고 말았음
밥 먹고 나니 계산하길래
근처 스벅에서 커피라도 사서 보내려고 들어감
난 아아
소개팅남은 무슨 이름 겁나 긴 프라푸치노 같은거 시킴
그리고 음료 나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거의 원샷함 목 마르다고
시간도 아끼고 잘 됐다 싶어서
한 5분도 안 돼서 카페 나옴
자꾸 이상한 포인트 잡아 질문하는 것도
이제 그만 듣고 싶었음
담날도 출근해야 하니
이쯤에서 헤어지자 하니까
이 소개팅남이 자기 종로까지 좀 태워다 달라함
아니 버스타면 한방인데 왜ㅡㅡ
친구 회사 인맥이니 마지막 선행이라 생각하고
그냥 알겠다 했고
같이 주차해둔 곳까지 걸어가는데
그 말많던 소개팅남이 시간이 갈수록 조용해짐
왜 그런지 궁금하지도 않았음
그냥 이상한 소리 안하니까 좋았음
차 타고 골목 빠져나오는데
주택가라 그런가 내가 주차했을 때보다
더 많은 차가 골목에 주차되어 있었음
빠져나가는데 시간 좀 걸리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 새끼가
갑자기 자기 화장실 가고 싶다는 거임
아니 주택가 한복판에 공중화장실이 어딨음
예? 하면서 봤더니
얼굴에서 땀이 막 흐름
배가 아픈 것 같았음
갑자기 나도 막 다급해져서
조금만 참으라고
바로 앞에 서울대 병원으로 가겠다고
거기 화장실 쓰라고 하면서
골목을 요리조리 빠르게 빠져나옴
그러다 드디어 차도에 닿아서
이제 유턴해서 병원 들어가면 된다 말하려는데
상상하기 싫은 소리가 들림
그리고 곧 냄새가 풍김
하..
설사를 한 것 같은데
진심 올해 들어서 최악의 순간 베스트였음
소개팅남 얼굴 진짜 터져 나갈 것 같고
난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음
어찌어찌 병원 들어가서 주차하고
소개팅남 내림
근데 물설사 였는지
조수석 시트에 잔여물이 묻음
진짜 울고 싶었음..
그리고 문제의 소개팅남
아니 이 똥쟁이 새끼가
어린이 병원 화장실에 간 뒤 잠수를 탐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을 안 받음
하 내 차 세탁비 안 주고 튄거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ㅎㅎ
원래 세탁비 받을 생각 없었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까
근데 이런식으로 잠수타는건 좀 아니지 않음?
어제 전화도 안 받는 그 새끼
30분 가까이 기다리다가
병원 안에서 또 30분 찾고
찾다가 찾다가 없어서 혹시
배아파 쓰러져 응급실 간건 아닌가 싶었지만
당연히 아니었음
차 몰고 집에 오는데
냄새 때문에 차문 다 열고 달림
에어컨을 풀로 틀어도 냄새나서 울었음
진짜 울었음 너무 짜증나고 어이가 없어서ㅋㅋ
오늘 오전 10시쯤 동기한테 연락했는데
이 년이 그 새끼 회사에 나오기는 했는데
사정 들어보니 안타깝다며
제가 찬음료를 사준게
화근이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이게 무슨 개소리임
내가 이름도 잘 모르겠는 음료를 사줬겠냐
지가 사달라 한거지ㅡㅡ
계속 말 돌리면서 연결을 안해주고
자기가 대신 사과하겠다길래
그럼 세탁비도 너가 대신 줄거냐 했더니
그걸 왜 자기가 줘야 하냐고 실랑이 벌임
ㅋㅋ 그 이후로 동기년도 연락이 안됨
이것들이 쌍으로 미친건가 해서
내일 외근 갔다가
그 새끼들 회사에 가볼 예정임
20명이 안되는 작은 회사라니
이 새끼들 찾는건 간단할 거임
본인에게 진심어린 사과만 들었어도
그냥 넘어갈 일이었는데
이런건 참을 수가 없다
이 새끼들 어떻게 조질까 말 고르다가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라 올림
후기
안암동에 외근 일정 있어서 1시쯤 나감
4시엔 끝날 것 같았던 미팅이
5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끝남
안암에서 종로까지는 원래
차로 운전해서 가면 15분도 안 걸리지만
내 차가 지금 어디있음ㅎ?..
그래서 버스타고 가니까 30분 좀 안 되게 걸림
출발할 때도 전화했지만
역시 안 받길래
도착하기 전에 소개팅남한테 문자 보냄
카톡은 차단 당한 것 같고 전화는 안 받으니
일반 문자로 보냈음
원래 인터넷에 글 썼다는 얘길 할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욕을 해주셔서
그 힘을 빌려야 겠다 싶어서 링크도 보냄
전화옴
자기 지금 회사 아니라고 못 온다함
그저께 나한테
자기 이번주는 계속 야근할 것 같아서
에프터는 다음주에 할게요 찡긋 하던 사람 어디갔음?
