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태어나 돈에 집착하며 살다가 만난 천사 같은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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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고

큰형과 작은 형과는 각각 12살 10살씩 차이가 나

10살 때 까진 집이 어느정도 괜찮았다. 부족함은 없었음

그래서 그런지 큰형은 대학 다니다가 성적 개판이었는지

다시 공부한다면서 학교 자퇴하고

서울에 부모님이 얻어주신 조온나 좋은 원룸에서 알바 한번도 안하고 놀았어

공부할때 알바 겸하면 공부에 집중 못한다고 찡찡거리니까 부모님이 보내주심

천국이지 돈 안벌고 서울 생활하면서 놀거 다 놀수 있으니까.

그걸 본 작은형도 혹 했는지 자기도 공부한다면서 올라가서 딩가딩가 놀았다.

그 후엔 상황이 감 잡히지? 올라가서 몇 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식 둘에 대한 원망은

나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올랐고

어머니는 그래도 자식새끼 위에 가있는데 어떻게 인연을 끊냐며 적금까지 깨가며

몰래 돈을 보내주시고 우울증 약을 드셨고 말도 없어지셨다.

아버지는 허구한 날 술 마시고 오셔서 자식새끼들 다 소용 없다고 집안 물건을 던졌고

어머니한테 자식 교육을 그따위로 시키니까 이렇게 됐지 너랑 나랑 만난 게 잘못이다 등등

자고 있는 날 술에 취해 흔들어 깨워 너만이라도 잘 돼야 된다 안 그럼 우리는 진짜 죽는다 라고 했고

어머니도 그 아무것도 모르는 청소년기 애를 잡고 눈물을 흘리시는 게 부지기수였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집안은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졌고 형들은 존1나 싸가지 없게 돈 안 보내주니까

엄마아빠가 우리들한테 투자 안해서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연락 끊음 미친놈들이야.

그 후 한두 달 있다가 아버지 사업 부도나서 집도 넘어가서 계속 이사다녔다.

집안이 저러니까 학창시절 집에 가기가 너무 싫었음

그래서 일부러 독서실에서 12시까지 더 공부하고

1시간 정도 집 주위 공원에 앉아있다가 다 잠들었을 때쯤 들어갔다.

그때부터 좀 빡치는 일 있으면 공원이나 고요한 절에 가서 몇 시간이고 진정될 때까지 앉아있는 버릇이 생겼음

나도 부모도 지쳐가는 와중에 내가 고1때 였을거다 토요일이었어

아버지는 화나셔서 아침부터 썩을 놈의 집구석이라면서 현관문을 쾅 닫고 어디론가 나가셨고

난 학교에서 자습하고 집에 도착했는데 분명 사람이 있는데 쎄한 느낌 있지?

나도 뭐라 표현이 안 되는데 여하튼 뭔가 느낌이 너무 불안해서 엄마? 엄마?하고 불렀다?

근데 대답이 없어 그러다가 안방에서 걸걸걸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이게 뭔가 하고 문을 열었는데

어머니가 약 한 움큼 드셨는지 입에서 거품 비슷한 게 나온 채로 약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더라

그 순간에 어머니를 업은 채로 병원 가는 길에 내가 스스로가 무서워질 만큼 울지도 않고 엄청 침착해졌어

‘성인 되자마자 무조건 이 집을 떠난다 나라도 살아야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안그래도 과묵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난 진짜 하루에 한마디 할까말까해서 입에 단내가 났다.

사방에 벽을 쌓고 나 혼자 살았어.

(그 와중에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은 아직까지 만나는데 걔들은 날 음지에서 끄집어 내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어 고마워 병1신들아 죽을 때까지 갚음)

그러다가 내가 어떠한 취미를 가지게 됐는데 이 취미를 배우고 싶고 이 일을 하고 싶어졌어

너무 재밌었어 아니면 내 어깨에 짊어져있는 짐에 대한 도피처로 삼았는지도 몰라.

근데 이일과 관련된 학과를 가려면 학원이 거의 필수적이더라

더럽게 비싸 그 당시에 50만원 했어 물품 값 제외하고 순수 학원비만 말이야..

집안이 그 꼬락서니인데 내가 학원 다니고 싶단 소릴 할 수 있겠어?

그래서 뭐 어떻게 해 이론만 독학했어

고2가 되었을 땐 어머니와 아버지는 마침내 이혼하셨지.

난 여전히 아버지에게 시달렸어

술 마시고 오면 아버지는 분노에 차서 술병을 집어던지시고 그랬거든

난 고등학생 내내 전교에서 열손가락을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내가 마음을 닫아 버린 건지 아버지가 닫혀버린 건지 나의 진로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없었고

내 성적엔 관심도 없었어

아버지는 죄도 없는 날보고 자식들 땜에 내 인생 망가졌다 어떻게 보상할꺼냐고 날 타박했고

나보고 20살 되면 그냥 돈 벌러 가라고 하셨지

너까지 책임질 돈 없다고 했어

자식 꼴도 보기 싫다고 시.발 자기가 술먹고 왔으면서 2시쯤에 와서 자는 날 밖에 내쫓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면 다음 날 학교는 가야하니까 책가방 들고 공원에 밤새도록 앉아있다가 학교 가고 그랬음.

근데 난 내가 꿈꾼 일을 하고 싶었어 그리고 수능을 쳤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지

합격은 무조건 하는거였고 담임한테 사정 말하고 그대로 서울로 가출했지

옷 몇 벌 들고 핸드폰도 없애고 말이야

남들 학교 가기 전에 운동도 하고 술도 먹고 클럽도 가보고 그럴 때 서울 생활을 시작했어

말이 생활이지 노숙생활이었지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었고 고속버스타고 서울오니까

4만 원밖에 없었거든 아는 사람도 전무했었고 뭘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어

하루는 찜질방에서 자고 하루는 짐 들고 그냥 공원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밤을 새우고 그랬지

배도 진짜 고팠는데 언제 일이 구해질지 모르니까 돈 아끼려고 식빵 사서 물통에 물채워서 먹고 그랬다.

난 진짜 뭐같이 비싼 등록금과

등록금 만큼 비싼 창렬 그 자체인 과와 관련된 물품을 사기 위해서 일을 시작해야 했고

사투리가 심했는데 일은 의외로 쉽게 구해졌어 알고보니 개같은 곳이었지만.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고

카페 뒤쪽이 유흥가였는데 끝나자마자 거기서 새벽 4시 마감 때까지 술집 알바를 했어

내가 일한 곳 중에 저 카페가 제일 씨1발 같았어.

욕을 싫어하는데 욕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사장님은 천사였는데 점장이 여자를 미친 듯이 밝혔어 알바들한테 치근덕 대고 그랬다

내가 일하고 알바 애들이 나랑 친하게 지내려고 하니까 날 겁나게 눈치 줬어

12시간 일하는데 식비가 두번 나오거든?

10시엔 그 새끼 안 나와서 삼각김밥 두 개 먹을 수 있었는데

2시부터 누나 둘이 나왔단 말이야 그러면 나 밥 못 먹게 했고 말도 못하게 했음

그럼 묻는말에 대답도 안할까? 한번도 내가 먼저 말 건적 없었는데 시1불놈

뒤에 가서 그냥 오후 식비 챙겨서 다 끝나고 먹어라 이딴 개소리 지껄였다고 끝나고 바로 일가야 하는데..

그래놓고 다같이 밥 먹을 거 시킬 때

누나들이 너 안 먹느냐고 그러면 쟤는 배불러서 안 먹는데 이럼

배고파 숨질 것 같은데 뭔 배가 불러

그래서 일부러 일할 때 화장실 한 번도 안 가고 참았다가 출근하면서

샌드위치 1400원짜리인가 사뒀던 거 유니폼 안에 숨겨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우걱우걱 먹었다.

어쩌다가 번호 달라고 하는 손님 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다 거절했는데도

뒤에서 그새끼가 넌 여자 꼬시려고 일하냐 이래서 가출한 애는 받아주면 안되는건데 이딴 개같은 소리했음.

