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이 그냥 사라진다는 ‘기지 살인사건’
“따르르릉………따르르릉…”
내가 이 부대에 온지 1년이 되었지만 내 숙소 개인 전화가 울린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도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연락은 내 휴대폰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새벽 4시……
오랜만에 듣는 낯선 벨소리에 나는 벌떡 깨어났다.
“네?”
“통신보안, 헌병대 병장 이ㅇㅇ입니다.”
“헌병대? 헌병대에서 이 새벽에 무슨 일이지?”
“박한수 대위님이십니까?”
“그래..”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뭐라고?”
“급한 일이니 지금 곧 헌병대로 와 주셔야겠습니다.”
“야…병장아…니가 그냥 오라 그러면 내가 가야 하냐?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지.”
“지금 전화로는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어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단 잠에 빠져있던 터라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이 자식이 말 길을 못알아 듣네. 그냥 이유를 말하라고.”
“……………살인사건입니다.”
“뭐? 살인사건?”
나는 옆으로 누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대위님 부대의 최태영 중사가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나는 수화기를 던지 듯 내려놓고 서둘러 복장을 챙겼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
그런데 나는 이 부대에 오자마자 최중사와 친해졌다.
그의 거침없는 유머와 넉살은 매번 규칙과 복종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군인인 나에게 마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다.
나에겐 최중사와 같은 능력이 없다.
내 성격만큼이나 늘 나의 삶은 메마르고, 딱딱했다.
그런 나에게 최중사의 언행은 마치 인생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만난 지 한 달도 안되어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할 정도로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평소 온화한 성격임에도 늘 책임이 앞서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더 강직하고 우직하게 그 일을 수행했다.
그 때문인지 최중사는 상관들 뿐만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 그가 지금 살인혐의로 헌병대에 수감되어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헌병대에 도착한 나는 바로 최중사를 찾았다.
유치장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최중사가 눈에 들어왔다.
군수사관이 나의 출현을 보자 먼저 말을 걸었다.
“동거하던 여자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뭐라구요?”
“이건 관할 경찰서에서 1차 조사를 마치고 저희 쪽으로 보낸 파일입니다.”
군 수사관은 두툼한 파일철을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군 검찰로 송환되기 전에 한 번 보시죠. 그리고 검찰로 송환되면 저 친구와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겁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지금 얘기를 나누시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파일을 급히 열어봤다.
수 많은 조서 중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끔찍한 사건현장 사진이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본 군 수사관은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살해 도구는 K5 권총입니다.
여자 친구의 멱살을 쥔 채 권총으로 무려 12발을 얼굴에 대고 쏜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권총의 총알은 몸에 박히는데 워낙 근접 사격이라 총알이 모두 머리를 뚫고 나갔습니다.”
나는 사체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토악질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 막았다.
사체는 반듯이 누운 상태였고,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뒤통수 부분이 총탄의 파열효과로 3분의 1 정도가 사라졌고, 여자의 머리는 으깨어 세워놓은 삶은 달걀처럼
사방에 파편을 뿌린 채 누워 있었다.
“최..최중사가 죽인게 맞습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현재로서 그렇다니요?”
“총소리를 들은 최중사 이웃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도착했을 때 최중사가 권총을 들고, 사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고 하더군요.”
“최중사가 자기가 죽였다고 하던가요?”
“본인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로는 외부 침입흔적이 전혀없고, 그 방안에 있는 족적은 최중사와 여자 친구 뿐이었다고 합니다.
곧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오겠지만 현재로서는 제 3자의 소행으로는 보기 힘듭니다.”
“권총은….권총은 어떻게 된 겁니까? 평소 소지하지도 않는데..”
“권총의 일련번호로 보아 대위님 부대 무기고에서 탈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파일을 들여다 보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최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까이 철창 너머의 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최중사….니가 그랬어?”
그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최태영!! 니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알아?”
여전히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야 임마..말을 해봐!! 죽였든 안 죽였든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감에도 최중사의 대답이 없자 군 수사관이 중간에서 말을 끊었다.
“지금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극도로 혼란스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사가 계속 진행되면 본인도 입을 열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여기까지 하시죠.”
나는 철창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최중사를 향한 시선을 계속 유지했다.
이대로 군 검찰로 넘겨져 재판까지 간다면 범행의 잔혹성으로 보아 분명히 사형선고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조금 전에 사단장까지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아침이면 국방장관까지 보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셔서 부대 재정비에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당분간 이리 저리 불려 다니느라 고생 좀 하실 겁니다.”
나는 군 수사관의 말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지금 내 앞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친구를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태영…니가 그런거 아니지? 내가 알아보마..”
나는 나즈막한 숨소리로 그에게 말을 건넨 후 조용히 뒤돌아 섰다.
그런데 그가 반응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린 자세임에도 최중사는 나의 돌아서는 발걸음을 느꼈는지 뭐라고 혼자 속삭였다.
“애기…울음”
나는 돌아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그에게 돌렸다.
그리고 물었다.
“뭐라고?”
군 수사관도 그의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듯 내 얼굴을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다시 한 번 최중사가 죽어가는 숨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기….애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뭐….애기 울음소리?”
나와 군 수사관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확인 한 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신음소리처럼 들리긴 했지만 최중사의 말은 모두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기괴한 최중사의 말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수사관과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부대로 돌아온 나는 우선적으로 무엇부터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행정실에서 얼굴을 감싸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아무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당직 근무자들도 나의 표정을 한 두 번 관찰하더니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침 6시가 넘어서자 행정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당직근무자가 전화를 받은 후 곧 바로 나를 불렀다.
수화기에 대고 하는 근무자의 경례소리로 보아 대대장이 분명했다.
“중대장님…대대장님 전화입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충성! 통신보안, 대위 박한수입니다.”
-지금 곧 사단본부로 와라. 사단장님 호출이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복장을 정비하고 부대 차량을 이용해 곧 바로 사단장실로 행했다.
사단본부에 도착하여 사단장실로 향하는 복도가 유난히 길어보였다.
대대장과 나의 뚜벅거리는 걸음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들리는 것 같지 않았다.
사단장실의 집무실 문을 열고 우리는 들어섰다.
골초로 소문나 있는 사단장은 역시나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대대장과 나는 사단장에게 예를 갖추고 열중쉬어 자세로 사단장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불 붙은 담배를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엄지로 간신히 머리를 받치고 있는 사단장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책상에는 관할 경찰서와 헌병대에서 보낸 1차 조사자료가 놓여 있는 듯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페이지를 넘기며 자료를 훑어보던 사단장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조사자료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사병들 사건보다 간부들 사건이 크다는 것 알고 있나?”
“네.”
“게다가 이건 총기를 이용한 민간인 살해사건이야. 나 뿐만 아니라 군단장님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
사단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고 시선을 우리에게 향한 채 말을 이었다.
“두 사람 중에 누가 최중사와 친했나?”
“박한수 대위입니다.”
대대장이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대답을 했다.
“그럼 대대장은 지금 돌아가서 부대 정비에 신경쓰고, 부대원들이 절대로 외부사람과 일체 접촉하지 않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예를 갖추고 곧 바로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사단장은 두 손을 깍지끼고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최중사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나?”
“아주 성실하고 근면하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여자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았다거나 그런 거 눈치 못챘나?”
“여러 차례에 걸쳐 번 최중사 집에서 밥을 얻어 먹었었는데, 그런 것은 눈치챌 수가 없었습니다.
곧 결혼할 거라며 자랑하기도 하였고, 제 앞에서 애정표현을 할 정도로 무척 사랑하는 사이 같았습니다.
3일 전에도 그 집에서 저녁을 얻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당최 알 수가 없군. 헌병대 조사에서도 살해동기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사단장님, 최중사 사건 이대로 군 검찰로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본인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분명히 다른 내막이 있을 겁니다.”
“그 걸 어떻게 확신하나?”
나는 입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제 직감이 확실합니다. 그 친구는 사람을 죽일 만큼 악인이 아닙니다.”
나의 단호하고 분명한 대답 소리에 사단장은 잠시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자네, 공수여단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더군.”
“네, 그렇습니다.”
“주특기가 정찰이었지?”
나는 잠시 나의 전력을 사단장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네, 작은 아버지가 3년 전 퇴역한 군 사령관 아닌가?
예비역 사성 장군의 친인척이 군에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래서 말인데….이 사건 자네가 한 번 조사해 보겠나?”
“네? 제가 말입니까? 헌병대도 있고, 관할 경찰서도 있는데…”
“난 다른 각도로 이 사건을 알고 싶어.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 줄테니까 별도로 이 사건을 조사해 보게.”
솔직히 나도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최중사가 이대로 법정에 선다면 그는 분명히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사단에 요청하여 첨단장비인 음파탐지기를 확보하였고, 1명의 장비관리병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나섰다.
마을 외곽의 허름한 단독주택이 띄엄띄엄 있는 곳에 최중사는 살고 있었다.
족히 50년은 넘게 보이는 허름한 기와집이었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잘 단장이 되어 있었다.
사건 현장에는 이미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었고, 몇 차례 조사가 끝났는지 현장에는 경찰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집 안에 들어서자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사체만 치워졌을 뿐 현장은 그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닥과 벽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특히 벽에는 누렇게 변색된 작은 유기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살해된 최중사 여자 친구 머리에서 튀어나온 살점이나 뼛조각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쏟아져 나왔다.
밖으로 급히 뛰쳐 나온 나는 집 앞 화단에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그것이 3일 전에 나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와 대화를 나누던 여자의 파편이라니…….
나는 헛구역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에 동행한 장비병인 김석우 병장이 나를 보고 괜찮냐는 듯 묻고는 히죽거리는 웃음으로 비아냥거렸다.
“중대장님, 비위도 참 약하십니다.”
“닥쳐 임마!!”
내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180 이 넘는 우람한 체구의 김병장은 계속 손으로 입을 가리며 히죽거렸다.
나는 사건 현장에서 나와 최중사의 주변 이웃들을 조사했다.
옆집, 뒷집 모두 조사해 봤지만 특이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 밤, 주변 이웃들은 아무도 싸움소리나 듣거나, 살인사건이 일어날 만한 어떠한 징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궁금해 했던 가장 큰 의문점인 아기 목소리를 찾는데 실패했다.
주변 이웃들은 모두 연로한 노인들이거나, 자식들이 최소 중학생 이상인 중년의 부부들만이 살고 있었다.
최근까지 아기가 집에 있었거나, 현재 아기를 키우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
낮부터 구름이 몰려오는 듯 싶더니 저녁이 되자 이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변 조사를 마치고 사건 현장 집의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던 김병장과 나는 빨리 비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장님. 왠지 으스스합니다. 오늘은 그냥 부대로 복귀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비가 장난 아니게 내리는데 이거 차 몰고 부대까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천천히 몰고 가면 됩니다.”
“그래 가자”
우리는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힘껏 달렸다.
20여 미터를 달렸을 뿐인데 속옷까지 빗물에 젖은 느낌이었다.
“와…이거 비가 장난 아닙니다. 앞이 하나도 안보입니다.”
시동을 켜던 김병장이 얼굴을 앞유리에 들이대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늘을 주시하며 말을 했다.
차량의 와이퍼가 빠른 속도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바가지로 퍼붓는 듯한 빗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차량은 움직일 수가 없었고, 시동만 켜 놓은 채 우리는 쏟아지는 장대비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젠장….이거 걸어가는게 더 빠를지 모르겠군.”
“중대장님, 그런데 음파탐지기는 왜 요청하신 겁니까?”
“너 말 잘했다. 그 기계 한 번 작동시켜봐.”
김병장은 뒷좌석에 놓인 사과박스 크기의 상자를 조심스레 열었다.
나는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예전 공수여단에서 근무할 때 한 두번 본 것 빼고는 전혀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 이거 어떻게 사용법을 알고 있냐?”
나의 질문에 김병장은 기계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작동시키더니 헤드폰을 머리에 얹고 말을 이었다.
“제가 한미 연합사 훈련에 파견 나가서 배워 온 겁니다. 이 장비는 사단에 없어서 군단에 요청한 걸로 들었습니다.
이게 말입니다. 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사람 소리인지 기계소리인지 구별을 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예를 들어 건물안의 보이지 않는 곳에 누가 숨어있어도 찾아낸다는 것 아닙니까?
미군 애들은 장비 하나는 정말 끝내줍니다.”
“나도 다 알아 임마.”
“그런데 진짜로 왜 이걸 요청하신 겁니까?”
“필요할 일이 있어.”
어둠 속에 파묻힌데다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장대비가 사정없이 쏟아지자 슬슬 나는 부대 복귀가 걱정되었다.
게다가 사건 현장 옆에서 차를 세우고 있으니 이젠 나까지 으스스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 김병장에게 출발할 것을 명령하려는 순간 갑자기 김병장이 차량의 시동을 꺼 버렸다.
“김석우, 너 왜 시동 꺼?”
그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한 번 빤히 쳐다보더니 헤드폰을 낀 머리를 음파탐지기의
모니터에 가까이 하며 뭔가를 살피고 있었다.
“야, 김병장!!”
나의 부름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세우며, 나에게 조용히 할 것을 부탁했다.
