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말하면 차분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뚝뚝하고 답답한 아들입니다.
얘는 첫째고 둘째도 아들인데
둘째가 딸보다도 살가운 타입이라 그런지
더 무뚝뚝하고 딱딱하게 느껴지네요.
어렸을 때부터 뭔일이 있는지도 얘기 안하고
어딜가든 다녀오든 절대 말하는 일이 없었어요.
뒤늦게 물어보면 그제서야 통보.
세월이 아주아주 지나서야 지 스스로 얘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먼저 묻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에요.
전근대적인 남자이상형.
그냥 시아버지 같아요.
남한테도, 지한테도 관심없고
자기가 뭔일을 당하던, 남이 뭔일을 당하던,
가족이 뭔일을 당하던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일관.
둔한 아이는 아닌데 자기랑 상관없다 치면
무시하는 능력은 1등급.
중학교때 따돌림 당했다는 얘기를
담임선생님께 뒤늦게 듣고 놀라서 물어보니
하는말 “어차피 반 바뀌잖아”
스타킹 촬영 했다고 곧 방송나온대서
왜 이제 얘기하냐니까 “티비로 보잖아”
며칠간 소식이 없이 집에 안 들어와서
신고하고 백방으로 찾아다녔더니
병원에서 입원중인 채로 발견.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유치원 때 이미
싼타나 유령 같은건 없다는거 안 아이이긴 했어요.
5살때 너무 말썽 피우길래
도깨비가 너 잡아간다니까 비웃으면서
“엄마 도깨비를 믿어?”
그랬던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여자를 데려오겠대요.
이전부터 여자친구 안 사겨본건 아니란걸 알긴 했지만
저놈이랑 만나면 속 터져서
번번히 차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20살 때부터 쭉 사귀었다네요.
결혼은 못하는거 아니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여자애가 무슨 죈가 싶고,
30년 가까이 산 엄마인 나도
내 새끼 속 몰라서 속탄적 많은데
요즘 세상에 어떤 여자가 쟤 데리고 참고살까
괜히 저혼자 애끓었어요.
간간히 아들한테 너 마누라한테도 그러면
이혼 정도로 안 끊날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래도 지 여자한테는 안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자식이 아닌
다른분 자식 걱정하며 밤잠 설쳤네요.
여자친구 사진을 봤는데 너무 귀엽고 예쁘장해서
더 그 아이와 그아이 부모님께 죄송했어요.
그래서 인사온날 드디어 그분을 뵙고
남편과 나의 의견은..
끼리끼리 만났더라구요.
둘 다 성격 똑같아요.
둘이 7년 사겼는데 서로 5년간 혈액형도 몰랐대요.
아들이랑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오빠라고 부르길래
왜 오빠라 하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빠른생일인걸 사귀고 몇년 후에 알았대요.
근데 입에 붙고 아들이 오빠소리 좋아해서
굳이 고치진 않았대요.
그리고 저는 이 자리에서 아들이
자기 나이 1살 어리게 말하고 다닌다는거 알았어요.
내 아들 가끔 말없어서 속터지지 않냐니까
해맑게 “오빠는 안 물어봐서 좋아요!”
정말 진짜로 궁금해서 내 아들 어디보고 만나냐고
도대체 왜 만났냐니까 성격이 잘 맞대요.
그러면서 예시 하나 들어주는데,
서로의 부모님의 직업을 최근에 알았대요.
여자친구는 아들한테
부모님이 애들 가르친다고 했는데 대학교수..
뭔가 불안해서 여자친구한테
나랑 남편 직업 뭐로 알았냐니까
남편은 그냥 핸드폰 쪽 회사원,
저는 그냥 새로운 공부하는 만학도 인줄 알았대요.
남편 전자쪽으로 유명한 대기업 임원이고
저 고등학교 교사에요.
하긴 아버지 회사 다니고
어머니는 학교 다니시며 일찍 온단식으로 말했다니까..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오빠는 따듯해서 좋대요.
내 아들이 따듯하다는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얼마전에 아들이 지 동생 학교도 모른다길래
너 같은 무심증 없을거라고 장난처럼 진심 말하니까
웃으면서 “있어~”이랬는데 진짜 있나 싶었어요.
딸 같은 며느리없고 엄마 같은 시어머니 없이
남남처럼 지내는게 최고라지만
그래도 며느리 자식처럼 아껴줄거라고 다짐했는데
정말 자식같은 분이 들어오셨어요.
딸이 없어 딸 가진 엄마 맘 모르니
나쁜 시어머니 될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아들이랑 똑같이 대할 수 있을거 같아요.
엄마 같은 시어머니가 좋을까,
이웃같은 시어머니가 좋을까,
머나먼 시어머니가 좋을까 고민했었는데
감이 잡혀요.
여자친구 가고나서 아들한테
왜 결혼 결심했냐고 물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몇년은 진짜진짜 잘해줬대요.
그 이유가 아들이 하도 가족 얘기 안하니까
부모님 안 계신 줄 알고 더 챙겨주고 따듯하게 대해줬대요.
뒤늦게 부모님 있다는거 밝히니까
굳이 안 숨겨도 된다고 위로해주더래요..
그러면저 내 여자친구는
선입견 없는 사람이라고 자랑하는데
고마우면서도 찜찜한건 제가 시어머니여서일까요..?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