이 새끼 땜에 20살 되자마자 하나 깨우친 게 있다

사회에는 악질 or 오지라퍼가 많아서 최대한 내 약점을 숨겨야하고

내 약점이 한사람한테 알려졌다고 생각하면 벌써 두세단계 번져나가서 10명이알고 20명이 알게 된다는거.

악질은 내 약점을 물고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그걸로 날 괴롭히고

오지라퍼는 걱정하는 척 하면서 OO가 그렇게 힘들었대

참 불쌍하다 아냐? 이러면서 동네방네 다소문냄

둘다 상종할 인간들이 아니다.

내가 주급으로 받았거든 그러면 이틀에 한번 씩 찜질방 가서 잤는데 그것도 돈이 많이 깨지더라

그땐 여인숙이 뭔지도 몰랐음 ㅎㅎ

짐 내버려 두고 여러 번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술집 사장한테 마감 청소다 하고 나서

잠시만 얘기하자고 하고 부엌에서 무릎 꿇고 내 사정을 얘기하니까

진작 얘기하지 라면서 가게에서 자도 된다고 했지

그러면 4시부터 한 6시반까지 두 시간 반 정도 자고

보일러 틀고 씻으면 혼날까봐

주방에서 얼어 죽을꺼 같은데 찬물로 씻고 다시 출근하고 그랬어.

후에 돈 좀 모은 다음엔 고시원에 들어갔는데 창문도 없었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썼지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에 감사했지

그리고 난 이때쯤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걸 알았다.

세상이 참 좁은게,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어떤 아저씨랑 오셨더라 원망도 했지만 웃으시는거 보니까 반갑더라

부산에 살던 어머니가 왜 서울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재혼이든 또는 연인이었겠지

내가 주문을 받으면서 엄마랑 눈을 마주쳤다?

근데 날 보고 흠칫 놀라더니 아저씨를 붙잡고 나가 버렸어.

난 내가 연락을 끊어버려서 어머니가 연락을 못하신 줄 알았는데

그냥 날 버린거였지.

너무 상처받아서 혹시 아버지는 날 찾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그날 저녁에 서울 올라오고 처음으로

고3 담임선생님께 전화드렸고 난 물어봤지

혹시 아버지가 저 찾지 않던가요? 라는데 선생님이 대답을 못하시더라

더 들을 것도 없어서 건강히 지내세요 하고 끊어버렸어.

아 그리고 입학 한 이틀 전에 학교 근처로 일하는 곳 다 옮겼다.

그 후 학교 입학한 부터는 이것저것 살게 많으니까 돈이 모자라서 고시원을 나오게 됐고

1학년 도중에 다시 오갈 곳 없는 놈이 된거야

공부할 책들 들어가 있는 큰 책가방 하나랑

장비 가방이라고 칭하고 세면도구랑 장비랑 내 옷 몇 벌 없는 거 넣은 가방 이걸 두 개 들고 학교생활했음

그러다가 사정을 아신 어떤 교수님이

학교 바로 앞 자기 원룸에 짐 내버려 두고 같이 생활하자고 하셨어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아서 그걸로 나중에 국밥이나 한 그릇 사달라고 하셨지

근데 그 당시에는 그게 너무 싫었어

난 왜 이런 동정 받으면서 살아야 하느냐는 생각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짐만 놓고 가겠다 잠자는 곳은 있다면서 센척하며 거절했어

아침 6시부터 우리 과 작업실 쓸 수 있었거든?

그럼 그때부터 학교 가서 아침 거르고 점심은 샌드위치 먹고 수업하고

작업실 밤 11시~12시까지 쓸 수 있었는데

남들 학기 초라 친해지려고 술 먹고 놀 때 난 그 늦은 시간까지 작업실 안에서 박혀있었지.

작업실은 1명~2명 들어갈 수 있는 방인데

거기서 배운 거 복습도 하고 (원래 그런 공간이 아니야)

밥 대신 샌드위치 먹어가며 작업도 하고 그랬지

내 집 같이 생활했나봐

그리고 작업실 문 닫으면 학교에서 좀 더 나가면 술집이 줄줄이 있었고

그중에 호프집에서 거기 마감할 때까지 (손님 많으면 4시 적으면 3시 반) 일했어

힘들지 않느냐 할 텐데 난 빨리 일하러 가고 싶었어

남들이 안주 남긴 거 내가 버리는 척 하면서 먹을 수 있었어

남들이 침을 튀겼든 포크로 난잡하게 난도질 해놨든 난 맛있었어

그래서 그런지 난 지금도 치킨 보면 울컥해서 치킨 못 먹음

여하튼 잘 곳이 없었고 잘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서

가게 정리 다하고 가게 의자에 누워서 두세 시간 자다가

일어나서 6시쯤에 다시 학교 가고

입학전에 한 그 생활과 거의 흡사하지만 돈을 모아가고 있었기에 참았지

노잼일까 봐 걱정된다 이제 여자 얘기 나옴

그 당시에 나는 악에 받쳐있어서 말도 안 하고 공부만 미치도록 하고 술자리 일절 못나갔어

소심하면서 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싸가지 없었어

날 까는게 들리면 앞에 가서 조곤조곤 화 냄

주먹질은 안 했어 물어줄 돈이 없었음

딱 뒤에서 뒷담화 하기 좋은 대상이지.

특히나 우리 과는 돈 많은 집 자제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악질들이 있었어 걔들한테 참 무시를 많이 당했지

뭐 아르바이트하면서도 많이 당했고 말이야

일하는 호프집에 과에 동기들이 와서

야 너도 좀 술도 먹고 그래라 아등바등 살아서 뭐 하냐

그런다고 안 달라져 이딴 말 하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놨고

알바 사장도 그렇게 살면 결국에 너만 지친다 내가 취업자리 알아봐 주겠다

꿈도 입에 풀칠하고 나서야 있는 거다 이런 말을 종종 했어

난 힘들게 살았어도 학창시절부터 항상 되뇌던 말이 있었어

27살전에 성공할 것이고 결혼할 것이고 아버지가 될 것이다.

어머니 거품 무는거 보고 그날 저녁에 일기에 적었던데 나도 왜 27살인 진 모르겠어

젊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나봐

빨리 성공하고 싶었으니까 28살 아재들 ㅈㅅ

아마 좀 불우한 가정환경이었기에 하루 빨리 정착해서 가족애란걸 느끼고 싶었나봐

그런 생활이 이어나가던 중 동기들한테 좀 심한 얘기를 들었어

들을만했던 게 1학년 초기에 난 정말 x도 모르는 병1신이었어

애들이 어떤 어려운 말 하면 난 뭔 소린 지도 몰랐고

몇 년을 준비한 애와 그냥 성적으로 대갈 박치기해서

들어온 나랑은 비교가 안됐지

그날 어떤 자유주제로 작업한 걸 서로 토론하는 시간이었어

교수님이 잠시 나가셨는데 동기 애들이 내껄 보면서

‘돈 없어서 새벽 내내 아르바이트할 거면 어디 공장이나 가서 입에 풀칠이나 하지 왜 학교 다니는지 모르겠다’

쟤랑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쪽팔린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보니 안타깝다’ 라면서 비웃고

‘쟤는 표정도 없고 눈만 보면 독만 차 있는 것 같다

‘집안 환경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실력도 없으면서 왜 다니는지 모르겠다 ‘

‘쟤 벙어리 아니냐고 출석할 때 빼곤 말을 안 하더라”

이런 얘길 소근 소곤거리는데 다 들렸지.

씨1발 다 기억해

누가 어떤 표정으로 말했는지 헉 혹시 내 얘긴가 찔리는 너 그래 너 얘기임 새1끼들아

평생 니들은 그렇게 남 약점 가지고 놀아라 난 성공한다.

이 얘길 듣고 수업 끝나고 물품 살게 있어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부모에 대한 원망, 사람들 말대로 쥐뿔도 없는 게 잘되려고 발버둥 치다가 끝나는 거 아닐까?