“중대장님…………”
그는 가는 숨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수신기를 이리저리 돌려 방향을 맞추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무..무슨 소리?”
내 귀에는 차 위로 쏟아지는 장대비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애기 울음 소리…….”
“뭐야? 애기 울음 소리?”
나는 순간 최중사의 말이 떠오르면서 온 몸에 조여드는 긴장감과 공포에 순간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지 잊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김병장은 가만히 수그린 자세를 유지하며 연신 수신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 있었다.
무슨 재미있는 것이라도 찾느냥 김병장은 천진스런 모습으로 파괴적인 빗소리에서 정체 모를 어떤 소리를 골라내고 있었다.
“OK!! 찾았다!!”
김병장은 자신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싱글벙글한 모습을 한 채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는 나의 어두운 표정을 살피고는 안테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ㅆ1발 놀래라!!!”
김병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나의 존재도 무시한 채 욕설을 내뱉았다.
접시형 안테나가 사건현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김병장,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찾아내……”
내 말에 김병장은 부릅 뜬 눈을 한 번 깜박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두 눈을 부릅 뜬 김병장의 표정은 그가 겁을 집어 먹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차량 내의 우의와 우산을 꺼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김병장은 천천히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발을 옮겼다.
진원지가 서서히 가까와올 수록 김병장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정체 모를 그 소리는 김병장은 사건 현장의 낮은 대문으로 유도하였다.
낮은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나는 심장박동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그만 마당 가운데로 들어서자 김병장이 감자기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의 그 집을 조용히 응시했다.
“왜 그래?”
나의 물음에 김병장은 조용히 그리고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바로… 앞….앞에 있습니다.”
나는 곧바로 손전등을 전방을 향해 비추었다.
작은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이 자식…고양이 울음소리를 착각한 거 아냐?”
그러자 김병장은 전방을 주시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답을 했다.
“고양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코 앞입니다.”
나는 계속하여 전방 주변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소리가 끊겼습니다…”
헤드폰을 쓰고 있던 김병장이 멍하니 한마디 내뱉았다.
나는 잠시 동안 손전등이 비추어진 툇마루 주변을 멍하니 응시했다.
빗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중대장님, 못 들으셨습니까? 상당히 크게 들리던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음을 느낀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우의를 뒤집어 쓴 채 그는 나를 보고 말하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 가려진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고 손전등을 그의 얼굴에 비추었다.
그런데 손전등 빛으로 확인된 그의 표정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지금 장난친거냐?”
“아닙니다. 제가 왜 장난을 칩니까?”
그러나 여전히 그의 비웃는 듯한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너 왜 웃고 있지?”
이 말에 김병장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고 경직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윽박지르듯 대답하였다.
“그럼!!!!!!!!!! 이런 표정으로 있습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과 발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있나!!!”
공수부대 출신인 나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내가 생각해도 치명적이고 거칠었다.
그러나 이러지 않으면 그의 기이한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김병장은 힘없이 고꾸라져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연발했다.
얼마나 나갈지 모르는 그 비싼 장비의 상태가 염려되었지만 다행히도 김병장은 그것을 꽉 움겨잡고 있었다.
“일어나 새꺄!! 감히 나한테 장난질을 해?”
나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차량이 있는 곳으로 끌고갔다.
나는 조수석에 그를 던지듯이 쳐박아 놓고 운전대를 잡았다.
연신 몇 번의 기침을 하던 김병장이 입을 열었다.
“죄..죄송합니다. 중대장님…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이 새끼… 한 번만 그런 장난치면 머리통에 총구멍을 내 주겠다. 알았어?’
이렇게 말은 했지만 왠지 장난같지가 않은 김병장의 행동은 나를 서서히 알 수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빗속을 내달렸다.
그 날 밤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조사를 시작하면 정리될 것만 같았던 사건이 자꾸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머리가 복잡했다.
게다가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마음에 걸려 더더욱 나는 잠 못드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힘겹게 밤을 보낸 나는 일어나자 마자 급한 연락을 받았다.
최중사가 군 검찰로 이송된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해 놓은 것도 없는데 벌써 이송되다니…
헌병대는 사건조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사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미 이송명령이 떨어진 후라 사단장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사단장 끗발도 벌거 아니구만.”
나는 절로 탄식이 나왔지만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헌병대로 향하였다.
내가 도착하자 벌써 최중사는 이송준비가 완료되어 검찰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내가 급히 달려오자 온 몸을 포박당한 채 말없이 차안으로 들어서던 최중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중대장님..”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불렀다.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알 수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말하는 미소짓는 저 표정, 저게 내가 아는, 살인을 저질러 죄책감의 시달리던 최중사란 말인가?
어떻게 지금 이 상황에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머리속이 믹서기로 갈려진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는 기분이었다.
문득 지금 저 한마디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제서야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다시 보자. 행운을 빈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금부터 나는 최중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서 들은 얘기라고는 단 세 가지 뿐이었다.
애기울음 소리를 들었다는 것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
어쩌면 지금 나는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무엇을 더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알리바이, 살해도구, 족적, 지문, 그리고 총소리를 들은 주변 이웃들, 현장을 목격한 경찰들……..
이미 모든 증거들은 최중사가 확실한 범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이것을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나 최중사는 내가 아는 선량한 모습으로, 깊은 내면 속에 잔인한 살인자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의 겉모습에 속은 것은 아닐까?
어제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은 정말 장난이었을까?
내 머릿속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답답한 머리를 식히고자 모자를 손으로 벗어 쥐었다.
오른손에 쥐어든 모자가 종이장처럼 구겨지고 있음을 모른 채 나는 천천히 뒤돌아서 걸었다.
멍하니 넋나간 표정으로 뒤돌아 걷는 나의 모습을 본 헌병대원들이 연신 나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나는 부대에 돌아와서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행정실을 지켰다.
‘애기 울음소리…..툇마루 근처에서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김병장이 기이한 행동을 했다.’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하겠는데, 아니 무엇인가를 지금해야 하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 때 불현듯 나는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툇마루…거기를 파보자.’
나는 서둘러 사단에 굴삭장비와 차량을 요청했다.
그런데 행정실을 나가려는 순간 나는 갑자기 CP의 간부용 무기고가 떠올랐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권총을 챙겨야 할 것 같다는 본능적인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기고에서 권총 한자루를 꺼내고, 실탄이 삽입된 탄창을 권총에 끼워 넣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장전은 하지 않고 조정관을 안전에 위치하였다.
밸트 뒷쪽에 깊숙히 총을 숨긴 나는 부대 밖으로 나와 사단 본부에서 내려오는 지원차량을 기다렸다.
본부 차량이 눈 앞에 나타났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지원차량을 바라보고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전병이 김석우 병장인 것이다.
“너, 뭐야? 난 운전병을 요청했는데….”
김병장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죄송한 것도 있고 해서 자원했습니다.”
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사건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고 도는 다리를 하나 지나야 한다.
낙석이나 산짐승 같은 위험 요소 때문에 지나치게 가파른 산악지형에는 강물을 끼고 도는 다리를 만들어 지나도록 한다.
다리 위를 내 달리는 차량 내에서 몇 분여 동안 아무 말없이 우리 둘은 전방을 주시한 채 앉아 있었다.
“굴삭 차량은 언제 오지?”
“곧 뒤따라 올 겁니다.”
다시 침묵 속에 우리는 빠져 들었다.
이 침묵을 다시 깬 것은 김병장이었다.
“최태영 중사는 어떻게 애기울음 소리를 들은 겁니까?”
“몰라 임마. 그 얘기 그만해.”
전방을 주시한 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앉아 있었다.
“난 하고 싶은데…..왜 안하지?”
그의 말이 존칭이 아닌 짧은 어구로 끝나는 것을 눈치 챈 나는 고개를 돌려 김병장을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김병장이 앞을 보지 않고 나를 보며 웃는 모습으로 운전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온 몸이 싸늘해지는 한기가 순간적으로 몰려왔다.
최중사 얘기를 저 놈이 어떻게 아는 것일까?
“너…이 ㄱH새끼….최중사가 얘기 어떻게 알았어?”
이에 김병장은 전방을 주시하는 것을 포기한 채, 잇몸이 모두 드러날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 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다시 온다고 하지 않았니?”
그의 엽기적인 표정을 보는 순간 나에겐 분노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
“너…이 ㅆ1발새끼!!!”
이 말과 동시에 이미 내 오른손은 밸트 뒷쪽에 깊이 숨어있는 권총을 찾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품 속 깊이 숨겨진 권총을 제대로 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때 나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김병장의 눈이 뒤집이더니 광신도들의 방언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알루라알라얄라…울러러알라워워워..울러러..알라라.샬러러럴…”
“정신차려!!! 미.친 새꺄!!!!!!!!!!”
지금 이곳이 달리는 차량 내부임을 직감한 나는 김병장이 잡고 있는 운전대를 얼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버렸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차량은 천둥같은 파열음을 내면서 강물 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나는 순간 오른쪽 머리를 무엇인가에 세게 강타당하였다.
육중한 무게의 군용차의 바퀴는 일그러진 가드레일을 넘어 강물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른쪽 뺨에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내렸다.
사물이 울렁거렸고,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쓴 듯 세상이 뿌옇게 흐려졌다.
김병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앞유리를 뚫고 몸의 반이 밖으로 나가 있음이 보였다.
뭔가를 잡고 버티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허공에 손을 휘저을 뿐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순간…..
“응애…응애….응애….”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내가 만들어 낸 환청인가? 진정 저 소리가 이 사건의 모든 진실인가?
나는 어떡해서든 이 환각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한 참을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차량이 기우뚱하더니 강물 쪽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밑으로 보이는 강물이 죽음의 사신처럼 다가왔다.
순간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나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너무나도 기뻤던 임관식 날, 한 때 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교관의 말이 떠 올랐다.
“사람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과거의 기억을 한꺼번에 쏟아내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았던
모든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러나 최소한 군인이라면!!!
안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가진 특전부대 용사라면!!!
그 파노라마를 되돌릴 줄 알아야 한다.
죽음 직전의 너에게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있다면!!!
너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들었고,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나 미처 들이마시지 못한 숨으로 인해 활용할 공기의 양이 부족하다.
귀가 아파오고, 폐에 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예전 해상특수훈련 때 힘이 빠져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꺼내 준 교관이 있었다.
그는 숨가쁜 소리를 내며 헐떡거리는 나를 눕히더니 내 얼굴에 수건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얼굴에 비닐 봉지를 씌운 것처럼 전혀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발버둥치며 괴성을 지르던 나를 강제로 제압하며 그 교관이 말을 했다.
“수심이 깊어지면 수압으로 인해 평형감각을 잃게 되지…위 아래가 어디인지 몰라.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만 실상은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 수 있는데도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에 정신을 잃고 헛 짓거리 하다가 그렇게 죽는거야.
지금 너는 물에 빠져 죽기 전의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정신을 잃지 마라…”
“쿵…..”
묵직한 작은 충격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차량이 강 바닥에 닿은 듯 했다.
수압으로 인해 고막은 터질 듯이 아팠고, 들이 마신 숨이 없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파손된 차량 앞유리를 통해 차량의 여기저기를 더듬 듯이 빠져나왔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이대로 몇 초만 더 있으면 곧 물귀신이 될 것 같았다.
폐 속의 마지막 공기가 다 소비되었는지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뇌는 마지막 구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벨트 뒷쪽에 숨긴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오른쪽 앞 타이어를 손으로 확인한 후 탄알 한 발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근접 사격임에도 물 속이라 그런지 두꺼운 고무재질을 총탄이 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이제 죽는걸까?
그 때 내 왼손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공기 주입구의 돌출된 핀이었다.
나는 이제 몇 발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권총을 들고, 마지막으로 그 핀을 향해 미.친듯이 총탄을 쏟아 부었다.
“텅! 텅! 텅! 텅! 텅!”
둔탁한 총소리가 몇 번 울리자 갑자기 생명의 공기방울이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입구에 입을 대고 폐 깊숙히 공기를 집어넣었다.
두 세번을 반복한 나는 그제서야 내 머리쪽에서 어렴풋이 비춰지는 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은 죽음의 사신에게 지배당한 내 머리가 상상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빛은 느낄 수 있었지만 수심은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헤엄을 쳤고 이별할 것 같았던 물 밖 세상으로 고개를 내 밀었다.
물 밖의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 속 깊이 스며 들어왔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나는 수면 위에서 몇 초 동안 생존의 기쁨을 만끽한 후 강 밖으로 헤엄을 쳤다.
강 밖으로 빠져 나온 후에야 나는 하루 전 쏟아진 비로 인해 강물이 상당히 불어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 차례의 기침과 구역질이 멈추자 나는 물 속에 두고 온 김병장이 생각났다.
“이런………..젠장”
그를 구하러 가야 된다.
그런데 순간 나는 사고 직전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떠오르면서 구조를 주저했다.
솔직히 김병장이 무서웠다.
김병장이 있는 저 깊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다니….
1초…2초…3초….
