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얘들아.
난 원래 좀 X신 같은 면이 있어서
뭔가에 정을 붙이면 너무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어릴 때는 몇년동안 쓰던 책상을 버릴 때
책상한테 너무 미안해하다가 쓰레기차에 들어가서
산산조각 난 책상을 바라보면서
“미안해..”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어머니한테 뒤통수 강타 당한 적도 있고 말야..
아무튼 이런 내가 군대에 갔는데
내가 일병쯤이었을 거야.
삼척에 있는 어떤 부대에 전입을 받고
몇개월있다가 해안소초로 투입되었어.
처음 해안에 들어오니까 경치가 너무 좋더라.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절경은
군부대가 점령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과언이 아니였어.
자고 일어나서 창문을 열면 푸르른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지..
짬찌였던지라 중대 선임들이랑도 바이바이해서
소대끼리만 있다는 것도 신났고..
그렇게 설레임 가득히 소초를 둘러보다가 위쪽으로 올라갔는데
늠름한 진돗개가 한마리 서있는 거야.
소초의 자랑거리라는 그 개는
군단장이 소초에 하사한 400만원짜리.
혈통 증명서도 있는 진퉁 진돗개였는데
털이 진짜 금색이라서
바다를 배경으로 햇빛을 받고 있으니까
완전 “개” 간지 나는 그런 존재감 쩌는 멍멍이였어..
군단장님이 하사하신 개라 소대 재산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죽거나 다치거나 하면 아주 그냥 좃 되는 거라
사료도 보급이 나왔고 관리도 잘했어.
그녀석 이름이 ‘금빈’이였어. 이름도 고급스러웠지.
그렇게 감탄하다가 아래로 내려갔는데
소초 구석탱이 쓰레기장 옆에 집도 없이
하얀 똥개 한 마리가 구석에 처박혀서 엎드려있는 거야.
내가 가까이 가니까 완전 뼈만 남은 백구녀석이
그래도 사람 왔다고 좋아서 힘겹게 일어서더라..
근데 가까이서 보니까 한쪽눈이 심하게 다쳐서 애꾸인거야.
털은 완전 떡져있고 냄새도 많이나고
피부병도 있는지 털 중간중간 땜빵도 났더라고.
밥도 제대로 안주는지 삐쩍 말라서 말이야.
그런 녀석이 나를 보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으니까 마음이 찹찹하더라.
그래서 건빵주머니에 있던 건빵을 꺼내서
좀 먹여봤는데 꾸역꾸역 엄청 잘 먹더라고.
그게 나랑 ‘월천’이의 첫만남이었어.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해안에도 어느정도 적응을 했지.
그러다가 어느날 근무를 나갔는데
겨울이었거든. 비가 미친 듯이 내리는 거야
근데 밥을 먹다가 문득 월천이 생각이나서
밥 후딱 먹어치우고 방탄헬멧 쓰고 월천이한테 가봤는데
이 바보 같은놈이 비가오니까 비 조금이라도 피해보려고
꼼지락 대다가 목줄이 뜯어진 철조망에 걸려서
진짜 움직일 수도 없이 엉켜서 낑낑대고 있더라.
그걸보고 내가 풀어주려고 급하게 뛰어갔는데
이바보가 사람왔다고 신나서 나한테 안기려고 하는거야.
덩치도 엄청큰데..
냄새도 나고 비도 오고 갑자기 짜증이나서
아 너 맘대로 해! 하고 그냥 들어와버렸어.
그날 밤 하루종일 비가 왔고, 조금 있다가 근무를 나갔는데
초소에 들어가있으면 소초에서 월천이가
낑낑대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야.
비는 계속 오고있고..
근데 새벽 4시쯤 됐을까
근무 끝나기 한시간 전에 낑낑대는 소리가 뚝 멈추더라.
그때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어.
그때 내가 비 내리는 바다를 보면서
난생 처음 기도를 했던 것 같음.
제발 월천이 죽지않게 해달라고.
살아만 있으면 내가 밥도 꼬박꼬박 챙겨주고 진짜 잘해주겠다고..
근무 끝나자마자 소초 뛰어올라가보니까
월천이가 기진맥진해서
다 젖은 바닥에 엎드려서 비를 그냥 다 맞고 있는 거야.
내가 뛰어내려가서 풀어주려고 하니까
이젠 힘도 없는지 가만히 나만 쳐다보고있어..