주말되면 나도 고향 내려가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도 먹고 싶고

대학생활 재밌다 가족들한테 말하고 싶었고

스스로가 불쌍하다 라는 생각들이 들면서

몸에 힘이 풀리더니 주저앉아지더라 참으려고 했는데도 꼭 꼬맹이 우는 것처럼 끄어엉 울었어.

목소린 굵으니까 곰 같았을듯

울화를 토해낸다는 게 어떤 뜻인지 이때 이해했음

그때 그 사람이 일으켜줬어

그 사람은 우리 과 인건 알지만 이름도 몰랐었어

한두 달 전에 레드벨벳 처음 알았는데

얘가 아이린 8 이휘재 부인2 정도로 아이린이랑 정말 닮았어

두달전엔가 얘가 데뷔한 줄 알고 식겁해서 검색해보니 이름이 다르더라

지금도 같이 다니면 사람들이 어 아닌가 맞는 거 같은데 이러던데

이사람은 단발임 중발이라해야하나 여튼 좀 짧고 더 이쁘다

여튼 남자들이 딱 좋아하게 청초하게 예뻐서 남자들이 드글드글거렸어

여왕벌을 넘어 여왕개미 수준이었음

학식 먹으러가면 얘는 친구들이랑 먹고 싶어 하는데

선배 남자들이 식판 들고 다 붙었고

얘가 수업할때면 지나가던 선배들이 꼭 아는 척 할려고 들어와서 얘기하고 가고 그랬어

그러면 착해서 다 받아주는데 철벽이었음

여하튼 진짜 너무 예쁘고 인기많은 그 사람이 날 일으켜 주는 거야

그 당시에 맛이 가버렸는지

난 그 사람을 꼭 엄마 품 그리워하는 아이처럼 진짜 내 온 힘을 다해서 꽉 안았고

근데 그 사람도 처음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날 그냥 안아주더라?

내 엄마는 나에게 상처만 줬는데 난생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게 엄마가 아닐까 엄마가 주는 안락함일까 란 걸 느꼈어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안았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눈 퉁퉁 불고 콧물 훌쩍이면서 쪽팔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그 자리를 도망쳤어

여하튼 다음날이 됐는데 이 사람이 자꾸 수업 쉬는 시간에도 그렇고 나한테 말을 걸어

쪽팔려 죽겠는데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난 자꾸 무시했고

수업 끝나자마자 후다닥 짐 챙겨서 작업실 갔는데도

또 따라들어와 내가 어제 미쳤었나 보다 죄송하다 저랑 있으면 괜히 안 좋은 소리 듣는다 좀 따라오지 마라 이래도

그 사람은 그러든가 말든가 1~2명 들어갈 수 있는 작업실에 의자를 들고 따라와서

내가 작업하는 동안 계속 옆에 있고 노래 틀고 노래하고 그랬어

(노래는 진짜 말도 못할정도로 못부른다. 얼굴만 이쁨)

먹을 거 가져와서 옆에서 먹고 자기 수업 끝나면 다시 또 와서 옆에서 공부하고

내가 수업 있을땐 이사람이 먼저 자리 잡아놓고 이걸 한 1주일을 반복하는 거야

처음에는 모든 말을 다 무시했다가 어 그래 몰라 싫어 시간 없어 이 정도까진 말하게 된 거 같아.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겠지만 어딜 가던 차갑고 말 없고 여자 관심 없다고 소문났던 나인데.

딱 까놓고 옆에서 청초 존예가 “밥 먹으러 가자,” “노래 좋다 아냐?”

“나 노래 잘하는 거 같아 아이돌이나 할 걸”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거야?”

“그때 왜 안았어?” 이러면서 재잘재잘 떠들어봐 마음 안 움직임?

그래도 예쁜 애가 이럴 리가 없다 동정으로 이러는 거다

만약 마음이 있다고 그래도

지금 나한테 연애는 너무나 사치 다라며 혼자 김칫국 시원하게 한 사발 하고

성공하고 생각하자 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어

그리고 그날도 난 작업실에 박혀있는데

역시나 얘가 의자 들고 와서 내 옆에 앉더니

한 시간 정도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 속으로 얘도 이제 지쳤나 보다 하는데

갑자기 난 좋다 이러더라

아무 생각 없이 난 뭐가 라고 했고 또 자기 노래 취향 얘기하는 줄 알았지

그리고 그 사람이 “너” 라고 했어

내가 좋대 눈에 악만 남고 진짜 차갑게 생기고 말도 없어서 누구도 친해지기 싫어하는 날 말이야

이때 진짜 누가 머리통을 오함마로 내려치는 줄 띵하니 어지럽고 심장은 두근거리구 얼굴은 시뻘개졌어

지금 생각하면 찐따같은데 원래 사랑은 찐따같은거 아니겠어?

손이 벌벌벌 떨리면서 ‘ 나도’ 라고 대답했어

성공 후 연애 이딴 다짐 같은 건 개뿔 존예가 그러니까

그딴 거 없고 엉엉! 사귈래여 이렇게 됨 그렇게 우린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고

그사람은 다른 자기 나이 또래 여자들과 좀 많이 달랐어

차분했고, 찡찡대는것도 없었고, sns는 불필요하다고 전혀 하지 않았어, 술 자리를 싫어했고

예뻐서였는지 남자들이 번호 따려고 용을 썼지만 한 번도 주지 않았어. 책임감도 강하고

여자들은 이야기 하는 것 좋아하는데 이 사람은 입이 무겁고 말을 가려서 했지.

알고 나서 얘기지만 나처럼 이 사람도 사람한테 받은 상처가 많았기에 노출되는걸 좀 극도로 꺼려했던거.

사귀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어

사귀고 얼마 안 있어서 모은 돈으로 원룸을 구했다는 거? 그리고 그 사람이랑 같이 동거한 거?

말이 동거지 진짜 잠만 잤음

내가 아침 7시에 나가서 새벽 4시에 들어오고 그랬으니까

진짜 잠 말이야 너네가 생각하는 잠자리말고

작업실에 있을 땐 그 사람이 옆에 항상 있었고

호프집에선 그 사람이 피곤하지 않은 날이면 2인석에서

내가 일하는 걸 지켜보다가 꾸벅꾸벅 졸면 집에 가서 자라고 하면 그제서야 자러 갔고

주말에 카페에서 종일 일할 때도 딴 여자한테 번호 따이는거 감시한다면서

바로 정면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할 일 하고 공부하고 그랬지

그 사람은 하루에 한 번은 꼭 서툴지만

학식 대신 밥을 해줬고 같이 먹었어 나중엔 잘하더라 주부9단임

그리고 내가 일 끝나고 한밤중에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자다가도 눈도 못 뜬 채로 왔냐고

누운채로 바바리맨처럼 덮고 있던 이불을 쫙 펼친 다음에 OO! 들어와! 라고 했고

난 그 사람이랑 장말 더 이상 꽉 안을 수 없을 만큼 서로 안으면서 잠들었지

정말 꽉 안으면 그 사람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그 사람한테 안겨 있으면 세상이 포근했고 그 사람 향기도 너무 좋았어.

너무 피곤하고 지쳐도 그사람 품에 있으면 치유되는 것 같았지.

이때 난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꿈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르고

나쁜 길로 들어섰을지 몰라 카페알바하면 호빠 삐끼들이

힘들게 이런 일하지 말고 새벽에만 잠시 일하고 돈 빡세게 벌라고도 꼬셨고

술집 여사장이 한달에 내 월급만큼 용돈줄테니까 지 애인하라고도 했어 물론 그 소리 듣자마자 옮겼지만

근데 난 이 사람한테 떳떳하고 싶어서 한 번도 눈을 안 돌렸어.

존재 그 자체로 고마운 사람이야

그사람과의 사랑은 격정적인 사랑은 아니었어

느긋한 행복이라는 표현이 맞으려나

그 사람과 한 시간에 한마디 할까 말까 할 정도로 둘 다 말이 없지만

눈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거든

연인보다 부부 같았지.

안 믿기겠지만 이 사람과 만나면서 우린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고

난 지금까지도 언성조차 높인 적도 없어

야 라고도 안 해봤다. 야 라는 말을 내가 좀 싫어해

사랑하는 사람한테 자기야는 못해줘도 야 가 뭐야 ..