나는 딱 3초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의 중앙부가 아닌 비교적 가장자리임에도 수심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량이 강의 가장자리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다시 뛰어들었을 때 그 차량을 찾기가 쉬웠다는 것이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김병장을 꺼내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가 깨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 머리는 크게 찢어져 과도하게 피를 쏟아낸 것 같았고, 손과 입술은 이미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숨은 멎어 있었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나는 곧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정신 차려 임마….정신 차려!!!”
나는 그를 깨우려 소리치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복부 전체가 파랗게 멍든 것으로 보아 운전대에 복부를 부딪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미 그의 장기는 파열됐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늘어진 시체를 붙들고 장난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나처럼 죽음의 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느끼고만 있다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나지 못했다.
뒤늦게 구조된 나와 김병장은 똑같이 의무대로 이송되었다.
나는 부상자로 그는 사망자로……..
내 얼굴은 유리 파편으로 인해 산탄을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또 오른쪽 머리는 5센티 가량이 찢어져 있었다.
다른 부위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그냥 부대로 복귀하려 했지만, 군의관의 권유로 나는 의무대 입원실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수 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잠시 나의 잠자리를 방해했지만, 그 날은 엄청난 피로감으로 인해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었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끙끙대며 상체를 일으키자 잠시 후 의무병이 식사를 준비해 가져왔다.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아픈 몸을 하고서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했다.
“자주 뵙습니다. 대위님….”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건 조사를 위해 헌병대 수사관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나?
일련의 아기 울음 시리즈라도 얘기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것을 선택했다.
졸음운전… 운전미숙…
총기 사용에 대한 수사관의 집요한 심문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나는 빈틈없는 대답으로 응했다.
오후 늦게서야 나는 의무대를 빠져 나왔다.
대대장의 면담이 끝나고 부대 행정실로 돌아온 나는 그 동안의 사건을 서류로 정리하였다.
헌병대 수사관에게 말했던 거와는 달리 나는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했다.
믿든 안 믿든 내일 이 자료를 사단장에게 제출할 것이다.
나는 밤 늦게서야 서류작업을 끝낸 후 부대원들의 안부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나는 지체없이 복장을 갖추고 사단본부로 향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사단장은 아직 본부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번병의 안내로 나는 사단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사단장 장태섭-
집무실 탁자에 반듯이 놓인 그의 명패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맞은 편 소파에 앉아 사단장을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준비해 온 서류를 매만지던 나는 문밖에서 들리는 수 차례의 경례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사단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예를 갖춘 후 그에게 준비해 온 서류를 내밀었다.
엉망이 된 나의 얼굴을 몇 차례 확인하며 안부를 묻던 사단장은 조용히 그 서류를 받아들었다.
10분 여가 지났을까?
부동자세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에게 사단장은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신 담배를 태우면서 준비해 온 서류를 계속해서 뚫어져라 읽던 사단장이 몇 차례 담배 연기를 내 뿜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 이 걸 나에게 믿으라고 하는 건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내용을 보니 헌병대 조사와는 많이 다르구만.
나도 다른 견해를 얻고 싶어서 자네에게 사건 조사를 맡긴 건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애기 울음 소리에 다들 죽어간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니…누가 알면 비웃음만 듣겠군.”
“그 것 때문에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지금 이 보고서의 내용을 자네 말고 아는 사람이 있나?”
“어제 밤에 작성을 마치고 바로 이 곳으로 들고 온 서류입니다.”
사단장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재털이에 누르고는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박대위. 사건조사를 여기서 끝내야 하겠네.”
뜬금없는 사단장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한 후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 조금만 더 조사를 해보면…”
‘더 조사를 해보면 뭐가 나오나?
이미 최중사는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네.
모든 정황증거나 물증은 최중사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나도 최중사를 살리고 싶어서 나름대로 자네에게 조사를 맡겼지만 이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뭐라고 하겠나?
귀신의 장난이니 최중사 살려주십시요 이래야 하나?”
“저는 그냥 뭔지 모르는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진실? 이미 밝혀진 모든 것들이 진실 아닌가?
명령이다. 박대위.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여기서 마무리짓는다.”
나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을 아꼈다.
나의 굳은 표정을 잠시 살피던 사단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 군인이 되고 싶어서 장교를 한 것 아닌가?
자네 정도의 집 안 배경에 내 입김까지 작용한다면 자네는 대령까지 초고속 승진이 가능하지.
물론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 말야.
그런데 최중사나 죽은 김병장 사건에 자네가 연루되어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나?”
사단장은 나를 위로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의 말은 정작 나에게는 분노와 배신감만을 치밀게 만들었다.
온 몸 여기저기서 다시 통증이 밀려오는 듯 했다.
잠시 인상이 찌푸려지자 얼굴 위에 여기저기 붙여진 작은 반창고들이 내 피부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냥 최중사는 부대와 아무 상관없이 개인적인 사고를 친거야. 알겠나?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거야.”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은 지금 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장님의 진급을 걱정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갑자기 사단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하 부대원의 목숨보다 사단장님 본인의 진급이 더 중요한 겁니다.”
예기치 못한 나의 말에 사단장은 조용히 나에게 명령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나?”
그러나 나는 격해진 나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나의 목소리는 두 세배나 커져 있었다.
“부대원이 수렁에 빠졌을 때 진정한 지휘관이라면!! “
“입 다물어!!!”
“비록 거두어야 할 예하 부대원이 만명이 넘을지라도!! “
“박대위!! 이 ㄱH새끼!!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 수렁 속에서 쓸쓸히 나 혼자 죽어간다는 것을……….”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몸이 풀어지듯 숨을 내 쉬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절대로…..절대로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단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주먹을 쥐듯 움켜쥐고,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잠시 동안 살인적인 적막과 긴장감이 집무실을 감돌았다.
그 소름끼치는 적막을 깬 것은 사단장의 나즈막한 목소리였다.
“니가 지금 고난을 자초하는구나.”
사단장은 무시무시한 눈빛을 풀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건조사는 오늘 부로 접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일체의 어떠한 행동이나 말도 금한다.
그리고 나를 모욕한 댓가로 일주일 내에 넌 다른 사단으로 전출될 것이다.”
머리에 총을 맞은 듯 나는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멍한 표정으로 사단장의 얼굴을 지켜 보았다.
사단 본부를 등지고 나와 나는 한 참을 걸었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너무나도 나약한 , 최중사에게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고 미웠다.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낙하산 강하 도중 대퇴부 관절을 다쳐 2개월 넘게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있으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더 이상 강하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군의관의 말과
그로 인해 매일같이 온 몸에 젖어오는 무기력감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 때의 고통보다 더 한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힘조차 나에겐 없다라는 사실이다.
군인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정의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젠 뭐가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사단장의 말이 정의인지도 모른다.
혹시나 내가 흐르는 물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막는다고 해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대로 뜨내기 생활 끝에 진급도 못해 보고 제대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먹여 살릴 처자식이 없어서 이런 막가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서로 상반된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순간 또 하나의 생각이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래….사건현장에 가서 더 늦기 전에 거기를 파보자.’
이 때 내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여보세요.”
“어이쿠…박대위님. 저 헌병대 수사관입니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이거 어떡하나? 방금 전에 사단에서 연락이 왔는데, 당분간 저하고 같이 다니셔야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단장님 명령으로 박대위님을 근접 호위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뭐요?”
“지금 이 순간부터 박대위님은 헌병대에서 생활하셔야 합니다. 지금 어디 계시죠? 제가 모시러 가지요.”
“젠장 미치겠구만.”
“사단장님 명령인데 불응하면 곤란해지십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사단장은 나를 밑바닥까지 밀어넣는 듯 보였다.
헌병대로 호송된 나는 행정실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항상 수사관과 그의 부대원들이 번갈아 가며 나를 뒤따랐다.
내가 무슨 커다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다니……..
오후에는 내 숙소에서 간단한 옷가지와 생활도구들이 헌병대로 옮겨졌다.
나에겐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자고 먹고, TV보고, 책 읽는 일 뿐이었다.
벌써 이틀을 여기서 보냈다.
나는 좀이 쑤셔서 미칠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행정실에서 한동안 팔짱을 낀 채 넋나간 사람처럼 내가 앉아 있자 수사관이 말을 걸었다.
“힘드시죠? 껄껄껄…대위 정도 되시는 분이 무슨 사고를 치셨길래…”
나를 위로하는건지 놀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3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상사를 달고 있는 수사관은 연신 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며칠만 참으십시오. 자리가 나는 대로 곧 다른 부대로 배치 받으실 겁니다.”
그제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대대장이나 수사과장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주로 작전실에 계시고, 행정실에는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
“수사관 일 오래 하셨나요?”
“이제 7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보람 차시겠습니다. 범죄자들 잡아들이고 있으니…”
내 말에 수사관은 손을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에이…보람차다니요.
이거 막말로 할 짓 없어서 이런 일하는거지 기회만 되면 당장이라도 다른 병과로 옮기고 싶다니까요.
처자식만 아니었어도 군복 벗고 사회생활 좀 해보고 싶었는데..”
“왜요? 수사관이면 파워도 세고, 다들 겁내하는 직책 아닙니까?”
“허허..천만의 말씀입니다. 수사과장 정도는 되야 어디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니까요.
그리고 수사과장은 아무나 합니까?
나머지는 생노가다하는 겁니다. 군대 사건 현장 가보세요.
대위님도 사단장 명으로 사건조사하면서 가보셨지 않습니까?
어이쿠..참혹해서 말이 안나옵니다.”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내 말에 수사관은 잠시 긁적이던 볼펜질을 멈추고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사관 일을 시작하고 처음 접한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전차대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죠.
부대 체육대회였는데 팀별로 전차 끌기 종목이 있었나 봅니다. 기어를 풀어놓은 전차에 줄을 연결해서 일정 거리까지
먼저 끄는 팀이 이기는 경기였는데 모두들 포상휴가 가겠다는 일념하에 무지하게 열심히 끌었나 봅니다.
그런데 한 팀의 줄을 당기던 부대원이 그만 미끄러져 넘어진 겁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물체는 관성이라는게 있잖아요.
모두들 당기던 줄을 놓았는데도 전차가 넘어진 그 친구를 덮쳐버린거죠.”
“오…이런..”
“피해자를 확인하러 저는 후송된 의무대로 갔습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복부부터 하반신이 모두 으깨져있는 겁니다. 내장이고 근육이고, 뼈까지….
그런데 저를 더 경악하게 만든 건 그 친구가 살아서 눈을 부릅뜨고 헐떡이고 있다는 것이었죠.
저는 자리를 가리지 못하고 거기서 토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간신히 진정한 후 수술을 집도하던 군의관들을 쳐다보았죠.
젠장 그런데 이게 웬 걸? 수술하는 척 하더니 으깨진 내장을 살가죽으로 덮어 그냥 꿰매버리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이건 살아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
“젠장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그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숨이 멎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겁니다.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까 군대에서는 기본적으로 호흡이나 심박이 멈춘 환자에게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나는 수사관의 말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것 같아 영 속이 편치 않았다.
“또 한 번은 뭐더라 5년 전인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이등병이 부대 내무반에서 총기를 난사한 겁니다.
그 때 7명이 죽고, 5명이 반신 불수가 되었죠…사건현장에 갔더니 아이고……….이건 말이 아니었습니다.
내무반 침상과 바닥에 벌건 피가 소방 호스로 뿜어낸 것처럼 뿌려져 있더라니까요
진짜 농담이 아니라 사건 현장 조사하는데 담요를 밟으니까 젖은 빨래처럼 핏물이 쏟아져 나오더란 말입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 벽에 오물처럼 붙어있더라니까요.”
내 속이 편치 않음을 알기나 하는지 수사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죽은 애들만 불쌍한 거지요.
나라 지키겠다고 군대와서 그게 웬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부모들 심정이 어땠는지 상상도 안갑니다.”
나는 간신히 거북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죽은 김병장 말대로 나는 비위가 많이 약한 듯 했다.
“이 생활 하다보면 회의감도 많이 느끼지요.
전에는 군납 비리 사건에 연루된 중대장 한 명이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건을 파헤치는데 이건 도저히 수사할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뭔데 말입니까?”
“그 비리에 군단장까지 연루가 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군검찰은 물론 수사관들까지 혀를 내두룰만한 초대형 비리커넥션이 포착되었던거죠.
그런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육군본부에서 사건을 종료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겁니다.
항간에는 그 중대장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죠.
죽기 전 그 중대장은 의외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자신이 군납비리에 관한 거의 모든 서류를 관리하고 있음을 폭로했죠.
그런데 군검찰로 소환되기 전날 자살한 겁니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구요.
유서가 조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수상한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토록 협조적이던 사람이 처자식을 놔두고 갑작스레 자살한단 말입니까?
결국 그 사건은 그 중대장이 비리사건 수사에 대한 압박을 못 이기고 자살한 것으로 수사가 종결되었죠.
지금도 생각하면 참 아쉽습니다.
그 중대장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수사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도 들고요.”
“씁쓸한 얘기군요.”
“X파일처럼 군대에도 여러가지 의문스런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부분의 사건들이 인위적으로 덮어진 것입니다.
정말로 덮어서는 안될 것들이 덮어졌을 때는 뭔지 모를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었었죠.
간부 사건도 그 정도인데 사병들 사건은 오죽하겠습니까?