나중에 만나서 얼굴보고 얘기하고 싶다길래
여기 인터넷에도 당신 얼굴보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 많은 것 같다 했음
딱 30분에 지 회사에서 내려옴ㅋㅋ
이틀 전에 봤는데 얼굴이 그때보다 핼쓱했음
아마 그 뒤로도 계속 설사했었나봄
이제 속은 좀 괜찮으시냐 했는데
대답이 없음
눈을 못 마주치고 계속 시선을 피하길래
나도 굳이 눈 맞추고 얘기할 생각 없어서
내 할 말만 함
그 날 의도치 않게 그런 일이 생기고
민망하고 창피해서 나 볼 엄두가 안났을 거 안다,
그래도 최소한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가 어려웠냐,
심지어 내 동기한테 그렇게 된게
내 탓인양 얘기하는게 말이 되느냐,
솔직히 오늘 아침까지는 너무 화가 나서
심한 욕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계속 생각을 해보니
한편으로는 오죽 참담했으면 그랬을까 싶더라.
그래서 지금 더한 말은 안 할 테니
정중히 사과해달라 라고
최대한 언성 높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얘기함
내 얘기 한번도 안 끊고 조용히 듣다가
진짜 시꺼매진 얼굴로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함
그 날 자기는 30년 인생에서
진짜 최고로 죽고싶은 심정이었다고
도저히 나한테 돌아올 자신이 없었다 함
그냥 아예 그 날 자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서
연락도 뭣도 다 안 받은 거라 했음
(근데 그럼 동기한테는 왜 말을 그따구로 했냐)
그날 집에는 어떻게 간 거냐고 하니까
자기 동생이 필요한거 준비해서 픽업하러 왔다함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계속 중얼중얼 거림
따지고 싶은게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굳이 지가 잘못한거 부인하지도 않고
순순히 사과하는 태도를 보이니
더 말하고 싶은 마음이 가셨음
걍 빨리 얘기 끝내고
다신 얽히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용건을 얘기함
난 어제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 맡기러 감
기사님들이 내 차 상태 보시더니
다들 표정이 어두우셨음
실내 세차만으로는 안되고
아예 좌석 시트를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실내 세차도 두 번 정도 해야
정상적인 멘탈로 타고다닐 수 있을 거라고 하셔서
그냥 해야 한다는대로 다 했음
그날 밤 창문 다 열어놓고
조수석 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못한채
울면서 집에 갔던 거 생각하면
3번이든 4번이든 해야지 어쩌겠음
그랬더니 견적이 75만원이 나옴
그거 주셔야 할 것 같다하니까
소개팅남 얼굴빛이 급격히 안 좋아짐
무슨 세차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냐고ㅋㅋㅋ
세차가 비싼게 아니라
좌석 시트를 통째로 가는게 비싼 거라고
그 날 당신 밑에 방석이 있어서
의자 안쪽까지 스미지 않았기에
그나마 시트만 가는거라고 하니까
갑자기 피식 웃더니
그럼 방석이 없었으면 의자를 통째로 갈았을 거냐함
ㅇㅇ 그랬겠죠
세상 미안하단 표정으로 있다가
돈 얘기 나오니까 태도가 변하는 걸 보고
그나마 남아있던 측은함이 싹 가심ㅋㅋ
고소할 거라는 말 장난 아니었다 하니
이 새끼가 뜬금없이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나랑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냄
진짜 갑자기ㅋㅋㅋㅋ
이 새끼 말 돌리네 싶어서
다음에 우리가 다시 한 번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땐 아마 경찰서이지 않을까요 하면서
가방 챙겨 일어남
그랬더니 진짜 75만원으로 견적 나온거 맞냐고
자기가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날 잡음
아니ㅋㅋㅋ 뭘 확인하겠다는 건데?
프린트물로 받았던 견적서를 회사에 두고와서
잠깐 생각 좀 하다가
내 담당 기사님한테 상황 설명하고
약식으로 된 견적 확인 가능하냐고 전화했더니
빛의 속도로 보내주심ㅋㅋ
그거 보더니 표정이 진짜 꺼멓고 퍼래짐
더 할말 없어서
오늘 안에 입금하라고 얘기하고
일어나서 나옴
그리고 방금 입금된거 확인함 ㅇㅇ
그 새끼랑 주선자 연락처 싹 차단함
앓던 이를 뺀 기분이고
집에 와서 씻고 앉아서 지금 이거 쓰면서 다시 생각하는 건데
진짜 사람 겉만 보고는 모르는 것 같음
겪어보지 않으면 더 모르는 거고
주선자 친구는 애초에
막 베프 이런 것까지는 아니어서 그런가
싹수 노란거 보여도 차단하고
안보면 그만이지 싶어서
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부터 별로 화도 안났음
올 해 들어 가장 현실성 없는 3일이었는데
그래도 나중에 보면 웃길 것 같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