그리 길게 만나면서 싸우지 않은 이유로는 신뢰가 단 1%도 끊어진 적이 없어.

서로가 저 사람이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나? 이런 걸 느낀 적이 없고

세상이 날 욕해도 내 옆에 있어줄 것 같았어.

저렇게 확신이 있으니 다른 연인들처럼 막 사랑을 굳이 확인을 안 해도 됐고 건강한 연애를 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사람이 나에게 참 많은 양보를 했기에 가능했어.

그는 어떤 말도 미동도 없이 해가 지도록 안아줬다.

그는 세상이 무너져도 날 지켜줄 것이다.

난 그와 결혼한다.

너무 피곤했는지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헛구역질이 계속 나왔다

친구들은 과음해서 토를 하는데 나는 일한다고 헛구역질을 한다 왜 사나 싶고 포기하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비밀번호를 치고 억지로 3층까지 계단 하나하나씩 올라간다.

그러면 그녀가 자다가도 눈 못 뜬 채로 일어나 날 맞이해준다.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 사람은 전혀 변함이 없다.

후다닥 씻고 자려고 그 사람 품에 안기면 그녀가 묻는다

오늘 손님은 많았는지 자기보다 예쁜 사람은 없었는지 어지러운 건 괜찮은지

아 난 이 사람 때문에 버티고 살아가고 있구나

무조건 이 사람과 결혼한다. 성공해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준다.

위에껀 그사람 일기 밑에껀 내 일기야

원래 그가 아니라 그이인데 그러면 그사람 너무 아지매 같아 보일까 봐 바꿈

개1자식한테 그 사람이 나랑 결혼 얘기 한 것처럼 우린 20대 초반 첫사랑인데도 심심치 않게 결혼 얘기를 했어

결혼식을 어떻게 하고 애를 몇 명 낳고 뭐 이런 얘기 있잖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이 사람이랑 결혼할 같다가 아니라

한다 였어 우리도 일기장 서로 바꿔보고 놀람

근데 그런 행복을 꿈꾸기엔 내 상황이 너무 암울했어

너무 작아졌고 스스로 이 행복이 언제 끝날까 무서웠지

그렇기에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더 일에 매달리고 공부에 매달렸던 것 같아

글 보면서 느꼈겠지만 말이야

그 사람과 온전히 있는 시간이 일 끝나고 잘 때, 아침, 휴무 밖에 없었어

그 휴무도 한 달에 한 번 쓸까 말 까였는데

휴무 중에 70~80%는 집에서 진짜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자기만 했어.

방학 때도 8시에 나가서 4시에 들어왔거든 그 중간에 공부시간엔 작업실 가고

내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니 특별한 데이트가 아예 없었어

날 생각해서였는지 어쩌다가 나가서 먹는 날이면 항상 김밥천국우동,찌개류,노량진쪽에 쌀국수 이것만 먹었어

당연히 어디 여행 가는 건 꿈도 못 꿨지.

그래도 너무 미안하고 이 사람한테 뭘 해주고 싶어서 이 사람이랑 나랑 윤종신 진짜 좋아하거든

그때 학업 관련된 물품 살게 있는데

그딴 거 조1까 담에 산다 라고하고 콘서트 간 거랑

두 달에 한 번 정도 영화관 간 거밖에 없어

영화비도 너무 비싸서 웬만하면 집에서 보고 그랬어

더 미치게 만드는 건 그렇게 모자란 나인데도

이 사람은 서운해하는 티를 안 내는 거야

그리 길게 만나는데도 항상 변함이 없었어

예쁘고 맘씨 착한 여자 만나서 좋겠네 자랑질 ㄴㄴ 라고 하겠지만

정말 사랑하는데 남들과 비교해서 뭘 해줄 수가 없을 때 그게 얼마나 비참한지 겪어본 사람 아니면 모를 거야

그 사람이 욕심을 해탈한 빡빡머리 비구니도 아니고서야

얘도 20대인데 왜 남자친구랑 고기도 썰어보고 싶고

커플옷 커플링 같은 거 안 하고 싶겠어

여름이면 비키니 입고 물놀이도 가고 싶고 다 하고 싶을 거 아냐

그러다가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어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 사람 슬퍼하는 거 보기 싫어서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면 말하자 이런 생각이었어.

그래서 고향 내려간다고 뻥 침 고향 가도 반겨줄 사람 없는데

근데 눈치 없는 친구 병1신 하나가 이 사람한테 말한 거야

그래서 수술 다하고 병원에 한 3일째 누워있는데

그 사람이 달려왔나 봐 머리카락 개털처럼 삐죽삐죽 삐져나와있고 헉헉 거리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어

넌 왜 나한테 기댈 생각을 안 하느냐고

난 도대체 너한테 뭐냐고 내가 기대야 자기도 기댈 수 있지 좀 기대라고

널 보면 불쌍해죽겠다고 라고 병실에 누워있는 나한테 빼애액 소리를 지르더라

그리고 날 붙잡고 울더라고

그 사람이 처음 화냈고 소리 지르는 것도 처음 들었어

난 놀라서 토끼눈 돼버렸고 같은 병실 쓰던 아재들도 놀래셨지..

옆에서 잔다는 그 사람 보고 혼자 있어도 된다고 다른 사람들 불편하니까 집에 가서 자라고 보냈지

그 사람 보내고 나니까 아재들이 젊은 친구들이 뜨거운 사랑한다고 부럽다며 퇴원할 때까지 놀렸어

이일을 계기로 이 사람은 너무나도 혼자사는 방법 밖에 몰랐던 나한테

조금은 지쳤던 것 같아

그렇게 좀 시간이 꽤 지났고 내 생일날이었어

그 사람이 휴무 내라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만나서 오랜만에 카페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눈이 촉촉해지면서 정말 진지하게 묻더라고

“우리 앞으로 더 오래 만날 거잖아 일하는 곳 말고 밝은 데서 너랑 있고 싶다

아니면 주말 아르바이트를 종일 말고 아침에만 해라

저녁엔 둘이 있자 ”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왜 그 사람이 저런 얘기를 했냐면

저 시기부터 서서히 몸이 맛탱이가 가버리기 시작했거든

삐이이이이 거리는 원인불명에 이명이 생겼고

2주에 한 번씩은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고 나중엔 돈 아까워서 집에서 누워있었지

그럼 그 사람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울먹거리면서 내 팔다리만 주물러주는 거야

일주일 중에 4~5일이 코피가 질질 났고

그것도 일하는 와중에 나면 그 사람이 안 봐서 상관없는데 꼭 일 끝나고

새벽 5시쯤에 잘 자다가 피가 질질 나니까 이 사람은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던 거지

헌데 위에도 적었다시피 사고나서 돈 계산이 잘 안 맞아졌어

병원비 땜에 모아왔던 돈이 헉하고 나가버렸고

물품 땜에 돈 쓸 일도 좀 있었어

그래서 내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되느냐고 지금은 힘들 것 같다니까

얘가 울면서 뛰쳐나감 나도 쫓아가니까 그 예쁜 애가 눈이 벌게져서

진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더 묻는다며

‘네 시간을 나한테 좀 투자해 아니 처음으로 부탁할게 나 좋으면 주말에 오후든 오전이든 아르바이트하지 마

내가 물품비 절반 줄게 나중에 잘 돼서 갚아 ‘라고했는데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쉬어라는 거겠지 걱정되니까 하지만 난 쉴 수 없었어

그때 내가 한 발짝 양보하고 알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한데

여자친구는 그 사람 많은 거리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뺨을 후려쳤고

처음으로 나한테 십 원짜리 욕에 더해서

넌 여자 만나지 말라고 평생 일이나 하다가 혼자 늙어 죽어라고 했지

거기서 난 달래줄 수가 없었고 그 얘기에 반박할 수도 없었어

결국 난 뒤돌아섰고 그렇게 헤어졌지

이 글쓴이 븅1신새끼 달래줬어야지 개노답 빼애애액 할 수도 있는데

그 당시엔 난 진짜 하루가 모자랐어

오죽했으면 2~3시간 자면서 살았겠냐

돈이 많이 드는 학과를 택한 내탓도 있고

성공에 미쳤다고 욕해도 돼 빨리 성공해서 이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 당시에 내가 아니면 함부로 평가 안 해줬으면 좋겠어

아마 그래도 여성분들은 욕할 거 같은데 ㅇㅇ.. 걍 욕해라

정말 헤어지고 나서 힘들었어 뭘 하던 그 사람 생각에 멍 때리면서 살고 그랬다.