평균을 내보면 1년에 군인들이 약 500명 넘게 죽습니다.
1개 대대병력이 1년 하나씩 사라지는 꼴이죠.
권력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나 봅니다.
500명 중의 몇 명 정도는 그냥 넘어가자고.
군대 의문사라는 게 다 그런거죠.
그 만큼 군대가 폐쇄적인 곳이라는 상징이기도 하지요.”
수사관은 잠시 볼펜을 쥔 손을 턱에 받치며, 감상에 잠기는 듯 했다.
“처음엔 미연방수사관 FBI처럼 정말 멋진 수사관 생활을 상상하며 의욕적으로 덤볐었죠.
멋진 롱코트를 입은 사복경찰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빳빳하게 풀먹은 군복으로 입고 사건현장에 ‘쨔잔~~’하고 나타났을 때는
나름대로 뽀대도 나고 멋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저는 수없이 많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죠.
수사관이 아닌 그 들의 입 맛에 맞는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작가였다고나 할까요?
입을 다무는 댓가로 저는 승진을 했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다시 돌아갔습니다.”
나는 수사관의 얘기를 들을 수록 의외로 그가 생각이 넓고 속이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들은 얘기들은 못 들은 걸로 하십시요.
그냥 제 무용담이려니 생각하시고, 그냥 넘겨 버리세요.
괜히 수사과장이나 대대장님 아시면 잔소리 듣습니다.”
진지하게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꼭 묻고 싶었던 것을 그에게 던졌다.
“최중사 사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에 수사관은 멈추었던 볼펜질을 다시 시작하며, 나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 얘기 하지 마십시요. 사단본부에서 함구령이 내려졌습니다.”
종이서류에 볼펜을 긁적이며 시선을 맞추지 않는 수사관에게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수사관님도 그 날 들었지 않습니까? 최중사가 애기 울음소리 들었다고, 그리고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수사관은 대답을 거부한 채 무슨 서류를 작성하는지 연신 볼펜질을 해댔다.
나도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최중사는 죽을 목숨입니다. 이젠 제가 그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럴 힘도 없구요.
단지 알고 싶은 건 최중사 사건 뒤에 숨어있는 내막이 궁금할 뿐입니다.
수사관님도 알고 싶은 것 아닙니까? 입 다물고 있는 게 정의입니까?
저를 좀 도와주십시요.
제가 전출을 가면 모든 게 끝입니다. 사건을 파헤칠 시간도 3~4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수사관은 시선을 피한 채 대답을 거부했다.
나는 잠시 말을 멈 춘 후 굳은 결심을 하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김석우 병장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아십니까?
제가 따로 사단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은 제가 수사관님께 진술한 내용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제서야 수사관의 볼펜질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아무말 없이 응시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친구는 졸음운전이나 운전미숙으로 죽은 게 아닙니다. 저를 도와 주신다면 진실을 말해 드리죠.”
그러나 나를 잠시 동안 응시하던 수사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볼펜질을 시작하였다.
“대위님이 죽인 게 아니라면 그냥 덮어두십시요. 그러는 게 대위님 신상에 좋습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
나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수사관님도 일련의 사건 내막을 알고 싶죠?
알고 싶은데 위에서 내리는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거죠?”
나는 볼펜질을 하는 그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숨소리가 불규칙해지고 거칠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때 행정병 몇 명이 행정실로 들어왔다.
무슨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수사관이 그들을 잠시 내보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뜨며 나를 응시했다.
무섭게 노려보는 그의 눈빛은 무슨 일을 낼 것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지만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나의 얼굴을 한참 동안 관찰하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대대장과 수사과장이 군단 기무대장의 회식 자리에 참석기 위해 멀리 떠날 것이오.
당신 대타로 한 놈을 숙소에 박아놓을테니 오늘 저녁 8시에 차량고 앞에 서 있는 소나타 차량을 타시오.”
저녁 6시쯤 헌병대장과 수사과장이 부대를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빨리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얼마 동안 자유시간을 즐기는 척 하며 시간을 보낸 후, 서둘러 복장을 챙기고 부대 차량고로 향했다.
저녁 8시에 구름까지 몰려오고 있음에도 주변은 그다지 어두워지지 않았다.
수사관의 말대로 어두운 차량고 앞에 소나타 승용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석에 타고 있는 사람은 역시나 수사관이었다.
“뒷좌석에 타십시오. 앞좌석은 위험합니다.”
내가 좌석에 앉자마자 차는 급히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질문에 수사관은 재빨리 대답했다.
“일단 부대를 빠져 나간 후 얘기합시다.”
위병소에 진입을 하자 나는 살짝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위병에서는 퇴소차량은 잡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위병소를 통과한 수사관은 부대를 나와 어딘지 모르는 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사건현장으로 가는 겁니까?”
“묻지 말고 일단 이 걸 읽어보시오”
말이 끝나자 수사관은 조수석에 놓인 얇은 서류봉투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앞의 사건기록일지만 보시오.”
“뭡니까? 이게”
“이번 사건조사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오.”
나는 실내 조명등을 켰다.
그리고 운전에 열중하는 수사관의 도움말을 참고로 사건일지를 읽어 내려갔다.
[[[[[
-1978년 7월 14일-
육군 [중사 김ㅇㅇ]가 같은 부대원 [중사 고ㅇㅇ], [하사 이 ㅇㅇ]와 자신의 아내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
-1981년 7월 23일-
육군 [중위 정ㅇㅇ]가 술자리를 같이 하던 동료 부대원 [중사 이 ㅇㅇ], [중사 김ㅇㅇ]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하사 최ㅇㅇ]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힘.
부대로 다시 돌아가 부대원에게 총격을 가하던 도중 사살됨.
-1986년 7월 18일-
육군 [중사 강ㅇㅇ]가 만취상태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소총으로 살해하고, 군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6개월 후 사형집행됨.
-1991년 7월 29일-
육군 [하사 박ㅇㅇ]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흉기로 수십 차례 가슴과 안면 부위를 찔러 살해 한 후, 군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4개월 후 사형집행됨.
]]]]
마지막까지 읽어내려간 나는 수사관에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내 질문에 답을 거부하고 수사관은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 사건들의 공통점이 보입니까?”
“모두 7월에 발생하였고,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이네요.”
“맞습니다. 최중사 사건도 절묘하지 않습니까? 7월 17일……”
“그러고 보니 김병장이 죽은 날도 7월 19일인데….”
수사관은 무슨 엄청난 정보라도 알아낸 냥 감탄사를 연발했다.
“캬~~~~ 7월의 저주라….이거 멋진 걸.”
수사관은 잠시 장난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또 다른 엄청난 공통점이 뭔지 아슈?”
“뭡니까?”
수사관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답을 했다.
“사건현장이 모두 같은 곳이라는 겁니다.”
“예?????”
“바로 그 모든 사람들이 최중사 집에서 죽어나갔다는 겁니다.
거기에 나와 있는대로 최중사 사건 말고 그 집에서만 20년 동안 모두 7명이 죽었고, 그 집과 관련된 사람을 포함하면 총 10명이 죽었소.”
나는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건 완전히 저주받은 집이네요. 그런데 왜 20여년 동안 폐쇄되지 않고 집이 남아있는거죠? “
“7월을 넘기지 않은 군인들과 거기에 살던 민간인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소.
단지 거기서 7월을 보낸 군인들과 그 가족들만이 처참하게 죽어나간 것이오.”
그냥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석연치 않았다.
그동안 나 자신이 보고 느껴왔던 일련의 사건들이 오버랩되면서 싸늘한 기운이 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저주를 내리고 있는 걸까요?”
나의 넋두리에 수사관이 대답했다.
“귀신이든 아니든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예전에 수사관 교육 받을 때 들은 얘기인데, 강한 자기장이나 방사선에 노출되면 사람이 환청이나 환각을 격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방사선 같은 경우는 암 같은 질병까지 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저주로 치부하기도 한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의 원인을 밝히는 겁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올라탄 직후 궁금했던 사항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거기에 보면 사건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지 않습니까? 하사 최ㅇㅇ….”
“아니…그 사람 찾았습니까?”
“명색이 군수사관인데 그 쯤이야 껌이죠. 미리 연락도 취해놨소.”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직업이 경찰인 사회 친구들 도움을 좀 받았죠. 그 건 그렇고 죽은 김병장 얘기나 해보슈.
사단장한테 뭐라고 보고가 된 겁니까?”
나는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고, 긴 한숨을 내뱉았다.
그리고 그 간 벌어졌었던 일련의 미스테리한 일들을 수사관에게 낱낱히 얘기하였다.
얘기를 듣고 있던 군수사관은 자신도 소름이 끼치는지 몇 번의 탄식을 내뱉았다.
특히 김병장이 광신도들의 방언같은 괴상한 말을 쏟아냈다는 부분에서는 진짜로 그랬냐고 몇 번을 되묻기도 했다.
우리는 군이수지역을 한 참 벗어난 곳까지 차를 몰았다.
보통의 군인들은 이수지역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수사관들은 다른 것 같았다.
검문소 헌병들은 수사관의 얼굴만 보고도 그냥 통과시켰다.
1시간 정도 차를 몰아 우리는 외진 시골집에 도착하였다.
대문앞에서 인기척을 보이자 한 쪽 발을 사용하지 못하는 40대의 한 남자가 목발을 짚고 나오는 것이다.
키는 170이 조금 넘고, 마른 체형이었으며, 하얀 얼굴에 며칠동안 깍지않은 듯한 검은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절룩거리는 다리 뿐만 아니라, 함몰되어 있는 양쪽볼이 그가 지금 상당히 병약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우리가 찾는 그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신분을 밝히고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했다.
그는 우리를 천천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안내했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그는 국가보조금을 받고 허름한 집에서 연명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소.”
그는 조용히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게 담배연기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그 날은 무서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소.
부대 합동훈련이 끝나고 얼마 후 나는 소대장 집에서 선임하사 둘과 간단히 술자리를 같이 했다오.
원래 하사관들과 장교들은 친하지 않은데 소대장이 워낙 넋살이 좋고, 술을 좋아해서 우리 하사관들이 그를 잘 따랐소.
그런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소대장이 이상한 얘기를 하더이다.
요사이 밤마다 어디서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얘기를 듣고 있던 수사관과 나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애기 울음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그럽디다.
어떤 날은 가위에 눌렸는데 어두운 방안에 어떤 군인이 총을 들고 나타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랍니다.
얼굴과 몸에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군인이었는데 뭔가를 계속 찾고 있더랍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배 위에 올라앉아 징그러운 웃음을 한 번 짓더니 긴 소총을 턱밑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더랍니다.”
그는 잠시 담배를 몇 번 빨더니 말을 이었다.
“소대장의 귀신얘기에 우리 하사관들은 그냥 웃어넘기려고 했는데, 소대장 표정이 너무 진지한거요.
우리가 소대장에게 무슨 군인이 겁이 그렇게 많냐며 놀리니까
갑자기 소대장의 표정이 경직되더니…이상한 소리를 하더이다.
‘들어봐…지금도 들리잖아..’이러면서 말이오.
휘둥그레 부릅 뜬 두 눈으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소리의 정체를 찾는 소대장의 표정이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오.
우리도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들리지 않았다오.
정말 우리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소대장은 미.친 사람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협박했다오.
‘얼럴러..얼러러..들어…들어..들리잖아….’이러면서 말이오.
그거 있잖소, 교회 같은데서 괴상한 소리내면서 기도하는거….”
“방언 말입니까?”
“맞아..그 거…”
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죽은 김병장의 그 괴기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소대장이 계속 그런 소리를 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이 뒤집히더이다.”
이럴수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나는 잠시 한쪽 팔뚝을 쓸어내렸다.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시킬 생각은 못하고 너무 놀라서 순간 뒤로 물러났는데…………..”
얘기를 잠시 멈추는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고는 다시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갑…갑자기 소대장이 정신을 차리고 그 괴상한 행동을 멈추더이다.
그리고는 이리 저리 몇 번 목을 꺽더니………..”
그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지 왼손으로 자신의 입을 감싸쥐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그가 심하게 격해져 있음을 알고 그를 안심시켰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 품에서 권총을 꺼내더니…왼쪽의 선임하사부터 차례로 권총을 난사하는거요…..흑흑흑..”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우리는 잠시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그는 옆에 있던 무슨 종류인지 모르는 약을 손에 움켜쥐더니 입에 털어넣고 물 한모금을 들이켰다.
몇 번의 깊은 숨을 몰아쉬고는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맨 왼쪽에 있던 선임하사는 세 발을 머리에 맞아죽고, 가운데 앉아있던 선임하사는 거의 다섯발을 얼굴과 가슴에 맞았소.
갑작스런 총소리에 귀가 멍해져서 있는데 내 얼굴과 몸에 핏물이 마구 튀는거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죽어라 비명을 질렀소.
이게 꿈이라면 깨길 바랬고, 꿈이 아니라면 누가 좀 소대장을 말려주길 바랬소.”
심하게 떨리는 그의 손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흑…두 명을 순식간에 해치운 소대장은 곧바로 나를 죽이지 않고 나에게 미소를 보이더니…총을 겨누고 씨익 웃는게 아니오?
