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 한 선생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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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pd수첩을 보고 있느냐는 거였다.

보장된 진로를 걷어찬 채 선생을 하겠다고,

전국에서 단 한 명의 교사를 뽑는다면

그게 내가 되면 될 일이라며

부모님의 만류를 뒤로 하고 호기롭게 들어선 길이었다.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는 게

너무 가치 있어 보여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출근길에 차에 치여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무렵, 처음 면직을 생각했다.

-엄마, 쉽지가 않다. 우리 반 애가 또 도둑질을 했다.

근데 부모가 연락이 안 돼.

부모가 연락을 안 받으면 난 아무것도 못해.

엄마는 아마 출근하기가 싫고, 피곤하고,

면상을 맞대는 인간마다 신물이 나는 게

돈 버는 일의 숙명인데 뭐 어쩌겠니 하셨겠지,

-그래도 보람이 있잖아, 방학도 있잖아,

연금도 나오겠지. 아마도 나오지 않겠니.

엄마는

산산조각 난 사금파리 더미에서도

보석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 못 미치는 딸이라

산산조각 난 꿈이 서러울 뿐인 게 문제였다.

그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

밤 아홉 시는 아주 상징적인 시간이다.

반드시, 지금 당장 이야기해야만 할

어떤 것을 내포한다.

-미친 것들 아니냐,

저럴 거면 학교는 왜 보낸다니,

집에서 감싸고 키우지.

엄마는 보기 드물게 분통을 터뜨리셨다.

엄마, 내가 힘들다고 얘기했잖아.

말주변이 너무 없었나?

불안이 너무 높아서

삶 내내 극도의 안정을 추구해 온 딸이,

마침내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며

내질렀던 그 모든 절규는 순간의 투정이었나,

어스름이었나, 안개였나, 그 무엇도 아니었나.

엄마는 그제야 말씀하셨다.

-전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알아봐.

그리고 덧붙이셨다.

-그냥 애들 비위 맞춰주면서 지내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 말에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와 함께 비로소 부모님의 이해를 얻었다.

이 카드는 이직 욕구가 습관처럼 치밀 때

유용하게 쓰일 거다.

출근을 앞둔 날이면

가끔 잠이 오지 않아 시간을 질겅질겅 씹는다.

그때 자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수능을 망쳤더라면.

다른 꿈을 가졌더라면.

그때 그 수많은 은사님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어찌하지 못할 때까지 곱씹다가

그 모든 가정을 뭉개고

짓이겨 퉤 뱉어낸 후에야 겨우 잠이 든다.

뱉어낸 시간 속에는 열정 넘치던 시절도 있다.

한때는 방과 후에 모든 아이들과 돌아가며 상담을 했다.

하루종일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하교하는 몇몇 아이들이 눈에 밟힌 탓이었다.

학교 생활에 힘든 점은 없는지,

요즘은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수업은 잘 알아듣고 있는지,

요즘 최애는 누구이고

그때 일기에 썼던 그 앨범은 무사히 잘 샀는지,

뭐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옆 반 선생님은 내 개인상담 활동을

‘긁어 부스럼’이라고 정의하셨다.

그렇게 판을 깔아주면

문제가 안 될 것도 문제가 된다는 거였다.

어느 날은 교직원 회의에 조금 늦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선배 선생님들의 말씀에 나는,

아, 아직 구구단을 못 하는 아이가 있어서

남겨서 좀 시켰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때 손사래를 치며

“아유, 남기지 말고 그냥 바로바로 집에 보내.

어차피 안 돼.” 하던 선생님들을 보며

한결같이 패배주의적이던 그 태도에

진절머리가 나서

나는 당신들처럼 나이 먹진 않을 거다. 하고

속으로 코웃음을 날리며

-아유, 그러고 싶은데 4학년이라

구구단 정도는 해야 할 거 같아서요.

하고 어색한 변명을 덧붙였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언제부터였나,

아이들 사진을 올려줬더니

우리 아이 표정이 안 좋다,

우리 아이 사진이 별로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부터였나,

학교에서 체험학습비를 지원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ㅆ발ㄴ이 되어버린

옆 반 선생님 소식을 들은 날부터였나.