하루하루가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진짜 이러다가 죽지 않을까 했어 그래도

이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버텨지더라

그리고 수년이 흘러갔고 난 여전히 하루에 3시간~4시간 정도 자면서

남들이 봤을 땐 미쳤다 싶을 정도로 일이랑 공부에 몰두했고

당연히 건강은 더 안 좋아졌어

교통사고 난 허리 때문에 진통제도 매일 몸에 들이붓고 통증이 심해서 복대 차고 다녔어

위궤양도 걸리고 이명은 더 심해졌고 피로가 한도 이상으로 쌓여서였는지

폐결핵도 걸려서 3주정도 입원도 했다

그래도 하루도 온전하게 안 쉬었어

병원에 입원해서도 노트북 가져가서

4시간씩이라도 내가 해야 할 거 해서 같이 일하는 형한테 보내주고 그랬지

결핵 때문인지 아직도 종종 목에 비린내 나고

가래 낀 거 같아서 기침하면 각혈함. 손수건 들고 댕겨야해

내가 그 사람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조금이라도 더 자 그러다 큰일 나’ 이 말인데

서울로 올라오고부터 잠자는 게 진짜 무서웠어

여느 대학생들처럼 6~7시간 자면 난 항상 밑바닥에서

진짜 알바만 하다가 늙어 죽을 것 같았어

그니까 그게 어느 순간에 강박으로 되더라고

퇴근할 때든 출근할 때든 너무 피곤해서 헛구역질이 나오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야 심적으로 안정이 왔어.

그게 내 몸을 망친 거지

하늘이 보기에도 간절했을까 건강은 정말 나빠졌는데 반해

그동안 작업물들이 급작스럽게 인정받아서 이리저리 불려 다녔고

어린 나이에 감당이 안될 정도로 기회도 엄청 생겼어

힘들 땐 그렇게 꼬여가며 괴롭히던 삶이 풀릴 때는 꼭 마술같이 샤샤샥 하고 풀려버리더라

한스럽더라고 그사람 만날 때 이렇게 좀 풀리지 싶은 마음에..

알바는 다 때려치웠고 이쪽 바닥에선 꽤나 명성도 얻었어 그러니까 돈은 따라서 오더라고,

이쪽 업계 특성상 부가 집중돼있어

상위 한 10%만 뚫어 버리면 벌이가 들쑥날쑥 하긴 해도

제일 적게 버는 게 웬만한 직장인 정도거든.

잘 풀리고 나서도 그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 트라우마로 박혀버렸는지

어떻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몇몇 있어서 연애할 기회가 꽤나 많았는데 다 거절했어

거의 3년을.

그 사람 같은 사람이 없더라 그 사람은 날 항상 편안하게 해줬는데

어쩌다 연결된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니 말에 진실이 없고 애 같고 동생 같은 느낌?

딱 까놓고 얘기하면 그사람말고 내옆에 누가있는게 상상이 안됐어

그 나이때에 그사람만큼 이쁜데 참하고 어른스러운 사람 없어 단연코

그렇다고 다시 만나자고 할 용긴 없었어 너무 못 해줬다 보니까 다시 만나곤 싶어도 참았고

그냥 제발 제발 내가 조금 덜 행복해도 되니까

그 사람 행복했으면 좋겠더라고

근데 진짜 이랬음 그리고 지금도 그래

아니 잘 됐으면 다시 만나면 되지 왜 안 만남? 이라는 댓글을 봤는데

만나고싶단 생각보다 죄책감에 못 만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너희들이 꼬2추달고 전에 저렇게 못 해줬어 봐

주로 여자들이 욕하는데 특히 가난했던 남자들은 이해할 거다 내 편 들어줘

시간이 더욱 지났고 건강이 어느정도는 괜찮아졌어

그래서 운동도 시작했고 몸도 좋아졌음

그러다가 최근에 짝사랑에 빠지게 됐어 웃긴 건 뭔지 알아?

그 사람 얼굴이 좀 희미했거든 아니 기억하기 싫었던 거였을지도 몰라.

난 몰랐는데 컴퓨터 정리하면서 옛날 그 사람이랑 찍었던 사진 보니까

짝사랑하는 여자랑 자매라고 해도 믿겠더라

난 본능적으로 그 사람과 닮은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

여하튼 짝사랑을 했는데 그 대상이 남자친구가 있었어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지

대신에 마음의 변화가 생긴 거야

아 나도 다시 꽁냥꽁냥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구나

이젠 괜히 죄책감에 인연을 밀어내지 말자 오는 인연 그냥 받아들이자

나도 드디어 죄책감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거 같다고 생각을 했어

그 짝사랑도 잊고 살다가 외주 땜에 출장을 갔다?

난 우리 팀만 일하는 줄 알았어 근데 다른 한 팀도 같이 한다네

내가 같이 일하는 형한테

빼애액 그런 게 어딨어 나 다른 사람이랑 일하는 거 싫다고 막 투정 부리는데

저기 반대편에서 엄청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길래 헉 시1발 뭐지 했지

그 사람이었음

전완에 있는 잔털부터 머리털까지 쭈뼛 서더라

7시간 정도 일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얼굴 한 번도 안 마주쳤고 안 쳐다봤어

쳐다보면 내가 감당이 안될 것 같은 거야

끝나고 그쪽 팀이랑 회식을 한댔는데

난 핑계 대고 차 타고 집에 와버렸어 내 진심과는 반대로 도망친 거지

솔직히 그 사람 다시 얼굴을 마주하기가 무서웠어

내가 너무 못해줬으니까 그 사람을 통해서 정말 힘들어했던 생각하기 싫은 과거가 생각나더라고

집에 와서 나 혼자 심란해서 노래 틀어놓고 누워있는데

그 사람이 카톡으로 다짜고짜 욕하는 거야

너 왜 나보고도 모른척했냐 죄졌냐고 그동안 연락한 거 왜 다 씹었냐고

넌 어떻게 한 번을 안 잡냐고 쉴 새 없이 카톡을 보내더라

이걸 보는데 아 얘도 나만큼 힘들었구나 그런 생각에 좋기도 하면서 착잡하기도 하고 묘했다.

그동안 그 사람이 2년 정도는 연락을 해오긴 했어

자기 일 오픈할 때도 3번이나 친구 통해서 초대했는데 다 안 갔고

어쩌다가 전화 오는 거 문자 오는 거 다 씹었어

왜냐면 난 얘를 생각하면 내 과거가 떠올라

정말 부족하고 처절하고 미안한 성공에 미쳐서 사랑하는 사람 위해 양보 하나 못할 만큼 괴로웠던 과거가

그녀가 트라우마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벗어나려고 무던히 노력했지

그리고 거의 벗어났어 근데 마주쳐버린 거야

이번엔 얼굴을 마주쳤기 때문에 카톡 씹기는 그래서 얘기를 하다가 서로 격해졌어

위에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럼 아직까지 내가 그 죄책감 가지고

너라는 사람한테 갇혀서 바보처럼 지내길 원했냐고 그런 걸 원한 거냐고 하니까

그렇대 진짜 나락으로 갔으면 좋았을 건데 너무 잘 지내서 화가 난대

그러다가 전화가 오더라고 오래간만에 보는 번호였지만 기억하고 있었지

받을까 말까 하다가 그 몇 십초 동안 수만 번을 고민하다가 받았어

받았더니 혀 꼬인 소리로 미친 듯이 날 욕하면서 주소를 부르래

싫다고 했더니 어차피 너 말 안 해줘도 내 친구들 통해서 알 수 있을 거래

등신 같은 내 친구들은 알려줄게 뻔하기 때문에 알려줬고

다 제쳐두고 일단 보고 싶었음 병1신같다

조금 있으니까 그 사람은 술도 못 먹는데 술 만취 상태로 집에 왔어

그렇게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문 열라고 빼애액 하는 게 스크린에 보이는데 여전히 이쁘더라

오자마자 그 사람은 울기 시작했고 날 엄청 때렸어

진심으로 개쌔게 맞았어

여하튼 날 엄청 원망하고 있더라고 얘기가 서로 접점이 없어서 우는 거 달래고

조곤조곤 그 사람에게 다음에 얘기하자고

너 연락하면 이번엔 안 씹을 테니까 주말이든 연락해라고 했지

취해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데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때 정말 여전히 너무 예뻐서 안아버리고 싶었어

그래도 정신 차리고 차 운전해서 집에 데려다주는데도 얘가 빡이 덜 풀렸는지 자다 깨서 운전하는

내 온몸을 꼬집고 팔물고 하이힐 벗어서 허벅지 찍고 그랬음..