그 때 마지막 순서로 죽음을 기다리는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소?
내가 그 때 본 것은 소대장이 아니라 악마였소…악마…
그 순간 나는 소대장을 제압하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튀어올랐소..
그리고는 두어발의 총소리가 들렸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겁니까?”
“한 발은 폐쪽, 한발은 어깨쪽에 맞았고, 마지막 한 발은 대퇴부쪽에 맞았는데, 대퇴부쪽으로 들어간 총탄이 신경을 건드린거요.
하늘이 도왔는지 나에게 세 발을 쏘고나서 소대장의 권총이 실탄을 모두 뱉은거요.
난 실신했고, 소대장은 다시 부대로 돌아가 소동을 벌이다 죽은겁니다.
결국 난 의가사 전역했소.
그나마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십수년간 나는 그 뒤로 매일 밤 악몽이 시달렸소.
매일 밤마다 피떡이 묻은 얼굴로 소대장이 나타나 그 악마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는거요.
지금은 약도 먹고 치료도 받고 해서 많이 나아졌지만, 얘기를 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 때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오.”
모든 얘기가 끝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목발의 그 남자가 대문 밖까지 배웅을 하였다.
낮에는 맑아보였던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비구름이 몰려왔는지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안부를 전하고 뒤돌아 가려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뱉았다.
“그 곳은 저주받은 곳이오.”
“예?”
수사관과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유난히 더 핼쑥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댓가를 난 지금 처절하게 치루고 있는 것이오.
부디 몸 조심하시오.”
한 동안 말이 없이 우리는 조용히 달리는 차 안에서 전방을 주시했다.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자, 수사관은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나는 서서히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두려웠다.
사건을 파헤칠 수록 자꾸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것 같아 머릿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내가 앉아 있는데도 수사관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겁니까?”
나의 질문에 운전을 하던 수사관이 씨익 웃었다.
이젠 누가 미소짓는 것만 봐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일에 이번 일이 들통나기라도 하면 고생 좀 하실텐데요.
저야 홀몸이라 부담이 없지만 수사관님은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난 대위님이 부럽소이다.
나는 내 안위만을 생각한 채, 수사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저버린 사람이오.
속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는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런데 대위님은 나와 달리 부대원 하나 때문에 사단장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잖소.
당신을 만난 뒤로 예전에 내 가슴속에서 사라졌던 정의감이 불타오르기 시작한거요.
지난 사건은 어쩔 수가 없지만 지금의 사건이라도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소.
그런데 대위님은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거요?”
“그냥…..그냥……..군인답게 살고 싶었습니다.”
“헐…명답이로세.”
수사관은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10시에 가까워지자, 나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감지하고 수사관을 제촉했다.
“이제 뭘하죠?”
“죽은 김병장이 말한 곳으로 가봐야죠.”
“사건 현장 말입니까?”
“대위님이 거기를 파보려다가 실패한 것 아닙니까?”
“장비도 없는데…”
“오늘 거기 툇마루를 뜯어봅시다. 빠루같은 간단한 장비를 트렁크에 다 실어왔소.”
사건현장….서서히 굵어지는 빗줄기…그리고 어둠에 묻힌 밤……..왠지 불길하다.
“수사관님……”
“네?”
“현장에 가기 전에 나하고 약속 하나 합시다.”
“무슨 약속이죠?”
“지금의 모든 주변 환경이 저와 김병장이 사건현장을 방문했을 때 상황과 같습니다.”
“음……..대위님은 지금 우리 중에 누가 귀신 들릴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걱정이 되서 하는 말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한 명이 미쳐 날뛰기라도 한다면 지금 뒤에 있는 공구들이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수사관이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잔 말입니까?”
“처음에 김병장이 이상한 행동을 했을 때 제가 김병장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김병장이 정신을 차리는 겁니다.”
“아…그럼 둘 중에 하나 누군가가 귀신 들렸다 판단이 되면 사정없이 후려쳐라 이겁니까?”
“현재로서는 그 방법 밖에 없습니다.”
“별 거 아니구만. 일단 알겠소……..”
나는 고개를 돌려 사정없이 빗줄기가 분쇄되고 있는 앞유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사건현장에 도달하자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내리는 빗줄기로 사물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우의를 입고 차에서 내리자 질퍽한 흙탕물이 군화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는 차량 트렁크에서 장비를 챙겨 들었다.
나는 배척(일명 빠루라고 부르는 못을 뽑을 때 사용하는 긴 쇠막대)을 들고, 수사관은 야전삽과, 해머를 들고 대문 앞에 나란히 섰다.
가끔씩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와 빗소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들리지 않았다.
번갯불에 잠깐씩 얼굴을 드러내는 사건현장의 대문은 우리를 반기는 듯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또한 비바람에 찢겨 펄럭이는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어서오라고 반가운 손짓을 보내는 것 같았다.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나의 말에 수사관이 맞대응했다.
“대위님이나 그 빠루로 날 찍어 죽이지나 마쇼.”
지옥의 입구처럼 보이는 낮은 대문을 통과해 우리는 작은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어 우리 외에 다른 누가 있는지 구석구석 살폈다.
눈 앞에 툇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수사관에게 말을 건넸다.
“바로 저기입니다. 김병장이 말했던 곳이.”
“음…그럼 먼저 마루 밑의 디딤돌부터 치워버립시다.”
우리는 배척을 지레삼아 마루 아래에 놓여있는 두 개의 디딤돌을 힘껏 들어내기 시작했다.
디딤돌 주변을 시멘트로 발라 놓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머질과 삽질을 번갈아가며 우리는 조금씩 디딤돌을 움직여 나갔다.
기와집 처마 아래로 빗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번개치는 횟수가 늘어난 듯 보였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마당을 중심으로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우….무섭게 자꾸 번개가 치고 지랄이야…”
수사관이 하늘을 몇 번 쳐다보더니 불평을 토로했다.
바로 그 때….
“응애……응애…….응애…..”
내 귀속의 고막을 울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빗소리에 섞여 있지만 분명히 들린다.
나는 즉시 행동을 멈추고 쭈그린 자세를 유지한 채,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대위님, 왜 그래요?”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로 흠뻑젖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낮은 숨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안 들립니까?”
“뭐요? 애기소리?”
“네. 애기소리…..”
내 말에 수사관이 주변을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라….난 안들리는데….진짜로 들려요?”
손전등을 통해 주변을 관찰하던 수사관이 나의 얼굴을 비추며, 말을 이었다.
“비오면 고양이 소리가 애기소리처럼 들리기도 해요.”
수사관은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번개가 연속으로 플래시를 터트렸다.
나는 수사관을 바라본 채 정수리부터 꼬리뼈까지 쫘악 얼어버렸다.
마당 한가운데 누가 서있는 것이다.
얼굴은 수사관을 향하고 있는데 왼쪽 곁눈으로 그가 보이는 것이다.
나의 왼쪽뺨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뒤늦게 번개를 따라 온 천둥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에 쥐고 있던 배척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속에 묻힌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번개가 빛을 발했다.
텅빈 마당….그리고 쏟아지는 빗줄기…아무도 없었다.
배척을 쥐어든 나의 오른손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
수사관이 나의 어깨에 손을 탁 얹으며 물었다.
“응애…..응애….응애…..”
아기 울음소리…..빗소리는 들리지 않고, 아기 울음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그런데 뭐지?
수사관이 왜 갑자기 나에게 반말이지?
그리고 목소리가 왜 낯설지?
나는 다시 고개를 천천히 원위치시키며 그를 바라 보았다.
순간 나는 심장이 터져나가는 듯 했다.
얼굴에 온통 피로 덮여있는 낮선 남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짓고 있는 것이다.
번갯불이 번쩍일 때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아~~~~~악!!! ㅆ1발 뭐야!! 아~~~~~~~악!!”
나는 미.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뒤로 물러서며 넘어진 나에게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배척을 오른손에서 천천히 들어올렸다.
순간 어떤 강한 힘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차디찬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돌아왔다.
“여길 왜 왔어? 군바리 새끼”
그러나 그 괴상한 음성은 멈추지 않았다.
“너..누..누구야…”
다시 한번 내 얼굴에 큰 타격이 주어졌다.
“대위님!! 정신차려요!!!”
수사관이었다.
뒤로 넘어진 자세로 헐떡이는 나에게서 수사관은 배척을 뺏아들었다.
“미쳤어요? 정신차려요!! “
두 눈을 부릅뜨고 뒤로 넘어진 자세로 헉헉대는 나를 향해 세 번째 손이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날아오는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만…..그만…”
수사관은 계속해서 나의 얼굴을 살폈다.
“이젠 괜찮습니다….허..헛 것이 보였어요.”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제야 주변의 빗소리가 귀에 다시 들어왔다.
수사관이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진짜로 미쳐서 이 빠루로 날 찍어 죽일 셈이요?”
“미안합니다….잠시 헛것이 보여서…”
“아까 약속하고 오기를 잘 했네…”
이제야 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정상인 줄 알았는데, 내가 미.친 것이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그렇다면 김병장과 다리를 건널 때 누가 미쳤던 것인가?
혹시 김병장이 아니라 내가 미쳤다면?
김병장이 똑바로 잡고있던 운전대를 내가 틀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럼 멀쩡히 운전하고 있던 김병장을 내가 죽였단 말인가?
그 날 애기 울음소리는 내가 듣지 않았던가?
“크아~~~악!!! ㅆ1발 말도 안돼!!!!!!!!!”
머리를 움켜쥐며 울부짖는 나에게 수사관이 호통을 쳤다.
“왜 그래요? 박대위!!! 이번엔 군화발로 맞고 싶소!!!!!!!”
그래….김병장과 나, 우리는 둘 다 죽을 운명이었어.
그런데 나는 살아 돌아온거야. 혈기 왕성한 한 젊은이를 죽이고….
이젠 평생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
소대장의 권총세례에서 살아나온 하사의 말이 떠올랐다.
‘난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 돌아온 댓가를 난 지금 처절하게 치루고 있는 것이오.’
“헉헉…말도 안돼..ㅆ1발!!! “
아무런 대답없이 주저앉아 울먹이며 절규하는 나에게 갑자기 군화발이 날아들었다.
“정신차려!! 박대위!! 당신 미쳤어?”
수사관의 군화발에 나는 마당의 흙탕물 속으로 나뒹굴어졌다.
큰 대자로 누워버린 내 몸위로 차가운 빗줄기가 끝없이 쏟아졌다.
헐떡거리는 내 입속에 빗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가늘게 눈을 뜨려하자 나의 작은 속눈썹은 쏟아지는 빗물을 연신 걷어내기에 바빴다.
한참을 시체처럼 누워있는 내 앞에 수사관이 삽을 들고 걸어와 멈춰섰다.
한심한 듯 나를 지켜보던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박대위…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정신차리시오.”
지금 이 순간 그는 나를 때려 죽이러 온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빗물을 토해내기 위해 몇 번의 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김병장이 죽은 날……. 김병장이 미.친 게 아니라….. 제가 미쳤었다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김병장을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하는거요?”
“만일 그랬다면요?”
내 말에 수사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 않았소?
만일 당신이 그랬다하더라도 그건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잖소?
김병장이 죽지 않았다면 어쩌면 당신이 죽었을 수도 있는 것이오.”
“흑…말도 안돼…”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움켜 쥐었다.
이러는 나에게 수사관은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박대위….최중사나 죽은 김병장이 바라는게 진정 뭐일 것 같소?
이제 정신차리고 마저 하던 일을 계속합시다.”
수사관은 조용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말에 서서히 안도감이 몰려왔다.
왠지 친형처럼 느껴지는 그가 나에겐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을 뒤덮은 눈물과 빗물을 두 손으로 힘껏 쓸어내리고는 그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무슨 잘못을 하여 스승앞에서 꾸중을 듣는 아이처럼 나는 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몸에 묻은 흙을 빗물로 천천히 씻어내던 나는 그에게 물었다.
“수사관님, 몇 살이죠?”
“서른 일곱이오. 그런데 나이는 왜 묻소?”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수사관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제가 서른 하나니까 여섯살 형님이시네요.”
“어이쿠 대위님. 생각보다 젊네요.”
“모든 일에 있어서 인생 선배들은 어린 사람이 모르는 뭔가를 가지고 덤비는 것 같습니다.
배운 놈이든 못 배운 놈이든 나이를 먹어가면 알아가는 그런 것 있잖습니까?
수사관님에겐 그런게 느껴집니다.”
“쳇….별 거 없소이다. 마누라 잔소리 들어가며 처자식 먹여살려 보시오.
귀신?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그런 거 별거 아니게 느낄 것이오.
여기저기 사람들에 치어가며, 욕먹어가며, 아둥바둥 살아가 보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오.
사람이 가장 나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거랍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감사표시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위님 부하들은 참 행복하겠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지휘관 밑에서 근무를 하니…”
우리는 잠시 서로 미소를 지으며 우정의 눈빛을 나누고, 다시 장비를 챙겨 디딤돌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육중한 디딤돌이 밖으로 밀려 나왔다.
수사관은 몸을 옆으로 최대한 눕힌 후 낮은 마루 밑을 향해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었다.