숙제를 안 해온 딸을 나무랐다는 이유로

1교시부터 쫓아와

“너 몇 살이야, 너 애 낳아봤어?” 하며

학교를 뒤집어놓던

그 학부모를 봤을 때부터였나,

욕을 한 아이를 교실에 남겨 지도한 죄로

아동학대범이 된 선생님의 한숨을 들은 날부터였나,

교과서를 챙겨가야 한다고 미리 안내했음에도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애 아빠가 화가 났다,

학교 쫓아가려던 걸 말렸다,

교무실로 전화하려다 참았다”라고

나에게 선심을 써주던

그 학부모와의 통화부터였나.

선생님, 우리 애가 오늘 늦을 거 같은데,

숙제를 못해가는데, 준비물을 못 가져가는데,

어쨌든 혼날 짓을 하긴 했는데

혼내지 말아 주세요.

하는 문자가 익숙해질 무렵이었나,

생활통지표에 모든 부정적인 피드백이

금지되다시피 해서

‘말대꾸를 하며 대드는’ 아이를 두고

‘자기주장이 확고하다’며 글짓기를 할 때부터였나,

‘노력요함’이라는 표현은

민원의 소지가 있으니

다른 표현으로 고쳐보자는 게

회의 안건으로 올라오던 날이었나,

그럼에도 나는 교원평가라는 명목 하에

익명에 가려진 막말을 받아내야 하던 때부터였나.

나는 깎이고 깎이다가

드디어 이 모든 일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했다.

교육활동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난 스무 명이 동시에

활짝 웃는 사진을 찍을 재주가 없으니까.

함박눈이 오지만,

이제 운동장에서 눈사람은 만들지 않는다.

교육과정에도 없고,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기본기가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남겨서 지도하지 않는다.

누구도 원하지 않으니까.

일기도 쓰지 말아야 한다.

일기를 읽고 댓글을 써 주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지만

그건 사생활 침해니까.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랄 수 없고,

혼자 남겨서 지도를 해도 안 되며,

반성문은 어림도 없고,

교과시간에 잠시 붙잡고 있어도 안된다니,

그냥 두자.

틀렸다고 사선을 쫙 그으면

아이의 자존감이 무너진다니까 별표로 해볼까?

그럼 좀 낫나.

근데. 틀린 걸. 틀렸다고 하지.

도대체 어쩌란 거지?

때로 솟구치는 의문과 분노를 잠재우면서

난 정해진 수업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생이 되기로 했다.

모든 게 함정수사의 구덩이 같은 이 지옥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세상은 나를 사명감 없는 선생이라고

혀를 끌끌 차겠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 선생의 본분이다.

나에게는 교과서를 찢고

친구를 때리고

수업시간에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규칙을 어기는 아이를

칭찬만으로 교육할 능력이 없으니까.

내 모든 말과 행동은

잠재적으로 학대가 될 수 있는데

나에겐 아이들을 ‘학대’하며

지도할 권한이 없으니까.

나는 없는 권한을 쥐고 사명감을 불태울 만큼

용감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으니까.

그러나 이토록 무심한 담임의 교실은

우습게도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간다.

계절마다의 특별한 과외 활동이나

매일 수다를 떨듯 이어가던 일기 검사,

하교 후에 제티 한 잔을 타 주면서

나누던 학교생활 상담,

남아서 머리를 싸맨 채

보충학습지를 푼 아이에게

마이쭈 하나 건네주며

“다른 친구들한텐 비밀이야!” 할 때

빙그레 웃는 학생의 모습같이

내가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거의 모든 이유가 사라졌지만

처참하게도 나는 충실한 선생으로 기능하고 있다.

여전히 철마다,

우리는 교직의 고점을 잡았어.

누칼협이라잖니.

투자를 잘못한 거지, 하는

케케묵은 농담이나 하면서.

킬킬대면서.

해답도 열정도 없이 그럭저럭 산다.

이렇게나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가끔은

선생님 교실은

어쩜 몇 년째 별 탈이 없냐며 칭찬도 듣는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은 학부모를 만날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권한도,

아무 보호막도 없으면서

겨우 ‘학부모 세금이나 받아먹고사는’ 주제에

감히 교육을 꿈꾸는 교사는

언젠가 추락할지도 모르겠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더 해주겠다고,

뭐 얼마나 엄청난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아이들을 주렁주렁 열기구에 태우고 오르는 교사는

어쩌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아프게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내 얘기는 아닐 거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아무 문제도 없는 선생이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