집 앞에 내려주니까 비밀번호 치다가 비틀거리면서 돌아오더니

요즘에도 코피 쏟고 다니냐고 묻는데

날 걱정하는 그 눈을 보니 꼭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지.

집에 와서 몸이 아프길래 보니까 찝혔던데는 피나는 곳도 있고 멍들고 허벅지는 찍혀서 상처가 나있더라

참 그거 보면서 몸도 마음도 아팠어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는데 이 일 겪고 나니까 일이 안되는 거야

나한텐 정말 지우고 싶은 그 과거였는데 그 사람은 지우기 싫은?

뭔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이딴 말 같은데

내가 잘못해준 거고 나발이고

다시 같이 있고 싶더라고 그 품 안에서 잠들고 싶고 그 사람 꽉 안고 싶어졌어

자고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고

서로 다른 의견이 상충되니까 머리가 터질 거 같았지.

도저히 일이 안되길래 먼저 퇴근하고 공원 가서 머리 식히려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는데 카톡이 왔어

‘어제 정신은 헤롱헤롱해도 내가 그냥 뱉은 말이 아니다 너도나도 힘들었던 거 아는데 너도 자리 잡고

나도 자리 잡았잖아’ 라고 왔고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이제 너라는 사람에게서도 과거에서도 좀 벗어나고싶다
충분히 힘들었다’ 라고 카톡을 답장을 했고

그 사람은 나에게 이기적인 새끼라는 답을 남기고 연락이 오지 않다가

새벽에 다시 카톡이 왔어 이때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만나서 진짜 깔끔하게 얘기하고 끝내자고

어차피 그 다음날 우리 둘 각자 팀은 서로 만나서 일했어야 했기 때문에 난 알았다고 했지

그리고 정말 많이 생각했고 결론을 내렸어.

이 여자는 과거의 사랑이고,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나고, 기억하기 싫은 트라우마다

이젠 좀 털어내고 싶었고, 흔들려왔던 건 워낙 못해줬기에 애틋한 감정으로 인해서 온 거다

미안한 감정으로 만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이 사람한테도 상처가 될 거야.

단단히 마음 먹었지.

다음날 일하러 이제 출근하는데 안 좋은 쪽으로 너무 떨리는 거야

내가 과연 모질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최대한 상처를 안 줄까?

혹시 다시 만날 수는 없을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저녁 8시쯤에 일이 끝났어

이날은 차를 안 가지고 가서 퇴근 후에 회식 가자는 거 따로 볼일 있다고 하고 여자친구 차로 갔지

처음에 차 타고 안전벨트 매는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

나도 마음 단단히 먹었으니까 할 말 있으면 해

그러면서 옛날 얘기를 먼저 꺼내는 거야

뭐 정말 자잘한 것 있잖아

이터널선샤인 몇십 번 본 얘기 그 사람이 밥하고 있으면 내가 뒤에서

껌딱지처럼 안고 있던 거나 등 소소한 추억들

나도 그때 참 좋았는데 한편으론 기억하기가 무섭다고 했더니

“난 조금 부족했어도 그 시절이 너무 그립고 좋은데 너에겐 기억하기 싫은 과거야?

라고 말하더라

여기서 말대꾸하면 저번처럼 하이힐로 두들겨 맞을까 봐 입 다물고 있었어.

공원에 도착해서 걷자 라고 하길래 주인한테 혼나는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져서 쫄래쫄래 따라 감

걸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 사람이 ‘만난 시간만큼 헤어진 시간이 길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자기도 정신 차리려고 엄청 노력을 하다가 세월이 지나 무뎌져가는데

자리 잡은 나의 모습을 보니까 이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다’ 하더라

그리곤 대답을 원하는지 날 쳐다보더라고 그 당시엔 어떤 말을 해도 이 사람이 울 거 같았어.

아무 대답못하고 한참을 계속 걸었어 그러다가

마음먹고 말했지

“너무 힘들어했던 날 보듬어주면서 사랑이 아닌 연민이었던 것 아니냐

나 역시도 그 당시에 너무 외로웠기에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너랑 만나면서 너한테 못해주고 공부랑 일에만 미쳤던 것

너한테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

나에게 너무 트라우마로 자리 잡혔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너를 통해 보인다 죄책감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제발 서로 이제 놓아주고 다른 인연을 찾자

정말 미안하다.

나를 평생 욕해도 되고 지금 이 순간부터 잊어버려도 된다. “

라고 그 사람에게 엄청나게 상처 주는 말을 해버렸어

그리고 그 사람은 난 괜찮았는데 뭘 죄책감 가지느냐며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고

꼭 옛날에 헤어졌을 때가 오버랩되더라

그때처럼 난 보듬어주지도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했지

난 그사람한테 그때나 지금이나 너 달래주지도 못한다

그냥 진짜 나쁜놈 만났다고 생각해라 하고

뒤돌아서서 가는데 여자친구가 눈물범벅에 화장다 번진 얼굴을 내 팔에 묻으면서

알겠으니까 어떤 말인지 이해했으니까

자기 차까지만 예전처럼 걸어만 가자고 했고 미련한 나는 알겠다고 했어

읽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왜 이토록 날 잡으려는지 이해가 안될 것도 같은데

우린 서로에게 너무 깊숙한 곳까지 엮여있었어

너무 닮았었거든 이 표현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는데 그사람이 나였고 내가 그사람이었어.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컸고 그래서 사람을 절대 안 믿는 것

남에게 속 얘기 절대로 안 하는 것 속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강한 척 괜찮은 척 하는 것

만나는 동안 편모 가정에 외동인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난 엄마에게 버림받고 연락 안 하던 아버진 돌아가셨지

우린 둘 다 세상에 가족 하나 없이 혼자였어

그런 우린 서로에게 가족이자 연인이고 스승이었어.

내가 모질게 밀어내도 그게 진심이 아닌 걸 그 사람은 알았던 거야

돌아와서 차에 그사람을 태우고 갈게 라는 말과 함께 뒤돌아서 갈려는데

나 분명 차 문을 닫았었거든?

근데 울음소리가 미세하게 들리더라 차를 개똥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원래 안 들려야 되잖아

차에서 들리려면 소리를 질러야 들릴까 말까 알 텐데

그 절규 비슷한 소리 때문인지

아직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는지 미치도록 돌아보고 싶었어

달래서 집에 보낼까 이 생각도 하다가 그래도 난 못 들은 척 하고 뒤돌아가버렸지

그렇게 수년간 그 사람과의 질긴 인연이 끝났어.