그래서 내가 “미안해 너무 미안해..”하면서 줄을 풀어주는데
망할 비가 더 미친듯이 쏟아졌어.
그래서 몸도 다 젖고
철조망에 걸린 거 풀다가 손도 다 찢어지고..
여튼 겨우겨우 데리고 비 안 내리는 곳으로 데리고와서
취사장에 있는 근무자용 밥 남은거 다 섞어서 먹였어.
다음날 되니까 거짓말처럼 살아났더라..
이 녀석이 유독 나만 따르기 시작한게 이때부터였어.
그래서 하루세끼 짬밥 남은거 내가 꼬박꼬박챙겨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정성껏 잘 키웠어.
근데 존나 열 받는게.
금빈이는 비싼 개니까 무서워서 손도 못대면서
월천이는 똥개새끼라서.
소대 선임새끼들이 존나 괴롭혔는데.
너무 열 받아서 개를 진짜 좋아하시는
부소대장님한테 일러서 다 털리게 만들었던 적도 있어.
아무튼 그렇게 월천이랑 정이 드니까
월천이 덕분에 그 힘든 소초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은거야
그렇게 8개월 정도 지났을 거야
밥을 잘 먹이니까 털도 뽀송해지고
몸도 튼튼해져서 눈 다친 거 빼고는 정상적인 멍멍이가 됐어.
근데 눈은 왜 다쳤는지 끝까지 못 들었었어.
난 그때 진짜 월천이가 전부여서
휴가나 외박 나가면 월천이 씹을 개껌이랑
쇠고기 통조림 같은거 사서 먹이고 그랬거든..
월급 전부를 여기에다가 썼던 것 같아.
근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부대에서 공문이 내려왔어.
소초마다 개 한마리씩만 빼놓고 모두 처분해라..고 하더라 ㅆl발..
400만원짜리 군단장이 하사한 진돗개랑
그리고 눈 X신인 똥개.
누가 살아남았겠냐?
결국 월천이가 개장수한테 팔려가기로 한거야.
개장수가 다음주인가 온다고 하더라..
너무 미안하고 답답해서 월천이를 볼 수도 없었어..
그렇게 일주일동안 월천이 근처도 안가다가..
개장수 오기 하루 전날
월천이가 좋아하던 쇠고기통조림 하나 들고
월천이한테 갔는데
이 바보가 아무 것도 모르고 또 오랜만에 왔다고
신나서 꼬리 흔들고 점프하고 난리가 난거야..
그런 모습 보니까 진짜 울컥해서 오열하면서 울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씻어본 적 없는 똥개를
껴안고 오열하고 있으니까
부소대장이와서 어깨 두드려 주더라..
내가 얼마나 월천이를 좋아했는지 그분은 잘아시니까..
들어가서 자야 될 시간인데
부소대장이 그냥 너 있고 싶을 때까지 있다가 들어오래.
그래서 몇시간동안 월천이를 안고서
혼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개한테
이런저런 소리 하다가
월천이가 잠들어서 조용히 침대로 돌아와서 또 울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단 한 번도.
옆에 누군가가 있어준 적 없던 월천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것뿐이었어.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니까 이미 팔려가고 없더라
내가 부소대장님 허락받고 해안정찰 하다가
여기저기서 주은 나무판때기로 만든 존나 허접한 집이랑
먹다가 조금 남은 쇠고기 통조림만 남겨놓고 없어졌어.
존나 ㅆl발 해안 처음 들어와서 봤던 월천이 모습부터
지금까지 같이 생활 했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또 눈물이 나더라
내가 원래 무뚝뚝하고 해서 잘 울지도 않는데
친척 누구 돌아가셨을 때처럼
갑자기 눈물이 막 나는거야
뭘하던 월천이 생각만 나고.
그런 명령 내린 군대도 좃같고..
완전 우울증에 걸려서 분대장이 소대장이 중대장한테
이새끼 이상하다고 보고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지
결국 시간이 약이더라
몇달 지나니까 점점 잊혀지더니
지금은 그냥 추억으로 남아있어.
그냥 비가 많이 와서 문득 생각나서 끄적여봤다.
여기까지 다 읽은 애들이 있을란가 모르겠는데
이렇게 그때 일을 글로 써보니까 또 존나 우울해지네
나중에 많이 벌고 하면 그땐 강아지 한마리 사지말고
입양해서 그때 월천이한테 다 못해준거 해주고 싶다.