같은 자세를 취한 나도 눈에 띄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 마루 밑 깊은 곳에 눈에 들어오는 뭔가가 보였다.
“헛…저거 뭐죠?”
나의 질문에 수사관이 2미터 정도 마루 안으로 들어가 있는 그 물체를 유심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먼지로 뒤덮여서 뭔지 나도 잘 모르겠소. 꺼내 봅시다. 그 빠루 한번 줘보슈.”
수사관은 내가 건넨 배척을 마루 밑으로 집어넣어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배척의 머리로 물체를 낚아챘다.
“생각보다 가볍네..”
수사관은 반복적으로 그 물체를 배척으로 낚아채가며, 긁어내듯이 조금씩 조금씩 그것을 끌어냈다.
드디어 그 물체가 마루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이거..”
촉감이 섬유질이었다.
먼지를 몇번 털어내자 우리는 그것이 담요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한 번 서로의 얼굴을 확인 한 뒤 천천히 담요를 겉부분부터 벗겨냈다.
몇 겹으로 덮인 담요를 들어낸 후,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으아~~~~~악!! 뭐야 이거!!!”
아기였다.
아니 아기 시체였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자빠진 우리는 다시 한번 멀리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 한 뒤 그 시체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후……ㅆ1발…..이건 뭐야…”
손전등을 비춘 수사관이 연신 두려움의 탄식을 내뱉았다.
돌도 넘기지 않은 아기 시체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신기하게도 시체는 썩지않고 미이라처럼 검게 말라있었다.
머리부분에 남아있는 많은 양의 검은색 머리카락이 그 신비함을 더했다.
“아니…왜 이런 곳에 애기 시체가 있는거지?”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며 살피던 우리는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건드리면 갑자기 죽은 아기가 깨어나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에, 수사관은 그 쪽지를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누렇게 변색된 그 종이를 펼치자, 잉크가 거의 탈색되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수사관은 그 작은 글씨에 손전등을 가까이 비춰가며 읽어갔다.
“1977년 12월 20일…….김ㅇㅇ”
“우와…..이게 20년이 넘은 시체란 말이예요?”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거 생일인가? 아니면 이 안에 들어온 날인가?
하여튼 이 아기가 뭔가 답을 얘기해 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구려….”
그런데 갑자기 수사관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젠 어떡하죠?”
“어떡하긴요?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죠.”
“그게 아니라 경찰이 오면 신고자인 우릴 조사할거고, 우리가 여기 온 걸 부대에서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럼 경찰들한테 군에서 물어보면 우리를 본 적 없다고 부탁하면 안될까요?”
“그것도 어렵습니다. 군관련 사고는 사고 접수 즉시 바로 군헌병대로 전달됩니다.
그럼 헌병대장이나 수사과장한테 보고될 것이고, 우리는 부대에 없다는 것이 밝혀질 게 아닙니까?”
수사관은 연신 걱정스런 심정의 말을 이었다.
“사단장 명령을 어기고 부대를 벗어났으니…보통 일이 아닌데..”
“버리고 갈까요? 가면서 신고하든가 아니면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보고 신고할 것 아닙니까?”
“이대로 버리고 가면, 우리는 더 이상 이 아이에 대해 조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수사관은 입술을 깨물며 해결책을 찾는데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그 때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잠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시간이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사관님 잠깐 여기서 기다려봐요.”
“왜요? 어디 가게요?”
“사건파일을 다시 한번 좀 봅시다.”
나는 빗속을 가로질러 후다닥 대문 밖 소나타 차량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소나타 뒷좌석에 내려놓은 사건 파일을 우의 안으로 숨겨들고, 수사관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수사관은 무슨 일이냐는 듯 나에게 물었다.
“사건파일은 뭐하게요?”
“후레쉬 좀 비춰 보세요.”
나는 서둘러 서류봉투에서 파일을 꺼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좀 보세요!! 첫 사건!!!!!”
[[[
-1978년 7월 14일-
육군 [중사 김ㅇㅇ]가 같은 부대원 [중사 고ㅇㅇ], [하사 이 ㅇㅇ]와 자신의 아내를 소총으로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
]]]
“아니!! 이럴 수가…….”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수사관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담요 속에서 나온 쪽지의 날짜는 1977년 12월 20일…….그리고 아기의 이름은 김ㅇㅇ…….
1977년 12월 20일은 저 아기의 생년월일이 분명하고, 용의자 김ㅇㅇ중사의 자식일겁니다.”
“이런 세상에…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제가 전에 죽은 김병장과 여기 왔을 때 주변 이웃들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요?”
“그 중에 이 집에서 30여미터 떨어진 곳에 아주 연로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쭈욱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아기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바로 갑시다.”
수사관은 서둘러 우의의 모자를 뒤집어 썼다.
순간 나는 바닥에 놓여있는 아기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기 어떡하죠?”
“그러게요….차에 싣고 다닐 수도 없고…”
“일단 다시 마루 밑에 보이지 않게 넣어놓고 다시 옵시다.”
“마루 밑? 불쌍하지 않소? 20년 넘게 저렇게 어둡고 쾨쾨한 곳에서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 생각이 짧은 듯 싶었다.
“그럼, 방에 보이지 않게 들여놓고 갑시다.”
우리는 그 아기시체를 조심스레 들고 들어가 툇마루와 이어진 작은 방 구석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아기를 내려놓고 수사관은 잠시 아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을 했다.
“참…마음이 착잡하구랴..태어나자마자 얼마 안되어 저 여린 몸으로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수십년을 보냈으니….”
나도 잠시 그 아기를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아기의 명복을 빌었다.
“자…이제 가시죠.”
우리는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그 노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녹이 슬어 페이트가 여기저기 벗겨진 낮은 철제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입니다.”
“와 진짜 옛날 집이네.”
집 자체는 시멘트 블럭으로 쌓아올려 기와를 얹은 허름한 형태였지만, 마당은 텃밭이 있을 정도로 비교적 넓었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노부부는 잠든 상태가 아닌 듯 싶었다.
“계십니까?”
대문을 두드리며 우리는 인기척을 보냈다.
몇 번을 두드리며 안에 있는 사람을 부르자 마루에 불이 켜지고,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런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우산을 쓰고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뉘시오?”
피부는 까맣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마른 체형이었지만 노인은 매우 정정해 보였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과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한 후 , 그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멈…손님이 오셨어. 먹을 것 좀 있으면 좀 내와요…”
그러자 노인의 아내가 방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누구인지 묻고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방에 앉자마자 노인은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저 집에 참 사고도 많이 났지…..조용하다 싶으면 사고나고, 다시 조용하다 싶으면 또 사고나고…”
“혹시 어르신….대략 20년 전에 그러니까……….애 키우던 집 하나 있었잖아요….”
“20년 전? 20년전이라….”
“군인 가족인데, 중사 한 명이 자기 아내 죽이고 자살한 사건 말입니다.”
“아……그 친구!!!”
그제서야 노인은 무릎을 탁치며 대답했다.
그 때 노인의 아내가 옥수수가 담긴 양푼 그릇과 음료수를 들고 들어왔다.
“아이고…참… 손님 오셨는데 또 담배질이네…”
아내의 푸념에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친구 저 집에서 6년 가까이 살았지…..참 좋은 친구였어.
얼굴 잘 생겼지 성실하지 인사성 밝지…동네에 나이 맞는 처녀라도 한 명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었다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거기서 산 후 4년 쯤 되었을 때인가 여자 하나를 데려와 살더라구.
결혼할 여자친구라면서 데려왔는데 아주 고운 색시였다우.
그 친구만큼이나 예의도 바르고 부지런했지.
혼인식도 안하고 산 것 같았는데, 마치 부부처럼 너무나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더라니까”
이에 노인의 아내가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옛날 죽은 그 불쌍한 군인 얘기구랴?”
노인은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있던 담배의 재를 털어낸 후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온지 얼마 안되서 색시의 배가 불러오더니 아들을 출산을 한거야. 참 빠르기도 하지.
그 때 쯤 그 친구는 혼인신고를 하고, 애 출생신고까지 마쳤다 하더라구..
얼마나 좋아하든지… 모든 걸 경험해 본 내 나이에도 여간 부러운게 아니더라니까…
그런데 그 친구가 죽던 그 해에 우리 동네에 작은 부대가 하나 이전해 왔어.
아주 멀리서 온 부대 같더라구…..
부대마크도 다르고 다들 처음보는 군인들이었어.
아주 먼 곳에서 훈련지원을 나왔다 그러더라구…
6개월 정도 머물다 갈 거라면서 막사도 천막을 쓰고, 밥도 이동식 취사기로 해먹더라구.
그런데 말야 그 부대가 이 동네에 온 뒤로 이상한 말이 돌았어.”
노인은 잠시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지푸렸다.
그의 아내도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잠시 쓸어내렸다.
“그 때가 그 친구 애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야.
어느 순간부터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나돌더라구….”
“무슨 소문 말입니까?”
“아니 글쎄….그 색시가 술집과 다방을 떠돌며 몸을 팔던 여자라는거야….”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이전해 온 그 부대원들 사이에서 처음 나온 것 같애.
원래 그 부대가 있던 동네에서 그 색시가 그런 일을 했었나봐….
돈 좀 벌어서 거길 떠나 열심히 한 번 살아보려고 하던 차에 그 중사 친구를 만난거지.
어이구…그런데 이게 뭔 운명의 장난이래…색시를 알고 있던 그 동네의 부대가 이전을 해 왔으니”
노인은 손에 든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겼다.
“여기는 워낙 동네가 작고 군부대가 가까이 있다보니까 군대 안이든 밖이든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어디서 엿들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 친구 귀에도 그런 말이 들어간 것 같애.
그 뒤로 그 친구는 항상 술에 절어 다녔고, 마을 어귀 길거리에서 만취 상태로 뻗어있는 경우도 몇 번 봤지.
일을 마치고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매번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라고 ….
그렇게 금실좋던 부부가 저렇게 되었으니 마을 사람들도 다들 안타까워 했지….”
“그럼 그 여자분은 어떻게 죽은 겁니까?”
“요 앞에 읍내에 가면 작은 철물점이 있어. 농기구도 팔고 이런 곳이지.
그런데 에전엔 거기가 술집이었어.
칸막이가 쳐져 있는 요정같은 술집이었지…
그 날도 그 친구가 혼자 거기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나봐.
그렇게 만취한 상태에서 옆 칸에서 들리는 말소리를 들었나봐.
술집 주인년과 떠들고 있는 군인이었는데, 술집 주인년 얘기로는 아마 대위였다고 했지?”
“맞아요..대위..그 썩을 놈!! 장교나 되가지고!!”
얘기를 옆 귀로 듣던 노인의 아내가 분통이 터지는지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년놈들 모두 취해 있었는데, 그 망할 놈의 대위가 그 친구가 옆 칸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 색시 건드린 얘기를 하더래…뭐라더라?
얼굴값 해서 원래 잘 안주는 년인데, 자기가 제일 먼저 뚫었대나?
자기가 여자 하나는 제대로 죽여놓기 때문에 매일같이 자기 방에 찾아왔대.
그러고는 싫증이 나서 차버렸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놈 저놈들이 돈 줘가며 돌아가면서 한 번씩 그 여자와 자봤다는거야.
그 애도 누구 애기일지 모를거라면서 사람으로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계속 씨부렸나봐.
옆 칸에서 그걸 듣고 있던 그 친구의 심정이 어땠겠나?
그 얘길 들어 준 술집 주인년이 미.친 년이지..지가 술에 취해 바로 옆 칸에 그 친구가 있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친구가 문을 박차고 나가자 그제서야 그 주인년이 그 친구를 알아보고 그 대위를 피신시킨거지….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나서 만취한 그 친구가 소총을 들고 오더니 술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 대위가
있던 칸으로 ㄱH새끼 죽여버리겠다면서 총을 난사한거야.”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담배하나를 꺼내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길게 한 모금을 들이킨 노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 귀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거기에 앉아있던 사람은 그 대위가 아닌 그 친구 부대원 두 명이었어.
그 술집년은 안쪽의 주방에서 일하다가 숨어서 지켜봤나봐.
그 친구는 이미 이성을 잃은 사람이었어. 주인년 얘기로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대.
죽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걸레같은 년을 죽여버리겠다며, 총을 들고 뛰쳐나가더래.
주인년은 직감적으로 그 걸레같은 년이 그 친구 아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한거야.
결국 부대에 연락이 닿아서 그 친구 색시한테까지 전해졌나봐.
우리는 그 날 동네 마을 회관에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거의 9시 쯤 되었을거야.
그 친구가 또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구.
그런데 싸우는 정도가 너무 심한거야…
뭐라더라…니 더러운 몸에서 나온 자식새끼 어디있냐면서 막 때려부수고 난리가 아니었다니까…”
노인은 연속되는 담배질에 목이 타는지 앞에 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우리가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마침 싸이렌이 울리면서 엄청난 숫자의 경찰과 군인들이 몰려오더라구.
내가 여기 살아오면서 그렇게 떼거지로 몰려오는 건 처음 봤다니까.
그런데 그 소리에 그 친구가 마지막인 걸 직감했는지 갑자기 방안에서 총소리가 나더라구….
그 때 색시를 죽인거지.