그사람과 그렇게 끝이 나고 혹여라도 연락이 올까 해서 카톡도 원래대로 없앴고 번호도 바꿨어

그날 이후로 거의 뭐 내가 나 자신이 아니었지

그 사람 속해있는 팀이랑 일이 앞으로도 4번 정도인가 남았다더라고

매주 그 사람을 보라고? 사람 미치는 거지

그래서 같이 일하는 형보고 나 소처럼 한눈 안팔고 진짜 열심히 일해왔고 한 번도 안 쉬었잖아

외주 갈 때 난 빼라고 나 대신 다른 친구 소개해줄 테니까 제발 그냥 왜 그런지 묻지도 말고

그냥 빼달라고 했어

나 아니면 안 된다 그러면 돈도 물어줄 테니까

그 형이 내 얘기 듣고 원래 일본에 출장이 며칠 후 였는데 일본 쪽 클라랑 얘기해서 3일 정도를 빨리 갔어

꽤나 많은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친 거야

다시 보면 나 울고불고 그 사람한테 매달릴 거 같았거든

그래서 도망치듯이 일본으로 출장을 갔어

내가 그렇게 맛이 가버린 걸 직원들이랑 형은 처음 봤는지 계속 내 눈치를 보더라고

아무 일 아니니까 일하자 하고 일 다 끝났는데

내가 술을 진짜 싫어해

어쩌다가 회식해도 3잔 정도 먹고 그만 먹거든

근데 술이 없으니까 일 끝나고 숙소에 누워있는데

감당이 안 되더라 미칠 것 같았어

지금 당장 일이고 나발이고 비행기 타고 바로 그 사람한테 가고 싶었어

그래서 형이랑 직원들이 술 마시고 있는데 가서 뭔 술인지도 모르고 그냥 병째로 한 병 꿀꺽꿀꺽 마셨고

그다음 기억이 없는데 동영상을 찍었더라고

다 큰 놈이 눈물 훌쩍이면서 으아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 소리만 반복하더라 겁나 추했어

그리고 일본에서 일이 끝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행사 참여할게 있어서 일본에 더 남아있어야 했고

사실 내가 행사 참여했어야 하는데 도저히 웃으면서 행사를 참여할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몇 달 전부터 오고 갔던 취업 얘기를 하러 조금 일찍 유럽으로 갔어

여하튼 간에 그곳은 생각보다 날 많이 원하고 있었어 얘기가 3~4일은 될 줄 알았는데

가자마자 포트폴리오 앞에 10분만 듣더니 정리하는 대로 빨리 오래

내가 일하는 직종이 그 나라에선 굉장히 대우가 좋더라고 (그나라에선 전문직이라서 그런가봐)

한국에선 수입이 편차가 진짜 컸거든

여긴 딱 그 중간치보다 10%정도 높은 임금을 줄 수 있대

세금이 좀 과하긴 한데 그만큼 내가 받는 거니까 복지도 좋고

거기다가 일과 관련해서 더 깊은 공부까지 도와준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야

5시 반 칼 퇴근에 주말엔 온전한 휴일 제공이래 X발 내 인생에 휴일이라니

정말 좋은 기회라서 좋아해야 하는데

다시 이곳에 올 때 되면 영영 그 사람 못 보겠구나

진짜 영원히 안녕이겠구나 싶었어.

숙소에 와서도 처음 온 유럽인데 바깥 구경도 안 하고 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 사람 생각에 누워서 술만 퍼먹었지 맛있더라..

비행기를 타고 오는 하루 내내 그 사람 잡을까 말까 근데 너무 두려워 그 사람 보면 과거에 내가 보이고

정말 기억하기도 싫은 가난함이 보여 이런 생각들이 부딪히니까 잠을 한숨도 못 잤어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집에 가서 도어록 띡띡띡 누르는데 옛날 생각이 나더라

새벽 4시에 정말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을 열면 그 사람이 웃으면서 이불 펼치면서 들어와! 한거

아침이나 학식 대신에 원룸으로 날 데려와서 밥해준 거

같이 이터널선샤인,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 진짜 몇십 번 본거

내가 일하다가 쓰러졌을 때 그 사람이 눈물 흘리면서 응급실 찾아온 거

돈이 부족했을 때 몰래 자기 용돈 아껴서 내 통장에 넣어준 거

같이 결혼을 얘기한 거 등등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딨나 싶었지

내가 열심히 한눈 안 팔고 살아 온 이유가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을 내가 밀어내고 있었더라고

그 사람이 옆에 없는 난 상상이 안됐어 잡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돈을 벌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그 사람 없으면 안 된다 이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현관에 캐리어 던져놓고 차 타고 그 사람 집 기억을 더듬어서 갔다

(이때 신호위반해서 딱지 날라올듯..)

도착해서 그 사람 이름 미친 듯이 불렀어 잠시만 얘기하자고 막 부르니까

어떤 아주머니 내려오시더니 2층 아가씨 외국 갈 거라고 며칠 전에 이미 방 정리 다했대

그 얘기를 듣는데 그 사람이 걸어가면서 너 한 번만 더 밀어내면 나 못 본다 이랬거든

그 생각 나면서 머리가 띵하더라

난 욕하는 거 싫어해서 욕을 안 하는데

그때만큼은 내가 너무 병1신 같아서 진짜 육성으로 씨1발 외쳐버렸어

침착하고 그 사람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바보 같은 난 너무 급하게 나온다고 가방에다가 전화기 넣어놓고 왔나 봐

병1신 병1신이라면서 막 자책하다가

공중전화로 미친 듯이 달려가서 전화하려고 했는데

방금까지 기억나던 전화번호가 기억이 안 나 메멘토도 아니고

아마 너무 당황해서 기억이 안 났나 봐

침착하자 침착하자라면서 집에 가서 전화하면 되겠지 설마 벌써 떠났을까 하고 마음 다스리고 차 타고 가는데

만날 당시에 그 사람한테 해준 게 없는 것,

헤어질 때 그 사람 말대로 양보 한 발짝도 안한 것,

다시 나에게 다가왔을 때 정말 매몰차게 밀어낸 것 생각이 나면서

내가 병1신 같고 진짜 나 자신한테 화가 나가지고

막 괴성 지르면서 핸들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면서 갔다

진짜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는데 주차 대충 해놓고

내가 너무 한심해서 머리통 내손으로 쥐어박으면서 병1신아 병1신아 이러면서 올라갔어

너무 화가 나니까 눈물이 나더라

급하게 문을 열었는데 현관에 던져놨던 캐리어가 없어 어 뭐야 X발 도둑인가

이러는데 현관에 여자 단화가 있더라.

심장이 쾅쾅쾅 요동치고 설마 하고 안을 슥 들여다봤는데

그 사람이 앉아있었어.

딱 보자마자 머리가 하얘지더라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멍했지 이게 꿈인가 하며 얼타고 있는데

그 사람도 날 봤어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엉엉 울더라

나도 신발도 안 벗고 그대로 그 사람 무릎에 얼굴 박고 울었어

그때 깨달았지

난 그 사람에 대해 죄책감만 남았다고 스스로 를 속이며 비참했던 그 시절과 함께 이 사람을 밀어냈지만

진심은 이 사람을 정말 뼛속까지 사랑했구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구나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때 내가 좀 더 이해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나랑 결혼한다며 나 좀 밀어내지 마라 라는거야

나도 너 없이 못 산다고 내가 양보했어야 하는데 너무 미안하다고 서로 붙잡고 울었어

그렇게 우린 헤어지고 근 3년을 서로를 못 잊고 방황하다가 제자리를 찾게 됐어

진정하고 얘기 도중 그 사람 공부하러 가는 곳이 내가 일하러 갈 곳 바로 옆 나라로 가게 됐단 걸 알았지

꼭 우리 헤어지지 말라고 하늘이 도와준 것 같았음.

(근데 시.발 유럽이 너무 흉흉했음 무섭다)

서로 며칠만 어긋났다면 우린 다신 만날 일이 없었을 거야 일본 외주를 원래대로 갔다거나 행사 참석했다거나

취업 얘기가 3~4일씩 더 길어졌거나 그랬다면 말이지.

여튼 우리는 한국에서 4일 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없었어.

그래서 난 그 4일을 내가 그동안 못 해줬던 것들을 같이 하며

이 사람에게 통째로 바치기로 했어

그 시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 .

그날 당일은 그 사람이 노량진쪽에 쌀국수집 가고 싶다고 해서 먹이고

시간이 늦어서 집에서 일기장 서로 바꿔 읽어가면서 처음 만났을때부터 이야기했고

그러다가 난 그렇게 그리던 그 사람 품에서 먼저 잠들었어.

아침에 시끄러워서 일어나니까 벌써 그 사람이 밥을 차려놨더라고

밥 먹으면서 그 사람한테 뭐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니까

자기 머리하는 동안 뒤에서 봐줬으면 좋겠대

친구들이 자랑할 때마다 그게 참 부러웠다고 해

난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 못해줬거든 여자들 미용실 머리하면 오래 걸리잖아

옛날엔 난 그 시간도 아까워서 그동안 학교에서 공부했어

그래서 미용실 따라가서 그 사람이 머리 하는 3시간넘게 다른데 눈길 잠시도 안 주고

거울 통해서 그 사람 눈만 봤지 그러니까 미용사가 남자친구분이 고객님 진짜 사랑하시나 봐요 부럽다 이러는데

이 사람이 몇 년 만에 데이트라고 화장 그렇게 신경 써서 했는데

엉엉 울기 시작하더라 화장이 점점 번져서 얼굴이 엉망이 됐는데 그것마저도 예뻤음

그 모습을 보는데 과거에 이런 사소한 것조차 못해줬나 라는 생각에

나도 눈물 참는다고 이 꽉 깨물고 천장 쳐다봤지

미용실에 나오고 이 사람 코트도 한 벌 사주고 싶어서 백화점에 갔어

내가 사준다니까 돈 아끼라고 필요없다고 한참을 실랑이 벌이다가 그 사람이 알겠다고

포기하고 웃으면서 여기저기 이거 어때 저거 어때 하면서 둘러보더라고

그러다가 예쁜 아이보리색 롱 코트를 고르더라 마음에 드는지 날 돌아보면서 어때 예뻐? 라고 묻는데

정말 이쁘더라 내가 입 벌리고 바라보니 활짝 웃더라고 그 웃음 다시 볼 수 있단 거에 감사했지.

그러다가 그 사람이 점원한테 가격 물어봤는데 그 사람 생각보단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머뭇머뭇 거리더니 다른데도 보고 올게요 하는 거야

그 사람한테 선물 준거라곤 핸드폰 케이스가 깨졌길래 사준 게 다고

기념일도 못 챙겨줬어.

조그마하게 케이크라도 사가면 자기는 단거 싫어해서 필요없고

기념일 챙기는거 이해가 안간대

그나마 생일 때 그사람 좋아하는거 요리 해주고 그게 다야.

세상에 기념일 챙겨주는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딨냐

다 내 생각해서 한 말이지.

오히려 그 사람이 옷 같은 거 몰래 사서 내 원룸에 옷 걸어두고 그랬거든

그 생각이 나면서 미안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이제서야 좀 연인 같아지니까

그걸 본 그 사람도 내 눈물의 의미를 알았는지 방금 전에 화장 고쳐놓고 또 울음을 터뜨렸어

다 큰 남녀가 옷사다가 말고 엉엉 우니까

점원이 당황하면서 분위기 풀려고 그랬는지

남자친구분이 가격이 너무 비싸서 우시나보다 라고 개드립을 치더라?

그거에 뚜껑 열려서 일시1불로 샀는데 후회 중

3개월 할 걸

집에 와서 모르고 일시1불 했다는 거 말해서 미친 거 아니냐고 혼났음..

나와서 뭐하고 싶었냐니까 영화보면서 같이 맛있는거 나눠먹고 싶었다고 해

그땐 영화는 진짜 좋아했지만 표값도 비싸서

우린 각자 생수 한병씩 들고 들어간게 다였거든.

예매하고 뭐 먹고 싶냐니까 못 고르더라구 그래서 오징어 팝콘 핫도그 다 사들고 들어갔다

영화 내내 그사람 오구오구 먹는거만 지켜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되자마자 그사람 데리고 군산에 갔어

위에 썼던 것처럼 우린 같이 여행 가본 적이 없거든

해질녘 돼서 비응항 인지 비응항 인지 가서 지는 노을 바라보면서 걷는데

그때 참 왜 못 데리고 왔을까 시간을 좀 낼 걸

그러면 이리 멀리 돌아오지 않았어도 됐는데 그런 생각도 들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더라 울리기 싫고 나도 울기 싫어서 난 태양이나 강한 빛보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눈물 나면서 재채기가 나와

그래서 지는 노을 보면서 일부러 재채기해서 눈물 훔치고 그 사람 슥 봤는데

그 사람은 이미 눈물 흘리고 있었음

근처 모텔에서 자고 일어나서 한국에서 보낼 마지막 날이라서 오늘은 뭐하고 싶으냐니까

이 사람이 돌아가신 내 아버지 묘에 가자고 하더라

내가 정말 진심으로 싫다고 땡깡 부렸는데도 무조건 가야한대

그래서 거의 4시간 차를 타고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는 아버지에게 수년만에 처음 갔지.

형들이 추석 때 벌초 했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묘랑 아버지묘는 깔끔하게 정리 되있더라.

아버지가 피우셨던 거 담배 사서 묘에 꼽아드리고

(아버지가 할아버지 묘에 항상 그렇게 하셨어)

그사람이 사온 과일같은거 묘앞에 올려두고 같이 절하는데

그 사람이 아버님 제가 OO이랑 결혼할 사람이에요. 앞으로도 이 사람 옆에서 보듬어 줄게요.

너무 늦게 찾아뵈서 죄송합니다

이러는데 난 아버지 묘에서 안 울 줄 알았다

근데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들면서 진짜 내가 너무 불효 자식인것 같고

그동안에 마음속 응어리,

서울 올라와서 무시당하고 가게에서 잘때

그런 옛날생각이 복합적으로 터져서 꺽꺽거리면서 눈물나더라.

그 사람은 아무 말 안 하고 내 등에 손을 올려줬는데

이 여자는 정말 성숙한 사람이구나 란 걸 느꼈지.

그리고 1시간 정도 거리에 그 사람 어머니 모시고 있는 절이 있어서 거기 가서도 인사드렸어

그 사람은 앞에 있으니 눈물 난다면서 잠시 좀 떨어져 있고 난 인사드리면서 말했어

어머님 OO이 부족하지 않게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엥 이거 완전 울보 커플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만나는 동안 각자 여기에 쓰기 너무 길 정도로 힘든 일이 많았어.

정말 우리 둘만 아는 힘든 일들 말이야.

그 시절 그 사람에게 내가,나에게 그사람이 없었으면 우린 벌써 무너졌을 거야.

그땐 금전적,시간적으로 다 여유가 없었고 참 못해줬기에 처절하게 미안했는데

그런 나를 이해하고 대부분을 포기한 그 시절 그 사람 생각에 눈물이 났고

그 사람은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느꼈기에 다시 만나는 4일 내내 울었던 것 같아.

그 사람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 남자 저 남자 꼬셔가면서 여왕벌로 재미있게 학교 생활 할 수도 있었고

그중에 진짜 돈 많은 금수저에게 벌써 시집가서 명품 빽 들면서 호화롭게 살 수도 있었지

그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모든 걸 포기하고 나만 바라봐줬어.

정말 가진 건 악바리 근성 밖에 없던 날 말이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했던 금수저처럼은 누리게 해줄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조금씩 아껴가며 살면 그 사람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은 벌 수 있어.

정말 많은 걸 날 위해서 포기했던만큼 난 이제 그 사람에게 내 모든걸 줄꺼야.

마침내 그사람 떠날 시간이 왔어

비행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 우리가 처음 만난 지하철 내려가는 계단으로 그 사람을 데려갔고

그리고 난 그 사람에게 청혼했어.

그 사람은 이말 듣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냐며 눈물을 흘리면서 내 품에 안겼지.

그 시절부터 바래왔던 대로 우린 결혼하게 될꺼야

그 사람은 내게 트라우마가 아니었어.

그 사람이 있었기에 그 시절 이를 악물며 버틸 수 있었고

그 사람이 있어서 오늘의 내가 이만큼 성장했어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의 옆에 있을 거니까 미래를 꿈꿀 수 있지.

그 사람은 내 인생 그 자체야

다시 한번 절망 속에 있던 날 버티게 해주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 옆에 있어준 그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