대문 앞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직감하고서는 사람 죽었네 사람 죽었네 소리치면서 난리가 난거야.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총소리가 나더라구.
그 친구가 자살한거야….”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잠시 숙연해졌다.
아무 말없이 몇 초가 지나자 다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거기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다음 날 경찰서에 모두 불려갔어. 그 술집 주인년도 있었지.
그 년 얘기를 듣고 있으니까 분통이 터지더라니까.
우리 할멈을 비롯해 거기있는 사람들이 그 년 머릿채를 잡고 패댕이를 치고 난리가 아니었지.”
“아이고…지금 생각해도 그 년 그 때 찢어 죽이지 못한 게 한스럽다니까.”
노인의 아내가 분노가 치미는지 이를 갈며 화를 냈다.
이에 노인은 다시 한번 음료수를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더 화나게 하는 건 그 대위라는 놈이 부대 복귀를 핑계로 나타나질 않은거야.
6개월 정도 머문다던 부대인데 무슨 얼어죽을 복귀야?
한 가정을 그렇게 처참하게 박살내놓고 그냥 가버리는 그런 개쌍놈의 새끼가 어딨어?”
“그 놈 얼굴이라도 한 번 봤어야 했는데…”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노인의 아내는 연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런데 말야…조사 중에 미처 생각 못한 게 있더라구.
애가 안보이더란 말이야. 경찰들 얘기로도 현장 조사 중에 애를 본 적이 없었다는군.
우리는 혹시나 다른 집에 애를 맡기지 않았다 싶어서 그 애를 찾아 돌아다녔지.
결국 못 찾았어..거 참………어디 멀리 친정집에 갔다가 우연히 애를 맡기고 돌아와서 변을 당한건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연고도 모르는 낯선 색시라서 우리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런 업종에 있던 색시라 돌아 갈 친정집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가슴이 아파……”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아기 얘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 순간 두 번째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기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 뒤로 저 집에서 많이들 죽었지….
자네 군수사관이라고 그랬으니 알 것 아닌가?
모두 군인들이나 그 가족들이 죽지 않았는가?”
이에 수사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사람 죽이고 살아남은 군인들은 다 사형됐다지 아마?
그런데 그 친구들이 조사 받으면서 공통적인 말을 하더라는군.
그 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더군.
그 애기가 실종된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말야.
어쩌면 그 전에 죽은 군인들도 들었을지도 모르지.
망자는 말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아마 그 색시 애기는 죽었을거야.
가까이서 죽었다면 여길 떠나지 못하는 것이고. 멀리서 죽었다면 그 애기 혼령이 지 어미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지.
생각해 보게나. 자기 어미를 죽인 사람이 군인이었고, 결과적으로 군인들만 해를 당하지 않았나?”
우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묵언의 합의를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어르신…그 애기 저희가 찾았습니다.”
내 말에 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그 색시의 아들 저희가 찾았단 말입니다.”
“그래… 죽지 않고 살아있었나? 지금 어디 있나?”
나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그리고 눈을 바닥에 깔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저….조금 전에 마루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노인의 아내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먹였다.
“아이고!! 어떡해! 어떡해! 세상에나!! 아이고…불쌍해라!!!!”
아내와 달리 노인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떡해!! 어떡해!! 지 어미 기다리다 죽었네…지 어미 죽은 줄도 모르고….세상에나!!! 아이고.. 세상에나!!!”
노인의 아내는 탄식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내 뿐만 아니라 노인의 눈시울도 촉촉히 젖어있는 듯했다.
“애를 멀리 숨길만한 시간이 없었나 보군…세상에나 그 어린 것이 얼마나 엄마를 찾았을고…”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컵에 들어있던 마지막 한 모금의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리고 빤히 우리를 쳐다보면 십여초 간 말을 아끼던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애 어떻게 할텐가?”
“저희들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저희도 오늘 밤 사건조사를 끝내야 합니다.”
“그럼 빨리 그 애를 데리고 가게.”
“어디로 말입니까?”
“지 어미의 무덤으로 말일세. 그래야 이 악몽같은 저주가 풀릴 걸세.
그 친구 시신은 부모들이 거두워갔는데, 그 색시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며 색시 시신은 거두지 않고 가버렸네.
연고가 없는지라 경찰에서 그냥 화장하려고 했는데, 우리 마을 사람들이 거두고 상을 대신 치뤄주었네.
언젠가 어미의 무덤에 장성한 아들이 찾아와주길 바랬는데…이렇게 그 때 그 어린 모습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오다니…”
노인은 눈물을 감추려는 듯 한 손으로 두 눈을 감쌌다.
“어르신….그 무덤이 어디입니까?”
“찾기는 쉬워. 약도를 그려줄테니 거기로 가게…”
노인은 작은 노트의 한 페이지를 찢어 떨리는 손으로 그 곳을 그려나갔다.
노인이 그린 약도를 보자 그 곳이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마을 외곽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대문까지 배웅 나온 노부부는 우리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 애 좀 볼 수 있나?”
“그냥, 안 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신상태가 좀…”
“어디 상처를 입었나?”
“담요에 싸여 있어서 질식사 했거나 그대로 굶어 죽은 것 같습니다.”
이에 노인의 아내가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노인은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말을 했다.
“알았네…부디 잘 묻어주게…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뒷정리는 잘 해 줄걸세.”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건현장으로 향했다.
오는 내내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우리는 대문 안으로 들어선 후 마당 한가운데 서서 잠시 동안 그 집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집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왔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마치 그 아기와 엄마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잠시 동안의 만감에 젖어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대문 밖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최상사 오랜만이야..”
우리는 고개를 획 돌려 그 낯선 목소리의 정체를 찾았다.
대문 밖에 낯선 남자 서너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수사관은 이리저리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사관이 욕설로 대답했다.
“너..이 ㅆ1발. 니가 여기에 왜 왔어?”
나는 뜬금없는 상황에 수사관에게 조용히 물었다.
“누굽니까?”
“군단 수사관 놈인데 제 동기입니다. 존나게 싸가지 없는 새끼죠. “
그들은 곧 대문 안으로 들어서더니 우리 앞에 떡 멈춰섰다.
모두 네 명이었다.
수사관 동기라는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손전등에 간접적으로 비추어진 그의 얼굴 표정은 매우 차거웠다.
그리고 뒤에 있는 세 병사의 우의 아래로 그들이 들고 있는 소총의 머리가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대위님. 저는 군단 수사관 정ㅇㅇ상사입니다.”
그는 가볍게 오른손을 눈썹 가까이 들었다 내리며 예를 표했지만 그의 말투는 매우 거만했다.
“웬 일이십니까?”
“아니 아실만한 분이 소속 사단장의 명령도 어기고 이수지역까지 벗어나서 뭐하는 짓입니까?”
“누가 그러던가요?”
“사단 헌병대 수사과장한테 전화가 와서 말이죠.
그래서 이 비오는 야밤에 찾아다니느라 고생 좀 하고 있었습니다.
이수지역 검문소에 모두 연락해 보니까, 어디 멀리까지 가신 모양입니다.
행방을 알 수가 없었는데, 혹시나 해서 여기에 왔더니 저 친구 차가 보이더군요.
몇 십분 기다렸는데 힘들었습니다.”
동기의 너무나도 오만방자한 말투가 듣기 싫었는지 수사관이 격한 어투로 말을 내뱉았다.
“그래서 ㅆ1발…니가 어쩔건데?”
군단 수사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턱을 잠시 치켜 올리며 삐죽거리는 입으로 말을 했다.
“야….다치기 싫으면 좋은 말로 할 때 호송차에 타라.”
“뭐? ㅆ1발놈아?”
수사관의 격한 언사에 군단수사관이 가소롭다는 듯 한 쪽 입술을 치켜 올렸다.
“ㅆ1발…미.친 새끼…사단 수사관 주제에 뭘 잘 났다고 욕질이야?
조용히 타면 니네 사단장한테는 입 다물거고, 만일 껄렁대면 군단에 보고해서 그냥 옷 벗게 만들어 버린다.”
“뭐 이 ㄱH새끼야!!!”
“아이 ㅆ1발… 이 자식이 말길을 못 알아듣네. 야!! 체포해!!”
군단 수사관의 한 마디에 뒤에 서 있던 소총으로 무장한 세 명의 병사가 움직임을 보였다.
“잠깐만요!!!!!!”
나는 그들을 잠시 정지시켰다.
“뭐?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여전히 그의 말투는 싸가지가 없었다.
“우리에게 한 시간만 여유를 주시오. 그리고 우리가 자진해서 부대로 복귀하겠소.”
“지금 장난하십니까?
12시가 넘어가는데 저희보고 한 시간이나 더 기다리라구요?
지금 진짜 문제는 저 친구가 아니라 대위님이십니다.
사단장 명으로 헌병대에 연금당하신 분이 부대를 벗어나 이수지역까지 이탈하시고서 지금 이게 할 말입니까?”
“급히 할 일이 있소. 한 시간만 여유를 주시오.”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그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대응했다.
“이봐요. 대위님. 사단 헌병대 수사과장이 지금 사단에 보고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괜히 당신네 헌병대장이나 수사과장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협조하십시오.
우린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냥 가시면 되는데 왜 아무 상관없는 우리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겁니까? 예?”
그런데 나는 조금 전부터 군단 수사관 뒤에 서 있는 병사 한 명의 기이한 행동이 눈에 거슬렸다.
어둠 속에서 우의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꾸 턱을 이리 저리 좌우로 채며, 뭐라고 궁시렁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 친구…왜 저래?”
나는 머리를 옆으로 살짝 눕히고, 군단 수사관 뒤에 서 있는 그 병사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대위님, 지금 뭐하는거요?”
군단 수사관은 나를 바라보며 물었지만, 잠시 후 뒤에서 들리는 낯설고 괴기스런 소리에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으히힝!! 으힝!!! 으히히히힝!! 으힝!! 으히히히힝!!!!!!!!”
괴이한 소리에 군단수사관이 뒤를 돌아봤다.
“으힝…..으힝……”
연신 아랫턱을 좌우로 채던 병사가 또다시 알 수없는 종류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어어어얼..거어어어얼…”
“아니 이새끼 왜 이래?”
나는 즉시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그 병사를 향해 비추었다.
동그란 모양의 손전등 빛에 비추어진 그의 얼굴에 모두들 놀라 뒤로 물러섰다.
간질 환자처럼 눈은 돌아가 흰자위만 보였고, 입에서는 연신 거품을 쏟아냈다.
“총 뺏아…”
갑작스런 내 말에 군단 수사관이 되물었다.
“뭐라구요?”
“우리 모두 죽어요!! 총 뺏으라구!!!”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병사는 갑자기 목을 이리저리 꺽더니 우리를 향해 미소지었다.
“어라? 정신이 돌아왔네.”
군단 수사관은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안돼!!! 총 뺏으라구!!!”
나는 잽싸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군단수사관이 나를 몸으로 막더니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허…대위님, 이거 왜 이러실까? 어디로 튀실려고? 꼼짝하지 마쇼.”
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야! ㅆ1발 우리 다 죽는다고!!!!”
나의 미.친 듯한 행동에 나를 붙잡고 있던 군단 수사관이 소리쳤다.
“야!! 뭐해? 이 사람 붙잡아!!”
양쪽의 두 병사가 재빨리 다가와 나의 양 팔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철커덕!!!!!”
소총의 장전소리에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모두들 나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천천히 돌려 그 병사를 바라보았다.
빗소리 외에는 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와함게 연신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그 병사의 우의가 막대로 걷어올려지듯이 천천히 올라갔다.
걷어올려지는 우의의 끝자락의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시선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우의가 걷어올려지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를 향하고 있는 소총의 총구였다.
총알이 빠를까? 내 몸이 빠를까?
순간 말도 안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 모두들 굳어버린 자세를 풀지 못했다.
“너…ㅆ1발…새끼… 뭐하는거야?”
나를 붙잡고 고개를 뒤로 돌린 채 그를 바라보던 군단 수사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그 병사는 갑자기 모든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오금이 저렸다.
전에 몇 번 금속성 물질이 내 몸을 관통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한 적이 있다.
대포 구멍처럼 확대되어 보이는 나를 향한 총구를 보는 순간, 그 게 미.친 상상이었음을 느꼈다.
갑자기 그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워버리더니 병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아……”
“뭐..뭐라고?”
그리고 그 병사는 무슨 결심을 한 듯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마지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군바리 새끼들…다 죽여버리겠어…”
“안돼!!!!!!!!!!!”
“탕!! 탕!!”
두 발의 총성과 함께 그 병사를 바라보고 있던 세 사람이 뒤엉켰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어둠과 폭우와 소름끼치는 공포속에 우리는 서로 뒤엉켜 있었다.
그 병사가 흥건한 흙바닥에 넘어진 것을 확인 한 군단 수사관이, 그에게 달려들어 총을 뺏고 무자비한 주먹질을 얼굴에 퍼부었다.
“이 ㄱH새끼! 미.친 새끼!!”
몇 차례의 주먹을 허용한 후 그 병사가 실신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병사의 움직임이 없자 군단 수사관은 헉헉대면서 오른 주먹을 높이 쳐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넘어진 자세로 그 병사의 다리를 잡고 있던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앞에 넘어져 있던 수사관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껄떡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미.친 병사를 향해 수사관이 소리치며 달려든 것이다.
손전등에 비추자 그의 주변으로 원형의 피바다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수사관님!!!!!!”
“야!! 최상사!!!!!!!!”
군단 수사관과 나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의를 벗겨내자 그의 왼쪽 복부 아래에서 피가 토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발사된 총탄 두 발 중에 한 발을 맞은 것이다.
“뭐해!! 새끼들아!! 의무대 연락해!!!!!!!!!”
군단 수사관의 외침에 무슨 해괴한 상황이 벌어진 건지 감도 못 잡고 안절부절 하던 남은 두 병사가 대문밖으로 뛰었다.
“야!! 최상사!!!!!!! 정신차려!!!!!!!!!”
“지혈시켜야 돼요!!”
이 말과 함께 나는 우의를 벗어제끼고 이빨로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품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건서류가 바닥에 떨어져 물속에 잠겨 젖어가고 있었다.
서류는 흙탕물 속에 파묻혀 훼손되어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의 피가 새어나는 왼쪽 하복부에 찢긴 우의를 접어서 덧대고 그 위에 길게 찢긴 우의로 하복부를 감아 돌렸다.
그 순간 부릅 뜬 눈을 유지한 채, 숨을 껄떡이던 수사관이 천천히 오른팔을 움직여 뭔가를 들어올렸다.
소나타 차량 열쇠였다.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나는 금방 알수 있었다.
나는 그의 손과 열쇠를 동시에 움켜쥐고 조용히 열쇠를 뺏아 들었다.
“죽지마요…꼭 다시 만납시다.”
이에 옆에 있던 군단 수사관이 부릅 뜬 눈으로 노려보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뭐하는거요?”
이에 나는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닥치고 있어요.”
나는 천천히 일어서 아기 시체가 있는 작은 방으로 뛰었다.
나의 무서운 기세에 주눅이 들었는지 군단 수사관이 더 이상 나를 제지하지 못했다.
작은 방 구석에 놓인 아기 시체를 싸고 있는 담요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 시체가 담긴 담요를 들고 빗속을 뛰었다.
그리고 노인이 그려 준 약도를 따라 나는 차를 몰고 미.친 듯이 달렸다.
억수같이 퍼붓는 비가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내가 먼저 저 세상 사람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10분 여를 미.친 듯이 달려 나는 아기 엄마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야산 입구에 도착했다.
간혹 내려치는 번갯불에 조명탄이 터진 듯 야산 전체가 환하게 밝혀졌다.
우의도 없는 상태로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야전삽 하나를 든 채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구까지는 오기에는 수월했지만, 산 속 100여미터를 올라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거의 물반 흙반이라고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땅이 질퍽거렸다.
몇 차례 미끄러짐을 반복하며, 나는 아기 엄마가 있는 무덤으로 거의 기듯이 올라갔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맞추어 빗물이 내 입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침인지 빗물인지 입 속에서 쏟아지는 분비물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드디어 노인이 말 한 그 곳에 도착했다.
정말로 비석 하나 없이 동그란 낮은 봉분 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관리가 있었는지 주변엔 잡초나 나무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아기가 담긴 담요를 오른팔로 감아 안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 무덤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깊은 밤, 산속에 비까지 내리고, 어느 이름 모를 여자의 무덤 앞에 지금 나는 서 있다.
그 무엇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끌고 왔는지 기억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를 이 자리에 세우기 위해 그 수많은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수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나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어느 정도 잡스러운 생각들이 정리되자,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20년 넘게 내려 온 이 피비린내나는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아이요….”
그녀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눈물을 거두고 이 아이를 데려가시오.”
나는 아기를 조용히 내려놓고 봉분 옆을 야전삽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빗물을 먹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흙이 쉽게 파헤쳐졌다.
어느 정도 적당한 깊이가 되었다고 판단이 서자, 나는 아기가 든 담요를 들고 와 그 구덩이 속으로 가만히 내려놓았다.
물끄러미 몇 초간, 검은 미이라가 되서 어미 품으로 돌아온 아기를 쳐다 보았다.
“이젠 엄마하고 편히 잠들거라.”
야전삽이 아닌 두 손으로 정성스레 흙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내 주변을 너무나도 작은 아기 울음 소리가 맴돌았다.
“응애…응애….응애…”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흙을 채워나갔다.
이젠 이 소름끼치도록 지겨운 환청과 이별하고 싶다.
두려움 때문인지, 서러움 때문인지, 이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이유 모를 눈물이 내 두눈에서 쏟아졌다.
흙을 다 채운 나는 천천히 일어서 그녀의 무덤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조용히 흙으로 범벅이 된 오른손을 들어 그녀에게 예를 갖추었다.
마음이 정리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기엄마의 배려인가……이젠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야전삽과 손전등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미끄러운 산을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기보다 더 힘들었다.
수없이 넘어짐을 반복한 후 나는 산을 내려왔다.
온 몸에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차를 다시 사건현장으로 몰았다.
멀리서 의무대 응급차량이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 집 대문앞에 도착하자 군단 수사관과 남은 병사 두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없이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최상사..어떻게 되었소?”
나는 마지막 퀴즈 문제의 정답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괜찮소…”
그제서야 내 온 몸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면서 너무나도 무거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서시오. 이제 갑시다.”
군단 수사관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를 잠시 올려다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흥….이제 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군 수사관이 총에 맞았소…큰 바람이 불거요. 그런데 아까 대위님이 들고 뛴 것이 뭐요?”
“20여년 전에….이 곳에서 죽은 아기라오…”
“아기?”
사단 헌병대로 돌아온 나는 피의자처럼 유치장에 감금당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 나를 감시하던 병장을 달고 있는 헌병이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조용히 내 밀며 헌병이 말을 걸었다.
“조금 있다가 사단본부에 들러야 하십니다.”
“그래?”
“식사를 마치시고 정복으로 갈아 입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장님이 그러래?”
“군검찰에서 대위님을 소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단장님 면담이 끝난 후 바로 가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밤 동안 대위님 정복을 세탁하고 다림질해놨습니다.”
사단 본부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나는 사단장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 할지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
사단장실에 들어섰을 때 이미 몇 개의 담배를 피워댔는지 실내가 연기로 자욱했다.
나의 경례에도 사단장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점이 눈에 하나 들어왔다.
어느 기관에서 호출 명령을 받았는지, 사단장이 전투복이 아닌 정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왜 내 명령을 어겼나?”
사단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럴만큼 그 사건이 가치가 있었나?”
“………”
“이젠 나조차 감당할 수 없을만큼 사건이 커져버린 것 같아. 군인에 의해 민간인이 죽고, 어제는 군 수사관이 총에 맞고…”
“면목이 없습니다.”
“같은 집에서 20여년 동안 1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어….옛날 같으면 감추고도 남았을 일인데..
세상이 변했다네….더 이상 감출 것이 없어..”
“………..?”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최중사 사건을 전면 재조사 하겠다더군….그러면 20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다 파헤쳐질거야….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말야….”
이번 두 사건이 그의 진급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서일까?
사단장의 미세한 손 떨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명색이 사단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일로 손을 떨 정도인가?
사단장이 이렇게 형편없는 새가슴을 한 장성이었단 말인가?
사단장은 자신의 진급 외에는 그 무엇도 관심조차 베풀 자비도 없는 사람인가?
그리고…………
수사관이 비밀스럽게 조사한 자료의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어젯밤 그 서류는 흙탕물 속에 잠겨, 엄천난 빗줄기 때문에 물에 풀어지듯 사라졌을텐데…
나의 이런 의문에 사단장은 답이 될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 아기는 잘 묻었나?”
“네?”
“군단 수사관이 그러더군…..아기를 하나 묻고 오더라고…”
“그런데 사건 서류의 내용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제서야 사단장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소름끼치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호..혹시? 20년 전 그 대위?”
사단장은 음흉스런 미소를 풀지 않았다.
“미소만 지어도 알아차리다니 대단하구만.
그래…아기를 찾아내 어미 무덤까지 가서 묻어 주었겠지? 그 정도면 모든 걸 알았을거라 생각했네.”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는 내 허리 뒤의 두 손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에게 따로 사건 조사를 맡기셨던 거군요….
관할 경찰서나 헌병대에서 어떤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은셨던 겁니다.”
사단장은 입을 굳게 한 번 다물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그 동안 20여년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대략적으로나마 듣고 있었지.
젊은 날의 한 때 불장난으로 인해 지금 이 때까지 나는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려 왔네.
다시는 이 곳으로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이 곳에 사단장으로 부임해 올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내가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길 바랬는데 결국 최중사 사건이 터졌으니…
어떤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솔직히 두려웠지.
그렇다고 헌병대에 세세한 상황까지 캐묻고 다니는 건 무리였어.
국방 장관에까지 보고된 사건에 내가 자꾸 관여하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았거든.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 든다는 느낌을 주지 않겠나?
그래서 자네를 내 대리로 이용한 걸세.
그런데 헌병대 조사가 끝났는데도 자네가 더 사건을 파헤치려고 하는거야.
그냥 둘 수가 없었어.
조금만 있으면 진급시즌이 다가오고 나는 이번 진급이 결정되면 여기를 떠날 상황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진급은 커녕 현재 보직도 유지할 수 있을 지 걱정이야.
새벽에 사건 보고를 받고 그 현장에 직접 갔었지.
난 20여년 만에 돌아와, 나의 경솔한 언행 때문에 일어난 그 참혹한 사건의 현장에 서 있던 내 심정이 어떠했겠나.
늦었지만 그들에게 마음 속으로 조용히 사죄를 했지….”
사단장은 들고 있던 담배를 재털이에 짓이겼다.
나는 웬지 모를 분노감이 치밀었다.
“정말로 죄책감이 드십니까? 진심으로 사죄를 하셨습니까?”
사단장은 대답을 거부한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 정복 모자를 갖추어 쓰고, 뚜벅뚜벅 문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열려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서 뒤돌아보며 나에게 물었다.
“아참….군검찰로 소환되면 어디까지 얘기할텐가? 내 얘기를 할텐가?”
“…….”
“내 얘기를 하든 안하든 사건조사에는 큰 영향이 없을 텐데…단지 나에게 도덕적인 책임만 물을거야.
내가 총질을 한 건 아니거든”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터질 듯한 분노와 증오가 밀려왔다.
“필요하다 판단이 되면 진실을 밝힐 것입니다.”
“훗……도대체 왜 자네는 안전한 길을 놔두고 자꾸 이런 위험을 자초하나?”
나는 열중쉬어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등 뒤에서 들리는 사단장의 말에 대답을 했다.
“사관생도 훈에 보면 ‘귀관이 정의를 행함에 있어 닥쳐오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가?’ 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따를 뿐입니다.”
“훗…그렇군.”
한 번 가소로운 듯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사단장은 말을 이었다.
“…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사단장은 조용히 문을 열고 빠져 나갔다.
사단장실을 빠져 나왔을 때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헌병대 호송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병으로 보이는 친구가 차량 옆에 서서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게 어제밤 일로 끝난 것 같았는데, 이 편치 않은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순간 내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진동을 알렸다.
“네?”
“대위님…최상사입니다.”
“수사관님!!!”
기쁨의 함박 웃음을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수사관님?”
“크크…살아있으니까 전화질 하는거 아니오?”
“수사관님…미안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그런 말 마쇼.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후회는 없소.”
“그런데 웬 전화이십니까?”
“그냥 그 애기 잘 묻어줬나 궁금해서 말이죠….”
“네..잘 묻어주고 왔습니다.”
“이제 모든 게 끝난건가요?”
“저….그게 말입니다…”
나는 찝찝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정말로 아기 영혼이 우리를 다치게 한 걸까요?”
“그게 무슨 말이오?”
“아기가 아니라 그 애 아빠의 영혼이 우리를 괴롭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애는 단지 이런 살육을 막기 위해 울음소리로 우리에게 알린 거라면?”
“설..설마요…”
“예전에 죽은 소대장이 밤마다 가위에 눌렸을 때, 피범벅이 된 무장한 군인이 나타났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어젯밤 아기를 들어내는 작업할 때 제가 목격한 것도, 얼굴이 온통 피로 덮여있는 낮선 남자였습니다.
귀신 씌인 병사가 한 말 기억나요? 군바리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기가 어떻게 군바리라는 말을 알죠?”
“대위님…..”
불현 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위님……듣고 계시나요?”
나의 대답이 없자, 수사관이 아픈 몸으로 힘겹게 불러댔다.
“대위님…듣고 있어요?”
나는 온 몸이 오그라드는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어제 그 병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였죠?”
“예?”
“어제 총을 쏜 그 병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
“군바리 새끼들 다 죽여버린다고 그랬잖아요.”
“그..그거 말고, 바로 전에 말….”
“음….뭐더라…아…..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지 않는댔나?”
동시에 나는 조금 전 사단장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그런다고 모든게 끝나지 않아….”
나는 그 자리에 휴대폰을 떨구고 말았다.
사단본부 주변으로 보이는 드넓은 산악지형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헤어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숲속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